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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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 희망, 사랑" - 8.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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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 [damiano53] 쪽지 캡슐

2010-08-01 ㅣ No.5770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10.8.1 연중 제18주일

코헬1,2;2,21-23 콜로3,1-5.9-11 루카12,13-21

 

 

 

 

 

 

"믿음, 희망, 사랑"


 

 

몇 가지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자녀문제로 수도원에 기도하러 온 부부가

갑자기 면담 차 제 집무실에 들렸습니다.

다 잘 끝나고 나가려던 때 부인이 아주 쑥스러운 표정으로

“빈손으로 와서 미안합니다.” 말했습니다.

얼마 후 어느 본당 자매를 수도원에 안내한 한 자매님 역시 면담 성사 후,

“갑자기 오느라 준비를 못했습니다.” 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전혀 생각도 안했는데 뜻밖이었습니다.

순간 저절로 신음처럼

‘아,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얼마 전에는 문병 차 외출하여 한창 걷던 중,

‘아, 돈 없고 늙고 병들면 참 살기 힘들겠다.’라는 생각이

불쑥 들었습니다.

갈수록 돈의 위력이 맹위를 떨치는 시대입니다.

정말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심지어는 사랑까지 할 수 없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돈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돈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한 자각입니다.

 

보이는 ‘돈’과 대척점에 있는 게 바로 보이지 않는 ‘하느님’입니다.

돈 없이 못 살듯이 하느님 없이도 못 산다고 고백해야 맞습니다.

‘돈 맛’도 좋지만 ‘하느님 맛’을 더 좋아해야 합니다.

요즘 열대야로 잠 못 이루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잘 잠자는 비결을 알려 드립니다.

저도 얼마 전 부터는 이 방법을 터득하여 잠 잘 자고 있습니다.

밤 산책 중 길게 누워 잠든 듯이 보이는

야콘 밭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떠오른

‘하늘 꿈꾸며 잠드는 초록빛 밭처럼’ 이란 시입니다.

 

 

 

나 누워

잠들 때 마다

밤 산책 중

초록빛 밭을 생각한다.

 

어둠의 이불 덮고

고요히 누워

푸른 하늘

흐르는 구름

빛나는 별들

품에 안고

풀벌레

자장가 들으며

하늘 꿈꾸며 잠드는

초록빛 밭처럼

나 잠든다.

 

 

하늘 꿈꾸며, 하느님 꿈꾸며 잠들 때 깊고 단 잠입니다.

주께서는 사랑하시는 자에게

잘 때에도 은혜를 베푸신다는 시편 구절도 있습니다.

우리 인생의 궁극 문제에 답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입니다.

하느님 향한 믿음, 희망, 사랑이 답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주제입니다.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 믿음’ 이 하나뿐입니다.

믿음의 빛만이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허무는 우리를 부르는 하느님 침묵의 초대장입니다.

회색 빛 구름 걷히면 태양 빛나는 푸른 하늘이듯이

허무의 베일이 벗겨지면 하느님 빛으로 충만한 현실입니다.

믿지 않는 이에게 텅 빈 허무가

믿는 자에게는 하느님 현존의 충만이 될 수 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에서 이처럼 허무의 심연인 지옥을 살 수 있고,

하느님 현존으로 충만한 하느님 나라를 살 수 있습니다.

나이 들어 갈수록 영혼의 질병과도 같이 집요하게 따라 붙는 허무감입니다.

다음 코헬렛의 절규와도 같은 고백은

종교의 유무를 떠나 사람 누구나 공감하는 실존적 체험입니다.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지혜와 지식과 재주를 가지고 애쓰고서는

애쓰지 않은 다른 사람에게 제 몫을 넘겨주는 사람이 있는데,

이 또한 허무요, 커다란 불행이다.

아래서 애쓰는 그 모든 노고와 노심으로 인간에게 남는 것이 무엇인가?

그의 나날은 근심이요, 그의 일은 걱정이며,

밤에도 그의 마음은 쉴 줄을 모르니, 이 또한 허무로다.”

 

하여 하늘 꿈꾸며, 하느님 꿈꾸며 잠자는 방법을 꼭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하느님 믿음의 빛만이 근심과 걱정의 어둠을 몰아내

깊고 고요한 단잠을 자게 합니다.

허무는 절망이 아니라 하느님 찾으라는 말없는 신호요,

하느님 향한 활짝 열린 문입니다.

하여 허무로 시작한 코헬렛은 하느님 경외로 끝맺습니다.

