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옷은 정체성이다

스크랩 인쇄

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8-08-23 ㅣ No.122830

 







 

 

2018년 나해 연중 제20주간 목요일



<옷은 정체성이다>

  

복음: 마태오 22,1-14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내림

LORENZETTI, Pietro 작, (1325)

  


 

제가 유학 가서 신학생 때는 성경을 전공하였고, 신부 되어서는 교의신학을 전공하였습니다. 신부로 다시 나갔을 때 같은 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입학 면담 때 학장 신부님에게 성경석사 때 했던 겹치는 과목들은 면제를 해 줄 수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 신부님은 완강하게 거부하였습니다. 학과가 다르니 그 학과에서 요구하는 것들은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번 배웠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미 같은 학교에서 들은 과목인데 또 들어야만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완강하게 따졌습니다. 그랬더니 신부님은, “넌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는 줄 모르고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네 처지를 알라는 말입니다. 나는 학장이고 너는 학생이니 주제를 알라는 것입니다. 그런 말까지 들으니 더 이상 따질 수 없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학생의 신분으로 학장을 만난 게 아니라 한 사제로서 만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사제가 말을 하면 신자들은 대부분 받아들여줍니다. 초짜 신부가 몇 년 동안 그런 삶에 익숙해 있다가 그 모습을 벗지 못하고 학장을 만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관계를 맺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정체성을 아는 것입니다. 상대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관계가 성립됩니다. 나는 사람이고 상대는 개라면 그것을 알아야지, 마치 상대를 사람처럼 대하거나, 자신이 개처럼 행동해서는 안 됩니다. 개를 사람처럼 대하면 사람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할 것이고, 자신을 개처럼 낮춘다면 거짓으로 상대에게 다가가는 것입니다. 상대는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개를 흉내 내는 나를 만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 서로 간에 자신의 정체성을 명확히 하는 것이 관계를 위한 기본입니다.

 

이 정체성을 가장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 입니다. 의사 가운을 입고 있으면 의사이고, 작업복을 입고 있으면 노동자이며, 와이셔츠를 입고 있으면 회사원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왕이 거지 옷을 입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서 사람들이 자신을 거지취급 한다고 상대를 탓할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정체성을 자신이 그렇게 먼저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옷은 그 사람의 정체성의 상징이 되고 누군가를 만날 준비가 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전에 입성하실 때 사람들이 자신들의 옷을 그분이 타고 들어오는 나귀 발밑에 깐 것은 어찌된 일일까요? 이는 자신들의 정체성을 벗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새 정체성을 입겠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자녀가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라는 새 정체성으로 살겠다는 고백입니다. 새 정체성을 입으려면 옛 정체성은 버려야합니다.

 

새 정체성은 만남을 통해 얻어집니다. 만약 내가 미혼 남성이었는데, 어떤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면 이제 그 여인 때문에 나는 남편이라는 새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남편이 되면 이전 정체성대로 살 수는 없습니다. 지금까지 만나오던 여자들이 있었다면 새로운 정체성을 위해 그 관계들을 끊어야합니다. 이것이 이전 옷을 벗어버리는 일입니다. 성사로 치면 이 과정이 세례라 할 수 있습니다.

 

세례를 통해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잔치에 응답한 이들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러나 의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의복을 입지 않았다는 말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백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는 모든 이들은 신부의 옷을 입어야합니다. 신부의 옷이란 신랑을 머리로 하여 순종하겠다는 고백입니다. 물론 신랑은 아내를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붉은 옷을 입고 다가옵니다.

 

당신의 피를 들고 오시는 신랑 앞에서 신부는 그 피를 통해 그분을 머리로 하여 순종하며 살아갈 결심을 해야 합니다. 의복은 정체성이고 정체성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그런데 의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그런 순종의 마음 없이 미사에 참례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성체성혈을 영하더라도 내가 그분을 위해 무엇을 해 드려야하는지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인 것입니다. 상대의 의무만 주장하지 자신의 의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잔치인 미사에서 쫓겨나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 쫓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사로 치자면 세례로 부르심에 응답은 했지만 견진성사를 통해 혼인의복을 입는 과정을 소홀히 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신학교 때 예비군 훈련을 하면 신학생들은 수단을 벗고 예비군 군복을 입고 밖으로 나갑니다. 예비군복장은 군대 제대할 때 입고 나왔던 옷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옷만 입으면 사람들이 바뀝니다. 말년 병장으로 모두 변하는 것입니다. 모자를 비뚜로 쓰고 윗도리는 밖으로 내고 담배를 뭅니다. 돌아올 때는 술도 거하게 취하여 워커 끈을 다 풀은 채로 복귀합니다. 그때마다 생각하는 것은 복장이 사람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겉은 군복을 입었지만 속은 여전히 수단을 입고 있는 신학생들도 발견이 됩니다. 절대 흐트러지지 않습니다. 밖의 복장보다 내면의 복장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이 주님 앞에서 입어야 할 옷은 종의 옷이며, 사람들을 만날 때 입어야 할 옷도 종의 옷입니다. 기도할 때, 그리고 밖에 나갈 때 제대로 된 옷을 입고 나가는지 항상 살펴야할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입히는 복장대로 살아가게 돼 있습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481 4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