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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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17.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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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4-12 ㅣ No.111408

 

2017년 4월 12일

성주간 수요일

제1독서 이사 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복음 마태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종종 해외로 성지순례를 떠납니다.

그런데 순례자 중에서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평소에 먹지 않았던 외국 음식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이상한 냄새가 난다면서 도저히

먹을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나지 않고 또 맛도

아주 좋은데 말이지요.

이런 분들은 순례 기간 동안의

 시간이 쉽지 않습니다.

 낯선 환경과 또한 잠자리 역시

익숙하지 않은 공간이기

 때문에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저는 이런 분들을 보면서

‘별 것도 아닌 것에 왜 이렇게

신경을 쓰시지?

조금만 참으면 서로가 좋잖아?’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책을 보니까

이러한 분들이 바로 민감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이러한 민감함을

이겨내기가 그리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민감함이 안 좋은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에서 위대한

창의력, 통찰력, 열정을 보여준 사람들이

 바로 매우 민감한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즉, 민감함은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할 수 있는

매우 훌륭한 힘인 것입니다.
이러한 민감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전체의

약 20% 가까이 되는데,

 이 중에서 자신의 놀라운 능력을

발견해서 발휘하는 사람은 1%도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저 자신의 민감함에 부정적인

생각을 더하면서 스스로를

탓하고 있다고 합니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휘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스스로를 탓하는

 부정적인 마음이었습니다.

실제로 주님께서 우리들에게

많은 능력과 힘을 주셨지만,

이를 얼마나 잘 사용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가지고 있지 못한 능력과

힘만을 부러워하면서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정작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바로 이러한 우리들의 모습에서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유다

이스카리옷을 보게 됩니다.
우선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 것은 단순히 팔아넘기는

역할에 담당하기 위해서였을까요?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는 분명히 예수님의 제자로서

훌륭한 자질을 가지고 있었고,

이 자질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의

 일을 잘 할 수가 있었기 때문에

제자로서의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가지고 있었던

 물질적인 욕심, 주님께 대한

부정적인 마음들이 예수님을

은돈 서른 닢에 넘겨버리는

잘못을 저지르게 되었던 것이지요.
주님으로부터 받은 능력과

힘을 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다른 이들이 받은 능력과

힘만을 부러워한다면 또한 이를

세상의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방향으로만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앞선 유다

 이스카리옷의 전철을 따라 주님을

 반대하고 세상에 팔아넘기는

엄청난 행동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능력과 힘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할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는 거룩한

성주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탐욕은 모든 것을 얻고자

 욕심내어서 도리어

든 것을 잃게 한다.

(몽테뉴)

요즘에 쭈꾸미철이라고 하네요.

"몸을 움직이세요."

종종 어르신들을 만나면

이런 말을 자주 들을 수가 있습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별로 없어요.”
나이가 들면 정말로 세상에

즐거운 일이 없어지는 것일까요?

그것은 아닐 것입니다.

나이에 따라서 즐거운 일이

차등적으로 부여되는 것은

분명히 아니기 때문이지요.

 문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매사에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이 들어서 짜증과 걱정이

많아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과 즐거움보다는

 슬픔과 불안이

더 많아지는 것입니다.
실제로 인간의 감정은 나이가

들수록 부정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이를 연구한 한 학자는 이 감정 자체가

육체에서 나온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몸이 건강할수록 좋은 감정이

 생기고 몸이 병들수록 부정적인

감정이 만들어진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무조건 맞는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근거가 전혀

없는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따라서 우울하거나 불안하거나

슬프면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신체를 자극해서

그 감정을 떨쳐 버려야 합니다.
세상에 즐거운 일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시는 분,

우선은 몸을

움직여야 하지 않을까요?

몸을 움직이기 위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자전거를 탑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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