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설레임'

스크랩 인쇄

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11-01 ㅣ No.13237

11월 2일 위령의 날-마태오 11장 25-30절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



<'설레임'>


‘신부님 까락(권위)으로 제발 축구 좀 하게 해 달라’는 친구들의 간절한 소망을 외면할 수 없어 점심 먹고 아이들과 신나게 축구시합을 했습니다. 얼마나 재미있게, 그리고 열심히들 뛰는지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가더군요.


잠시나마 세상근심 잊고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껏 뛰고 소리 지르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도 보기 좋았습니다. 마음이 흐뭇해진 저는 월초인 관계로 용돈도 받았겠다, 크게 선심 한번 썼습니다.


좀 비싸지만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인 ‘설레임’을 사러 갔습니다. 동네 번개시장 안에 가면 아이스크림을 50%나 할인해주는 고맙기 그지없는 ‘할인마트’가 있는데, ‘설레임’으로만 왕창 샀습니다.


수도원으로 돌아오는 길에 줄지어선 은행나무 밑을 지나노라니 샛노란 은행잎들이 마음껏 자태를 뽐내고 있었습니다.


꽤 무거운 ‘설레임’들을 들고 낙엽이 뚝뚝 떨어지는 가로수 밑을 걸어가는데, 무겁다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설레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설레임’을 하나씩 받아들고 기뻐할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제 마음까지 설레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위령의 날입니다. 너무도 자주 들어 이제 귀에 못이 박힐 정도인 말이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 인자하신 아버지의 집으로 건너가는 길목이라는 말. 그러기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이 세상 하직하는 날은 슬퍼할 날이 아니라 기뻐 용약할 날, 가슴 설레는 날이라는 말.


우리의 마지막 날이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아쉬움의 날, 두려움으로 휩싸인 절망의 날이 아니라 그 오랜 세월 기다려왔던 사랑하는 임을 만난다는 기쁨에 가슴 설레는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날은 그간 우리가 지녀왔던 모든 두려움과 좌절, 공포와 번민으로부터 완전히 해방되는 날, 지긋지긋했던 죄의 사슬로부터 자유로워지는 날, 오랜 세월 꿈꾸어왔던 소망이 이루어지는 행복한 날이 되면 좋겠습니다.


단말마의 고통에 시달리며 임종하시는 분들의 머리맡에 자주 서게 되면서 오늘 복음 말씀이 정녕 맞는 말씀이란 것을 실감하게 됩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겠다.”


임종자들을 떠나보내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의 은총입니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방황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 악습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이 처절한 소외감, 이 심연의 고독,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한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죽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죽음을 통해 거칠고 험난했던 오랜 여행길을 마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군요.


그 오랜 세월, 상처와 고통의 나날을 접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해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호흡을 마침으로서 모든 시름을 내려놓고 편안히 이승을 떠나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참으로 부러웠습니다. 진정 평안해 보였습니다. 그제야 제대로 된 휴식, 영원한 안식을 누리시는구나 싶어 제 마음까지 다 편안해졌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마지막 날, 인생 종치는 날, 밥숟가락 놓는 날, 쫄딱 망하는 날, 무작정 슬퍼할 날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그간 힘겹게 지고 왔던 모든 멍에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날, 기쁜 얼굴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날, 환희와 축제의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의 마지막 날은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 영원한 복락을 누릴 가장 행복한 날이 되길 바랍니다. 그 날은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원망도 없는 날, 정녕 주님 안에서 기뻐 뛰노는 날, 가슴 설레는 날이 되길 소망합니다.



1,120 6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