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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미사 강론]카이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토요일오전 미사강론 전문[2017년4월27일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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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 [jjwriter] 쪽지 캡슐

2017-05-04 ㅣ No.111847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미사 강론입니다.

 

                                    http://www.news.va/en/sites/reflections  http://w2.vatican.va/content/francesco/en/cotidie/2015/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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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님 강론 날짜]2017427일토요일(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강론 당일 독서와 복음 말씀] 부활 제3주일 말씀전례

1독서 : 사도행전 2,14.22-33

화답송 : 시편 16(15),1-2ㄱ과 5.7-8.9-10.11(◎ 11ㄱ 참조)

2독서 : 베드로 1 1,17-21

복음 : 루카 복음 24,13-35

http://info.catholic.or.kr/missa/?missaid=8024&gomonth=2017-04-30&missatype=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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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에서 프란치스코 교황, 토요일 오전 미사 강론 전문

http://www.news.va/en/news/pope-francis-in-cairo-full-text-of-homily-at-sat-a

 

2017-4-29  바티칸라디오

 

 (바티칸 라디오) 프란치스코 교황은 토요일 카이로 Air Defense 스태디움에서 이집트의 가톨릭 신자들을 위한 미사를 집전했고 강론을 했습니다. 다음은 교황 성하의 준비된 강론의 공식 영어 번역문이니 보시기 바랍니다.

 

프란치스코 교황 성하

카이로, 거룩한 미사

2017 4 29

 

As-salamu alaykum!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오늘의 부활 제3주일 복음말씀은 우리에게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 대해 이야기해 줍니다. 그 복음은 다음의 세가지 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죽음, 부활 그리고 생명.

 

죽음. 두 제자는 절망과 실망으로 가득 차서 일상 생활로 되돌아가고 있습니다. 스승님께서는 돌아가셨고 그래서 희망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그들은 실망과 절망을 느낍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고통스러운 경험을 뒤로 하고 되돌아가는 여정만이 그들의 것입니다. 십자가의 위기, 진실로 십자가의 치욕어리석음(고린토전서 1,18. 2,2)은 그들이 갖고 있는 모든 희망을 묻어버린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삶으로 삼아왔던 한 분이신 그분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패배 안에서 그들의 열망도 그분과 함께 무덤에 두셨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스승님, 구원자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른 이들을 일으키셨고 병자들을 낫게 하신 그분께서 결국 치욕의 십자가에 매달리시리라는 것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왜 그렇게 수치스러운 죽음에서 그분을 구하지 않으셨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느님에 대한 그들 생각의 십자가였습니다. ,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느님이 어떤 분이라고 생각하는 그들 생각의 죽음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죽은 것은 그들이고 그들의 한정된 이해의 무덤에 묻힌 것은 그들입니다.

 

우리 하느님에 대한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하느님에 대한 우리 자신의 관념을 넘어서고 사람과 유사하게 만들어낸 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넘어서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얼마나 자주 우리 자신을 마비시키는지요! 우리가 하느님의 전능하심이 권능과 권위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와 생명의 일체임을 믿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절망합니까!

 

