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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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우리 선택의 영원한 첫 자리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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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6-27 ㅣ No.56877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13 주일 - 우리 선택의 영원한 첫 자리는 예수님

 


 

저희 교구가 올해부터 바뀌는 것은 앞으로는 사제관에 거주하는 식복사를 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또 파출부 형식으로 일하는 분을 쓰더라도 어머니는 안 된다는 규정을 정했습니다. 이는 본당 사제와 식복사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불미스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자는 뜻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가끔 신부님 어머니가 본당 일에 관여하는 일도 미리 차단한다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여러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어머니를 대하는 모습은 ‘부모에게 효도하라’라는 계명과는 매우 멀어 보입니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말하는 어머니에게, “그것이 당신과 나에게 무엇이라고 그러십니까?”라고 말하며 거절하고, 당신을 찾아온 어머니에게 “누가 내 어머니이며 형제냐?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이들이 내 어머니이며 형제며 자매들이다.”라고 하시며, “당신에게 젖을 먹여 키운 어머니는 복되십니다.”라고 하는 여인에게, “차라리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이 더 복되다.”라고 하십니다. 또 십자가상에서는 마치 당신이 더 이상 아들이 아닌 것처럼, 어머니에게 요한을 가리키며 “여인이여, 이 사람이 당신의 아들입니다.”라고 하십니다.

이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인간적인 애정을 끊지 않는다면 합당한 제자가 될 수 없음을 당신 스스로 모범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도 보좌신부를 할 때 어머니에게 제가 있는 성당에 오시지 말도록 부탁을 드렸습니다. 한 번은 오셔서 사무실에 들어가, “우리 신부님, 말썽 안 피우나요?”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성당에서는 신자들의 영적인 목자인데 그런 식으로 말하시며 다니시는 것이 못마땅하였습니다.

나중에 또 어머니가 성당으로 찾아와서 당신이 성당에 와 있으니 나와 보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보고 싶어서 찾아오신 심정이야 잘 알겠지만 어머니도 아들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는 알게 해 드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서, 냉랭하게 그냥 돌아가시라고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물론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시면서 눈물을 흘리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하느님의 일에 인간적인 애정이 끼어드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주님께 봉헌된 사람들의 마음이 어때야 하는지 잘 말씀드렸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기 위해 버려야 하는 것들을 오늘 복음에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찾아온 사람이 셋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 어느 정도는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기에 부족한 면들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어디든지 따라가겠다고 장담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길이 결코 편한 길은 아님을 먼저 말씀하십니다.

한 자매가 묵주기도를 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말을 걸어왔다고 합니다. 그도 전에는 성당에 다녔었다고 했고 그래서 여러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그 자매는 냉담 하는 그 분도 성당에 다시 나오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그 분은 성당에 나가면 무슨 돈이라도 나오냐는 듯이 이상하게 말하더라는 것입니다. 아마 처음엔 많은 복을 받는다는 뜻이 세상에서 부자가 된다는 의미로 알고 성당에 나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런 잘못된 의도로 나오면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주교 신자들 대부분이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성당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사실은 올바른 의도가 아닙니다. 올바른 의도는 바로 우리 영혼구원을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로 세상에 오셨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들의 의도도 구원받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영혼이 구원되어야 마음의 평화가 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것이지 자선단체 대표로 오신 것이 아닙니다.

사제나 수도자가 되는 것도 의식주가 해결되고 물질적으로 걱정할 필요가 없기에 그 길을 나서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물론 예전에 가난할 때 어떤 분은 사제가 당신 집에 오시면 어머니께서 계란을 밥 위에 올려주시는 것을 보고 계란이 먹고 싶어 신학교에 가게 되었다는 분도 계시기야 하지만, 어쨌든 이런 의도들은 나중에라도 정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물질적 편안함을 찾으며 동시에 당신을 따르겠다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당신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으니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당연히 아무 것도 지닐 수 없게 됩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편안함이 아니라 가난과 박해, 또 그것을 통한 하느님나라를 약속하시는 분이십니다.

 

또, 두 번째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되 먼저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오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은 그것조차 허락하시지 않고 지금 당장 복음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아버지의 임종을 보지 못하는 것도 불효인데 장례까지 빠진다면 그 동네엔 다시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을 아주 패륜아로 만드시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고 너는 가서 하느님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죽은 것을 죽은 것이라 하지 않습니다. 가파르나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이 아이는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다.”라고 말씀하셨고 라자로가 죽었을 때도 “잠자고 있는 라자로를 깨우러가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참다운 죽음이란 구원을 받지 못하는 것이고 영혼이 죽은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따르지 않고 하느님나라의 소식을 전하지 않는 것이 곧 죽음인 것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기라’고 하실 때, 첫 번째 죽은 자들은 육체적으로 죽은 자들을 나타내고, 두 번째 그들을 장례 치르는 죽은 자들이란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을 나타냅니다.

하느님의 일을 ‘첫째’로 삼을 줄 모르는 사람이 곧 죽은 자들인 것입니다.

요즘은 여름이라 모기나 벌레에 많이 물립니다. 가끔은 샤워를 하고 약을 바르고 옷을 입습니다. 그러면 옷을 입을 때 약이 옷에 다 닦여서 다시 발라야 하는 일이 발생합니다. 모든 일에는 다 순서가 있습니다. 그것을 어기면 첫 번째 한 것도 다 쓸모없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는 것보다 ‘세상 사람들의 시선과 평판’에 더 신경 쓰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저는 아침에 조금 일찍 일어나려고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아침에 기도를 충분히 해 놓아야 하루를 그 힘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밥을 먼저 먹어야 그 힘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하루에 해야 할 일을 먼저 다 마치고 밤늦게야 밥을 먹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도 두 번째 사람에게 하느님의 일을 먼저 선택할 줄 알아야 온전한 제자가 될 수 있음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기 전에 가족에게 먼저 인사를 하고 오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조차도 허락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우선순위를 가족에게도 빼앗기고 싶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가족일이 먼저인지 신앙이 먼저인지 고민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를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들어온다고 다 신부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소를 잃게 되는데 그 이유 중 대다수가 바로 이런 것에서 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성소보다 애정이, 어떤 사람들은 가정이 힘들어져서 자기라도 돈을 벌어 가정에 기여하기 위해 성소를 포기합니다.

저는 한 가지 법칙을 깨달았습니다. 신학교에 있는 동안 가족에게 신경을 쓰면 신경을 쓰는 것만큼 안 좋은 일이 일어나고 신경을 쓰지 않으면 다 잘 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가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겠다고 했으면 나의 빈자리는 하느님께서 알아서 몇 배로 다 채워주실 텐데 그것을 믿지 못하고 하느님의 일보다는 집안일에 더 신경을 쓰면 하느님께서 더 이상 해 줄 일이 없으신 것입니다.

주위에 가정일로 성소를 포기하는 사람을 보면 평소에도 가정에 너무 신경을 많이 쓰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가정에 너무 신경을 많이 써서 가정이 좋지 않게 되는 것인지 가정이 좋지 않아서 신경이 많이 쓰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런 일은 동시에 일어나는 일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만 따르겠다고 결심했다면 하느님만 따라야지 자꾸 뒤를 돌아보는 것은 그분의 제자가 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어머니와 형제들을 사랑하시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보다 더 중요시해야 하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에게 원하는 단 한 가지는 당신을 ‘첫 번째’로 선택할 줄 아는 마음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너를>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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