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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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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0-09-09 ㅣ No.58495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9월 9일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Do to others as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Lk.6.31)
 
 
 
제1독서 1코린 8,1ㄷ-7.11-13
복음 루카 6,27-38
 
세계에는 시베리아의 툰드라 지방부터 더운 열대 지방까지 개미가 8,800여 종이 살고 있으며, 전 세계 개미의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렇게 많은 개미가 이 지구상에서 일시에 없어진다면 어떨 것 같습니까? 그렇게 작은 개미가 무슨 영향을 미칠까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에 의하면 아주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개미들은 식물의 씨앗을 분산시켜 주고 씨앗에 해가 되는 벌레들을 잡아먹으며 땅을 헤집고 다녀서 식물이 자라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흔해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지만, 또한 너무 작고 약해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개미의 역할은 생각보다 많고 중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것을 따져봅니다.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필요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주님의 시선으로 보기 보다는 세상의 시선으로 보기 때문에 소중하고 꼭 필요한 것의 기준을 잘못 세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끊임없이 잘못된 판단을 반복하고 있으며,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주님의 작품 중에서 그 어떤 것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작고 약한 개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면 주님 작품 중에서 최고봉이라 할 수 있는 우리 인간은 어떨까요? 가장 소중하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이웃 사랑을 크게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심지어는 원수조차도 사랑해야 함을 말씀하시지요.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그 원수 역시 주님의 멋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시 이웃 사랑의 계명을 새롭게 해석하십니다. 한 인간의 이웃은 모든 인간 개개인이며 여기에는 원수들까지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그 누구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누구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는 자신이 학대하고 증오하며 저주를 내리는 그 사람을 위해 살아가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까지의 황금률인 “네가 싫어하는 일은 아무에게도 행하지 말라.”는 규범을 확대시켜서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남이 너희에게 해 주기를 바라는 그대로 너희도 남에게 해주어라.”

여기에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규범 안에는 원수에게까지도 선을 행하는 사랑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 사랑의 계명에 대해 불만을 갖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 살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 손해 보는 행동을 하냐고 따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결코 손해 보는 행동이 아니라고 하시지요.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우리의 구원이 결정되는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큰 이득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행동은 어떠해야 할까요? 바로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필요할 때입니다.


사랑을 얼만큼 주는가에 따라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다(존 레논).





내 이웃, 현주씨(조송미, ‘좋은생각’ 중에서)

형편이 어려워 방 2칸짜리 반 지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7년이나 지내면서도 괜한 자격지심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 관심도 없고, 아는 이웃 하나 없이 그럭저럭 살았지요.

그러다 작년 봄, 집 앞 공터에 고추와 상추 모종을 심었더니 무럭무럭 잘 자라더군요. 어느 날 볼일 보고 오는데, 아기를 업은 젊은 여자 분이 고추를 따고 있었습니다. “아니, 왜 남이 심어 놓은 고추를 따세요?” 쌀쌀맞게 언성을 높였지요. 아기 엄마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죄송해요. 많이 열렸기에... 너무 죄송해요.” 하며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앞으로 따 가지 마세요. 계속 서서 지킬 수도 없고...” 하면서 집으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이 정말 한심하더군요. 다 먹지도 못할 거면서 그렇게까지 무안 주지 않아도 될 것을... 고추와 상추를 한 바구니 따서 아기 엄마의 집으로 찾아갔습니다.

“아까는 화내서 무안했죠? 이것 받으세요.” 그러자 아기 엄마는 놀란 표정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해서 고향에 사시고, 남편은 방글라데시 사람이라며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고 하더군요. 그날 저녁 아기 엄마는 삽겹살을 사 들고 왔습니다.

아기 엄마는 내가 “현주 씨.”하고 이름을 부르면 무척 좋아합니다. 현주 씨는 그 뒤 콩 한 쪽이라도 꼭 나누어 먹고, 나를 친언니처럼 따른답니다.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나보다 더 힘들 것 같은 현주 씨는 항상 밝고 여유롭습니다. 올해는 같이 모종을 심었습니다. 이웃과 나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줄 예전에는 미처 몰랐습니다.

 
 
 
 
Always In A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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