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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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유다와 이스라엘이 기브온에서 내전 / 다윗[1] / 2사무엘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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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1-06-16 ㅣ No.14762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3. 유다와 이스라엘이 기브온에서 내전(2사무 2,13-32)

 

그리하여 남부 유다와 북부 이스라엘 간에는 서서히 내전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네르의 아들 아브네르와,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의 부하들은 마하나임에서 기브온으로 출정하였다. 네르는 사울의 삼촌인지라 이스 보셋은 아브네르와는 사촌이었다. 그는 왕의 자질이 없는 것이 분명했지만, 아브네르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있었다. 사실 츠루야의 아들 요압도 다윗의 부하들을 거느리고 출정하여 기브온 못 가에서 그들과 마주쳤는데, 한편은 못 이쪽에, 다른 편은 못 저쪽에 자리했다. 츠루야도 다윗의 누이이기에(1역대 2,16), 요압도 다윗과는 사촌지간이다.

 

그때 아브네르가 요압에게 부하들을 내세워 우리 앞에서 서로 겨루게 하자.” 하니, 요압도 좋다.” 하였다. 그래서 부하들이 일어나 정한 수대로 나갔는데, 사울의 아들 이스 보셋 쪽에서 벤야민 사람 열둘,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에서도 열둘이 나갔다. 이렇게 스물네 명이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웠다. 그들은 저마다 상대방의 머리를 붙잡고는 자신들의 신변보다는 지파의 승리를 위해 죽기 살기였다. 그리하여 칼로 옆구리를 찔러 함께 쓰러졌다. 결국 그들은 그 자리에서 다 죽고 말았다. 그래서 그곳을 옆구리 벌판이라고 하였는데, 그곳은 기브온에 있다.

 

그리하여 끝내 두 군대는 전투를 벌였다. 그날 싸움은 매우 치열했다. 아브네르의 이스라엘은 다윗의 부하들에게 패배하였다. 그곳에는 츠루야의 세 아들 요압과 아비사이와 아사엘이 있었는데, 아사엘은 들에 사는 영양처럼 달음박질이 매우 빨랐다. 그리하여 그는 아브네르의 뒤를 쫓아,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몸을 돌리지 않고 아브네르의 뒤만 바라보고 따라갔다. 아브네르가 뒤돌아보며, “네가 바로 아사엘이냐?” 하고 물으니, 아사엘이 그렇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아브네르가 그에게 또 다시 돌아보며 말하였다. “오른쪽이나 왼쪽으로 몸을 돌려 젊은이나 하나 잡고 그를 털어 가라.” 그러나 아사엘은 물러서지를 않고 끝까지 그의 뒤를 쫓았다.

 

아브네르가 다시 아사엘에게 내 뒤는 그만 쫓고 물러서라. 내가 너를 쳐 땅바닥에 쓰러지게 할 까닭이 없지 않느냐? 그렇게 되면 네 형 요압 앞에서 내가 어떻게 머리를 들겠느냐?” 하고 말하였다. 그래도 아사엘은 물러서기를 마다하였다. 그래서 아브네르는 창끝으로 그의 배를 찔렀다. 창이 등을 뚫고 나오자 그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 아사엘이 쓰러져 죽은 자리에 다다른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멈추어 섰다. 그러나 요압과 아비사이는 계속 아브네르의 뒤를 쫓아, 해가 질 무렵에는 기브온 광야로 가는 길가의, 기아 맞은쪽의 암마 언덕에 이르렀다.

 

그때 벤야민의 자손들은 아브네르의 주위로 모여들어 한 무리가 되자, 어떤 언덕 꼭대기에 저항하려고 버티고 섰다. 그리고는 아브네르가 요압을 불러서 말하였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칼부림을 해야 하겠느냐? 이러다가 결국 비참한 일이 일어나게 될 줄을 모른단 말이냐? 그대는 군사들에게 제 형제의 뒤를 그만 쫓고 돌아서라는 명령을 끝내 내리지 않을 셈인가?”

 

요압이 대답하였다. “살아 계신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는데, 그대가 그 말을 하지 않았으면, 내일 아침이 되어서야 군사들이 저마다 제 형제의 뒤를 쫓는 것을 그만두었을 것이다.” 요압이 나팔을 부니, 모든 군사가 멈춰 서서 더 이상 이스라엘인들의 뒤를 쫓지도 않고 싸우지도 않았다. 그날 아브네르와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걸어 아라바를 지나 요르단을 건너고, 오전 내내 걸어가서는 마하나임에 이르렀다. 요압도 아브네르의 뒤를 더 이상 쫓지 않고 거기에서 돌아섰다. 그가 군사들을 모두 모아 보니까 다윗의 부하들 가운데 열아홉 명과 아사엘이 비었다.

 

그러나 다윗의 부하들은 벤야민 사람과 아브네르의 부하를 삼백육십 명이나 쳐 죽였다. 그들은 아사엘을 메어다가 베들레헴에 있는 그의 아버지 무덤에 묻었다. 그런 다음 요압과 그의 부하들은 밤새도록 걸어서 동틀 무렵에 헤브론에 이르렀다. 그 전투는 그렇게 끝났지만, 내전은 계속되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하느님께서 목자로 택한 다윗을 따를 때까지는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내전 속에서도 다윗은 하느님의 은혜로 점점 강하여졌고 사울을 따른 이들은 차츰 기울어져 갔다. 거기에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이 헤브론에 머무는 내내 자녀의 복까지 담뿍 안겨주었다. 이는 사울이 길보아 전투의 죽음에서 이미 예고가 된 것이다.

 

이렇게 사울과 다윗 집안 사이의 감정은 막다른 지경까지 이르렀다.[계속]

 

[참조] : 이어서 ‘4. 사울 집안의 아브네르 배반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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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네르,츠루야,아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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