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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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조각 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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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6-09 ㅣ No.56446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10주간 수요일 - 조각 안의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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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엿을 하면 그 엿을 판에 부어서 대단히 크게 굳혀서 만듭니다. 그래서 다 입에 넣을 수는 없지요. 그러면 엿을 깨뜨립니다. 깨진 것 중에서 아주 작은 것을 입에 집어넣습니다. 그러면 달콤한 맛이 입안 한 가득 전해져옵니다. 커다란 엿판에서 부서져 나온 작은 조각이지만 엿의 모든 맛을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엿 한 판을 다 먹어보아야 그 맛을 아는 것이 아니라 한 조각만 먹어보면 그 맛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거대한 타이타닉도 작은 빙산을 보지 못해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보이는 빙산은 아주 작지만 그 밑엔 상상을 초월할 얼음덩이가 있습니다. 그것에 바닥이 긁혀 침몰하고 만 것입니다.

보이는 것이 아주 작을지라도 그것이 그 사람 전체를 나타내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아주 작은 죄도 짓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작은 죄란 사실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작은 죄가 아닙니다. 아주 작은 죄 안에도 죄의 맛은 똑 같이 들어있고 그 맛은 똑같이 하느님을 아프게 해 드립니다. 바늘로 찌르나 칼로 찌르나 아프기는 마찬가지인 것과 같습니다.

 

만약 ‘이런 병신!’이라고 욕을 했다고 합시다. 친한 친구끼리는 어쩌면 애정의 표시가 될 수도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 말을 아버지에게 했다고 합시다. 자녀들이 부모를 때리지는 않고 욕을 하는 것이니 괜찮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내가 잘못하고 있는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그 잘못이 작아보여도 사실은 작지 않은 것입니다. 죄란 사람에게 하는 잘못이 아니고 하느님께 하는 잘못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로움을 이용하여 ‘이런 죄는 그냥 용서해 주시겠지!’하며 짓는 죄들이 많습니다. 물론 하느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그러나 큰 아픔을 참고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대죄를 짓지 않기 때문에 하늘나라는 들어갈 수 있을지언정 작은 티끌 하나라도 없이 살려고 하지 않았다면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사람 취급을 당할 것이라고 합니다.

하늘나라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다 똑같이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성모님과 나를 똑같이 대접해 달라고 하는 것은 정의롭지 못한 것입니다. 각자 이 세상에서 산대로 보상을 받을 것이고 지옥도 고통의 차이가 분명히 있습니다.

 

죄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을 두려움 속에 몰아넣으려고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죄보다는 자비에 대해 더 이야기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것은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짓는 작은 죄들을 정당화 하려는 이유에서일 수도 있습니다. 그 분이 무서워서 다가오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자비에 대해 더 이야기 해야겠지만 이미 하느님을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더 완전하게 되도록 독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작은 죄도 짓지 말고 그렇게 가르치라고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보다도 작은 죄까지 짓지 말도록 노력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 분이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그만큼 우리 죄를 아파하시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가장 상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애인이라든지 남편, 혹은 자녀가 나에게 조금 섭섭하게 대하면 그 아픔이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바늘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그 분을 찌른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창으로 그분 심장을 찌르는 것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늘로 찔러서 창으로 찌르는 것보다 작은 고통을 드린다고 해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분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리는 것이 정당화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해지라고 하셨습니다. ‘이정도면 되겠지!’하는 생각은 버리고 다시 완전으로 정진해 나갑시다.

 

<<짧은 묵상>>

많은 사람들은 가면을 쓰고 살아갑니다. 어떤 책에서는 의사, 변호사, 국회의원, 대기업의 중역들 중 70% 정도가 아무 것도 못하면서 하는 척, 아는 것 없으면서 대단히 아는 것처럼 행세하는 등,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자신을 포장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프로이드는 이런 가면을 쓴 사람을 ‘위선자’라고 칭했습니다.

역시 우리 주위에서도 또 내 자신에서도 이런 가면을 쓴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하게 됩니다. 아무리 사랑을 노래 불러도 그 행동은 자신만을 위한 삶인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선자가 되느니 솔직한 죄인이 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자신을 포장하면서 자신을 위한 행동이 남을 위한 사랑의 행위라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함께 모여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모으거나 만나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려는 위선일 수 있습니다. 남에게 보이기 위해 자선을 하는 것도, 남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좋게 보이려 하는 것도 모두 포장된 위선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사랑의 작은 계명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위선자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바로 예수님이라면 그렇게 행하셨을 것인지 따져보아야 합니다.

나무는 열매로 아는 법입니다. 배나무에 가끔 사과가 열리지는 않습니다. 배나무엔 아무리 작게 열린 것까지도 배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나의 작은 행동들을 그리스도와 비교해보면 어느 정도 내가 위선자인지 알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행하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까지 사실 나의 본질을 보여주는 거울입니다. 아홉 번 솔직히 말하다가 한 번 거짓말을 해도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삶 동안에 아주 작은 죄를 지었더라도 그 분은 예수님이 아니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동시에 하느님이시기 때문에 완전한 사랑을 보여주셨고 그래서 우리가 본받아야 할 완전한 계명이십니다. 예수님은 사랑 자체이셨기에 숨 쉬는 것 하나까지도 사랑이셨습니다.

하늘나라에서 큰 사람이라 불리고 싶은 사람은 예수님의 아주 작은 행동까지도 본받아야합니다. 그러나 성경만으로는 예수님께서 매 순간 어떻게 행동하시고 말씀하시고 표정을 지으셨는지 알 길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동시에 성령님이 우리 안에 계시며 예수님의 모든 것들을 이해하게 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숨 쉬는 것 하나까지 그분 모습을 닮아갈 수 있습니다.

하늘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대접을 받을 사람은 삶에서 아주 작은 순간까지도 그리스도께서 하신 그대로 살려고 노력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계명들 가운데에서 가장 작은 것 하나라도 어기고 또 사람들을 그렇게 가르치는 자는, 하늘나라에서 가장 작은 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지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이는, 하늘나라에서 큰사람이라고 불릴 것이다.”

  

 
 
 
<너 나를 사랑하느냐>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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