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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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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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7-02 ㅣ No.56996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13 주간 금요일 -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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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끼리 매일 전화를 하다가도 서로 싸우고 나면 잠시 동안 서로 전화를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서 서로서로 생각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자존심 때문에 상대가 먼저 전화를 걸어주기를 기다립니다. 어쨌거나 관계가 유지되려면 누군가는 먼저 다시 전화를 걸고 대화를 시작해야합니다. 만약 둘 다 끝내 전화를 걸지 않는다면 그 관계는 그것으로 끝나게 됩니다.

부모님에게 야단을 맞을 때 아이들이 묻는 말에 대답을 하지 않는다면 부모님은 더 화가 납니다. 대답이 없다면 자신들이 하는 말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말을 걸어옴에도 침묵하는 것은 관계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말을 하는 것입니다. 관계가 형성되려면 적어도 자신을 소개하는 정도의 말은 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도 우리와 관계를 맺기 위해 먼저 당신 자신을 드러내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셨다면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대화를 걸어오셨고 그 대화에 응답하면 드디어 하느님과의 ‘관계’가 형성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서로 대화를 하는 것을 우리는 ‘기도’라 부릅니다. 따라서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과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마태오를 부르십니다. 마태오는 자기 나라 사람들에게 세금을 걷어내어 지배자인 로마에게 바치는 매국노요 죄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다만, “나를 따라라.”라고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마태오는 세금 걷는 것을 그만두고 곧바로 예수님을 따라 나섭니다. 이것이 곧 ‘응답’입니다. 예수님은 말을 걸으시고 마태오는 응답하였기에 죄의 삶에서 성인의 삶으로 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서로간의 대화를 통하여 하느님의 적에서 하느님의 친구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마태오는 어떻게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에 바로 응답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학교 수업시간에 창문을 바라보며 다른 생각에 잠길 때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 때 선생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지 않습니다. 이렇게 다른 생각에 정신이 팔려있을 때면 선생님이 불러도 듣지를 못합니다.

따라서 마태오가 그리스도께 응답을 바로 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있었다면 예수님의 말씀에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을 테지만, 마태오는 이미 죄의 악취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을 구원해 줄 목소리를 애타게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도 예수님은 수없이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얘야, 그것 하면 안 된다. 얘야, 남을 판단하면 안 된다. 얘야, 그렇게 말하면 상대가 상처를 받는단다. 그렇지, 그렇게 하는 것이 잘 하는 것이다... ”

살아가면서 이런 말씀을 매 순간 듣지 못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의 목소리보다는 다른 것에 정신이 너무 팔려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의미로는 예수님과의 관계를 원하고 있지 않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매순간, 우리 안에서 울려오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마태오처럼 응답을 하며 살 수도 있고, 아니면 그분의 목소리는 응답받지 못하고 허공에 사라지고 그렇게 그분과의 관계도 소원해지게 됩니다.

말씀에 응답하지 않는데 예수님께서 계속 허공에 대고 말을 걸어주시지는 않습니다. 예수님도 응답이 없는 사람에게는 조금씩 말씀을 줄여가십니다. 진주를 돼지에게 주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이 의미는 그분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그분 말씀을 무시하고 사는 사람에겐 더 이상 말씀이 내리지 않고 그렇게 굶주리게 되리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이 땅에 굶주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이 아니고, 물이 없어 목마른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여 굶주리는 것이다.

 

마태오는 응답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늘나라의 큰 기둥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들리고 안 들리고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가에 달려있습니다. 들으려고만 해 봅시다. 예수님께서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에게 말씀을 걸어오시고 계셨다는 것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 주님의 사랑이 이 곳에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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