제자들은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실, 성체성사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 보았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눈을 가리는 장막을 찢어 버리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과 편견의 완고함을 산산히 부수어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의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 그들의 가장 어두운 밤의 어둠 속에서 그들의 가장 극심한 절망의 순간에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들에게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습니다. 그분께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복음 14, 6)”이심을 그들이 알도록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절망을 생명으로 바꾸십니다. 인간적인 희망이 사라질 때 그곳에서 거룩한 희망이 빛나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라도 하느님께는 가능하다”(루카 복음 18, 27. 1, 37 참조). 우리가 도움이 없는 실패의 심연에 가 닿을 때, 우리가 최고이고 우리 자신에게 우리로 충분하고 우리가 세상의 중심이라는 환상을 스스로에게서 제거할 때,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의 밤을 새벽으로 우리의 고통을 기쁨으로 우리의 죽음을 부활로 바꾸시려고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발걸음을 예루살렘으로 생명으로 십자가의 승리로 돌려 세우십니다(히브리스 11, 34 참조).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 두 제자들은 기쁨과 확신과 열정으로 가득 차서, 증언을 할 준비가 되어 돌아갔습니다. 부활하신 한 분께서는 믿지 못하는 슬픔의 그들 무덤에서 제자들을 부활하게 만드십니다. 십자가에 못 박하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면서 그들은 예언자와 율법과 성경 전체의 이루어진 일과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십자가의 명백한 패배의 의미를 발견했습니다. 십자가의 경험에서 부활의 진실로 건너가지 못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비난하여 절망합니다! 우리가 먼저 전능하심과 권능에 대한 우리자신의 이해만을 반영하는 신에 대한 우리의 좁은 생각을 못박지 않으면 하느님과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은 그 두 제자들의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왜냐하면 부활하신 한 분과 만나는 것은 모든 삶을 변화시키고 불모의 것을 열매 맺도록(베네딕토 16세 교황, 일반 알현, 2007 4 11) 만들기 때문입니다. 부활 믿음은 교회의 산물이 아니라 교회 자신이 부활 믿음으로부터 태어났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말한 대로 그리스도께서 되살아나지 않으셨다면, 우리의 복음 선포도 헛되고 여러분의 믿음도 헛됩니다”(고린토전서 15, 14).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역사 안에 나타나신 예수님을 붙들 수는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제자들의 눈에서 사라지셨습니다.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복음 20, 21-29. 20, 29 참조). 교회는 예수님께서 교회와 함께 사시고 성체와 성경과 성사 안에서 교회에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엠마오로 가는 길에 이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그들의 경험을 나누기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분을 보았다그렇다, 참으로 주님께서 부활하셨다!”(루카 복음 24, 32 참조.)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경험이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그분의 현존에 대한 경외심이 없다면 우리 경배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하느님께 바치는 우리의 기도가 우리 형제 자매들에 대한 사랑이 되지 않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아무 소용 없습니다. 모든 우리의 독실함이 깊은 믿음과 자애로움에서 영감을 받지 못한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영혼과 마음을 보시고(사무엘기 상권 16, 7 참고) 그분께서는 위선을 싫어하시기(루카 복음 11, 37-54. 사도행전 5,3.4) 때문에 우리의 이미지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아무 소용 없습니다[1]. 하느님께서 거짓된 신자, 위선자가 되느니 믿지 않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우리를 더욱 사랑을 베풀게 만들고 더 자비롭고 더 솔직하고 더 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 비용을 계산하지 않고 구별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도록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다른 이들을 이겨야 할 적이 아니라 사랑 받고 도움 받고 봉사를 받을 형제와 자매로 보도록 합니다. 진정한 신앙은 우리를 계속 자극하여 만남과 대화와 존중화 형제애의 문화를 살아가고 퍼뜨리고 지켜내도록 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용기를 주어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하는 용기를 주고, 넘어진 사람들에게 손을 뻗고 헐벗은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 주고 고아들을 도와 주고 목마른 이들에게 마실 것을 주고 노인들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도우러 가는 용기를 우리에게 줍니다(마태오 복음 25). 진정한 신앙은 우리를 이끌어 우리 자신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과 똑같은 열망과 열정으로 다른 이들의 권리를 보호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신앙과 깨달음 안에서 성장할수록 우리는 더욱 겸손함안에서 그리고 우리가 보잘 것 없다는 깨달음 안에서 성장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오로지 우리의 삶으로 선포되는 믿음에만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믿는 이들이 가질 수 있는 유일한 광신주의는 오로지 사랑 밖에 없습니다! 어떤 다른 광신주의도 하느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며 그분을 기쁘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기쁨과 용기와 신앙으로 가득 차 여러분 자신의 예루살렘, 즉 여러분의 일상 생활과 가족들과 당신의 일과 사랑하는 여러분의 나라로 돌아 가십시오. 부활하신 주님의 빛을 향해 여러분의 마음을 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그분께서 당신의 불확실성을 당신 자신과 다른 이들을 위한 긍정적인 힘으로 바꾸어 주시도록 합시다. 친구나 적을 똑같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믿는 이들의 힘과 보물은 사랑의 삶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성모님과 성가정, 그분들은 여러분의 이 존경할만한 땅에서 사셨는데 그분들이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시고 여러분과 친애하는 이 나라 이집트를 축복하시기를. 이 나라 이집트는 그리스도교의 초기에 마르코 성인의 가르침을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고 그 전 역사를 통해 너무나도 많은 성인들과 엄청난 수의 거룩한 남성과 여성들을 냈습니다.

 

Al Masih qam! Bi-l-haqiqa qam!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바타칸 라디오에서)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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