 

“마지막으로 결론을 들어보자.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라.

이야말로 모든 인간에게 지당한 것이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십시오.

 

세상을 보면, 사람들을 보면 절망이지만 하느님을 보면 희망이 샘솟습니다.

이 하느님 희망의 눈으로 볼 때

비로소 세상은, 사람들은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정말 영혼의 죽음에 이르는 무서운 병은 절망입니다.

살기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을 봐야 합니다.

하느님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어야 합니다.

이 희망이 세상살이에서 오는 시련과 고통의 충격을 완화해 주고,

우리 영혼이 하느님을 향하게 해줍니다.

사도 바오로 역시 오늘 콜로새서 독서를 통해

우리 모두, 천상의 하느님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고 살라고

간곡히 당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 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이미 죽었고,

여러분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보이는 것들에 궁극의 희망을 두지 말고

천상의 하느님께, 그리스도께 희망을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세상의 부정이 아니라 천상의 빛으로 세상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래야 세상 보이는 것들의 유혹에 빠지지 않습니다.

혼란하고 무질서한 삶도 단순해지고 질서가 잡힙니다.

말 그대로 이상적 현실주의자의 삶입니다.

천상적 희망의 증대와 더불어 우리 안에 있는 현세적인 것들,

곧 불륜, 더러움, 욕정, 나쁜 욕망, 탐욕은 저절로 시들어 죽습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바로 이게 우리 영적 삶의 목표요 미사은총이기도 합니다.

하느님 향한 끊임없는 희망이

우리를 날로 새롭게 하면서

하느님을 닮은 참 지식의 새 인간이 되어 살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을 사랑할 때 깨달음의 지혜입니다.

저절로 자아초월에 무집착의 초연한 삶에 내적 자유입니다.

무지에서 샘솟는 탐욕과 교만이요

탐욕과 교만은 더욱 우리를 눈멀어 무지하게 만듭니다.

무지의 어리석음에서 해방되는 길은 단 하나 하느님 사랑뿐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자비와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은 빈부격차를 말씀하시지도 않으며

부자를 정죄하지도 가난을 찬양하지도 않습니다.

그 재산을, 돈을 어떻게 관리하느냐를 보시지

재산이나 돈의 많고 적음을 보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무지의 사람들은 돈 맛만 알지 하느님 맛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명을 보장해 주는 것은 돈이 아니라 하느님인데,

한 치 앞도 못 보는 사람인데, 재산이나 권력에 명예에 모두를 걸다니

참 어리석기 짝이 없습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그의 재산에 달려 있지 않다.”

 

복음의 어리석은 사람은 바로 돈뿐이 모르는 돈에 환장한

오늘 날 많은 사람들의 모습 같습니다.

곡식과 재물을 모아 둘 곳간을 챙기기 전

하느님 창고에 내 믿음, 희망, 사랑은 얼마나 있는지 챙겨야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소유와 온갖 근심 걱정에 포로 되어 하느님을 잊고 참 자기를 잊고,

이웃을 잊고 사는 사람들 참 많을 것입니다.

새로 만든 곳간에 곡식과 재물을 가득 채우고

영원히 살듯이 만족해하는 어리석은 부자를 향한 주님의 탄식입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의 차지가 되겠느냐?”

 

하느님과 자기, 이웃은 물론 죽음도 까맣게 잊고 산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이래서 사막교부들은 이구동성으로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말씀 하셨습니다.

때로 하느님의 눈으로 나의 현 상태를 점검해 봄이 좋겠습니다.

태양 빛에 사물의 윤곽이 뚜렷이 들어나듯이

하느님을 사랑할수록 사랑의 빛에 무지와 탐욕의 어둠은 사라져

자비와 지혜 가득한 삶이 펼쳐집니다.

무지와 탐욕에 대한 유일한 처방은 하느님 사랑뿐입니다.

복음의 어리석은 부자처럼 하느님을 모를 때,

또 하느님을 잊고 지내거나 하느님 사랑이 식어 버릴 때

곧장 무지와 탐욕의 어리석은 삶이요 이 또한 우리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하느님을 믿으십시오.

 

하느님 믿음의 빛만이 허무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하느님께 희망을 두십시오.

 

하느님 희망의 빛만이 절망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이 희망이 우리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 지식의 새 인간이 되게 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십시오.

 

하느님 사랑에서 오는 깨달음의 지혜요 자비로운 삶입니다.

하느님 사랑의 빛에 흔적 없이 사라지는 무지와 탐욕, 교만의 어둠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주님 향한 우리의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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