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

스크랩 인쇄

박영희 [corenelia] 쪽지 캡슐

2024-06-13 ㅣ No.173269

[연중 제10주간 목요일,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 마태 5,20ㄴ-26 "먼저 그 형제와 화해하여라."

 

 

 

 

우리는 어제부터 마태오 복음의 ‘산상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산상설교의 핵심은 ‘의로움’을 이루는 것, 즉 하느님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올바른 일을 함으로써 그분과 바람직한 관계를 맺는 것이지요.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시작하시면서 그런 의로움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두 가지 원칙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는 율법 규정을 이루는 ‘글자’에 얽매이지 말고 사랑의 마음으로 그 부족함을 채우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율법을 스스로 즉 마음에서 우러나는 사랑으로 기꺼이 기쁘게 실천함으로써 그 안에 담긴 사랑이라는 근본정신이 드러나게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복음에서는 그 두 가지 원칙을 적용하는 구체적인 첫 사례로써, 어떻게 해야 “살인하지 마라”라는 계명을 제대로 지키는 것인지 그 방법을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오늘 복음은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의로움을 능가하라’는 권고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저 죄만 안지으면 된다’는 안일하고 게으른 마음에 머무르지 말고, 함께 살아가는 이웃 형제 자매의 입장과 마음을 깊이 헤아리며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물론 법을 위반하지 않으면 벌을 받을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법의 근본정신을 완벽하게 실현하며 사는 ‘100점짜리 국민’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그런 점은 하느님 나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명을 어기지 않으면 당장 이 세상에서는 벌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해서 하느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천하며 사는 ‘100점짜리 백성’이라고는 할 수 없지요. 또한 겨우 ‘낙제’를 면하는 수준인 70점 정도에 만족하며 안일하게 살다가는 심판의 순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곧 천국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느님 아버지의 마음과 뜻을 깊이 헤아리며 ‘100점짜리 자녀’가 되도록 노력하는 자세가 중요한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만 안죽이면 된다’는 안일한 마음을 버리라고 하십니다. 형제에게 ‘바보’나 ‘멍청이’ 같은 심한 말을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온갖 심한 욕설이 난무하는 요즘 사회에서는 바보나 멍청이는 욕으로 쳐주지도 않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우리가 사는 세상의 기준일 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수준은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 ‘바보’나 ‘멍청이’는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말이었습니다. ‘바보’는 머리가 빈 놈이라는 뜻으로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따를 능력이나 의지가 없는 이를 가리킵니다. 또한 ‘멍청이’는 꼭 알아야 할 것, 즉 하느님 뜻에 맞는 올바른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를 가리킵니다. 결국 이 두 가지는 모두 ‘구원’과 연관됩니다. 형제를 얕잡아 보고 함부로 내뱉는 그 말이 결국 그 형제의 구원을 가로막는 ‘죄’가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형제를 심판하고 단죄하는 그런 말을 함부로 입에 담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라고 하십니다. 혹시 형제가 나에게 원망을 품고 있지는 않은지 주위를 적극적으로 살피며 그의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보통 ‘나의 화’만 생각하고 ‘남의 화’는 소홀히 여깁니다. 형제가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내가 그를 미워하는 것만 생각하고, 그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는 제대로 살피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철저히 ‘공동체’를 지향하지요. 나만 잘 살아서 나만 구원받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내가 형제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그가 나를 용서하지 못한 상태로 있으면 서로가 서로에게 죄라는 ‘연자맷돌’이 되어 깊은 멸망의 수렁으로 함께 빠져들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 형제의 상처 입은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구원의 문제에서 누가 먼저 잘못했는가, 누가 더 잘못했는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심판의 법정에 가기 전에 형제와 진정으로 화해했는가 아닌가가 중요하지요. 제대로 화해한 사람은 천국행 판결을 받을 것이고, 화해하지 못한 사람은 지옥행 판결을 받게 될 겁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8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