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4일 (월)
(백) 성 요한 세례자 탄생 대축일 그의 이름은 요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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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갈라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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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0-21 ㅣ No.59367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9 주간 목요일 - 분열을 일으키러왔다

 


 

방학에 한국에 들어가서 제가 첫 번째로 추천서를 써 주어 지금 수련중인 예비 수녀님을 만나고 왔습니다. 그 자매는 제가 보좌 신부로 있던 성당에서 교리교사를 하던 자매였습니다. 매주 다른 교사들보다 일찍 나오고 모든 일에 열심히 하였고 기도와 교육을 참여하는 것도 남달랐습니다. 저는 ‘저렇게 신앙심이 깊은 것을 보니, 수녀원에 가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그렇게 말도 해 보았는데, 사실 놀랍게도 그 자매는 세례를 받은 것이 일 년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적어도 수녀원에 들어가려면 세례 받은 지 삼년은 지나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계속 성소 모임에 나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러다 말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저에게 추천서를 써달라기에 본당 신부님의 허락을 받고 로마에 있으면서 수도회에 추천서를 보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저의 첫 딸이 된 셈입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그 자매에게 불을 놓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타오르다 말 줄 알았더니 더 활활 타오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에게 이런 성령의 불을 놓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예수님께서 세상에 주신 성령의 불은 당신의 수난공로의 덕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물이 바로 예수님 심장에서 나오는 사랑의 불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놓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고난을 당하셔야 하는지를 미리 말씀하십니다.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예수님께서 짓눌려져서 당신 안에 있는 사랑의 불을 세상에 쏟아 부으셨지만 사실 평화보다는 분열을 일으키시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위의 자매가 갑자기 성당에 다니게 되었기 때문에 가족들은 당연히 비신자들입니다. 성당 다니자마자 교사를 한다고 해서 거의 성당에서 살다시피 하더니 이젠 수녀가 된다고 하니 가족들은 혼란에 빠졌습니다.

형제 중에 반대를 하지 않는 형제도 있었지만 부모님을 비롯하여 대부분이 그 결정에 반대를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거의 딸을 보려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물론 그 자매도 아버지에게 그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집에서 쫓겨날 각오도 하였었습니다. 다행이 쫓겨나지는 않았지만 가정은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역시 예수님은 평화를 주시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불로 분열을 일으키러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정말 분열일까요? 또 평화가 다 좋은 것일까요?

그 자매 가정엔 분열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엔 평화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을 알고도 거부했다면 가정엔 평화가 있었겠지만 그 사람 마음엔 평생 주님의 뜻을 어겼다는 생각에 분열이 있었을 것입니다.

평화와 일치가 다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귀 두목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낸다고 유다 지도자들이 모함을 하자, 한 나라도 서로 갈라져 싸우면 망하게 되는 법이라고 하면서 마귀들도 서로 단합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귀들이 하느님을 미워하고 인간들을 미워해서 구원받지 못하게 하려고 한 마음으로 인간을 죄의 구렁텅이로 끌어내리는 것이 참다운 일치이고 평화일까요?

주님께서 주시는 분열은 외적인 것이지만 실제로는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 가족들도 모두 주님께로 오리라 믿습니다. 왜냐하면 저의 경우도 그랬기 때문입니다. 저도 신학교에 들어간다는 것을 아버지께 제일 마지막에 말씀드렸습니다. 화를 내시고 반대하실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안 이상 육적인 부모의 뜻과 하느님의 뜻을 맞서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 안에 성령이 불타고 있다면 가정의 분열은 큰 이유가 되지 못합니다. 결국 아버지의 반대가 심하였지만 지금은 아버지께서도 제가 사제가 된 것을 기뻐하시고 지금은 성당에 열심히 다니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조심스러울 필요도 있습니다.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분열을 이길 힘도 얻게 되는 것인데 자칫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될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어떤 자매님이 성당에 다니시는 것을 남편이 매우 싫어해서 어떻게 하면 좋으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참 난감한 질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님도 그리 강한 믿음을 지니시지는 않은 듯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선은 남편과 갈라지면 안 되니까 미사를 나오지 못하더라도 잠시 동안은 남편의 뜻에 따라주라고 하였습니다. 어느 순간에 남편의 모든 박해를 참아 받을 수 있을 만큼 성령의 불이 타오른다면 그 때는 마음에서 들려오는 성령의 뜻을 따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것, 처음엔 힘이 듭니다. 그러나 결국 모든 이들을 당신 안에서 일치시키려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당분간 힘든 것을 견뎌내야 합니다.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기 위해서 어머니는 진통과 피를 흘려야합니다. 고통 없이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영혼이 새로 태어나기 위해서는 얼마나 많은 진통이 필요하겠습니까?

이런 진통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그 진통 뒤에 그 진통을 충분히 잊고도 남을 새로운 생명의 탄생의 기쁨이 온다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도 물론 성령님이 주시는 믿음입니다. 만약 그런 확고한 믿음만 있다면 더 이상 신중할 필요도 없습니다. 순교도 두렵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은 가정 안에서도 좋은 열매를 맺게 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혹 믿음 때문에 가정이 분열 됩니까? 조금만 참으십시오. 이는 더 큰 일치를 위한 진통입니다. 나의 고통을 통해 온 가족이 주님 안에서 일치하면 그 이전의 고통은 기쁨으로 남을 것입니다.

 

 

갈라지는 수밖에

 

지금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만났던 사람들 중 지금까지 만나고 있는 사람은 아주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시골에 살 때, 함께 살았던 친구 중, 천주교를 믿지 않았던 친구들은 지금 어떻게 사는지도 모릅니다. 초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 중 많은 수가 중학교 올라오더니 안 좋은 쪽으로 빠져서 그 친구들과도 함께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은 대학을 서로 다른 곳으로 가다보니 지금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대학교 친구들은 한국 가면 가끔씩 만나기는 하지만 연락을 하며 지내는 사이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대화 주제가 직업이나 가정 이야기이고, 또 모이는 장소가 사제가 가기엔 적당치 않은 곳에서 만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청년 때 성당에서 함께 봉사하던 청년들도 제가 사제가 되고서는 만남이 쉽지 않습니다. 그들은 평신도이고 저는 사제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유학하면서 만났던 친구들은 공부가 끝나면 다 각자 자기 나라로 가기 때문에 연락이 되지 않고, 또 평생 만나지도 못 할 것을 알면서 연락을 하는 것도 무의미하게 느껴집니다. 사제가 되어 만났던 신자들도 제가 다시 유학 나와 있어서 연락이 계속 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오랜 관계가 지속되는 사람들은 함께 사제가 된 친구들입니다. 새도 같은 무리끼리 어울리듯이 사람도 같은 부류끼리 대화도 되고 친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한결같지 못하고, 또 어떤 면에서는 한결같아서는 안 되기도 하기에 만남과 헤어짐은 죽을 때까지 연속적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만나면 반드시 헤어지게 되고(會者定離), 헤어짐은 만나기 위함이라는 말이 있나봅니다. 어쩌면 만날 때부터 헤어질 것을 생각하게 되는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지도 모릅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신이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불을 지르러 오셨다고 합니다. 성령의 불을 질러 사람들이 서로 갈라지게 하려고 오셨다고 하십니다.

제 1 독서에서는 성령님이 어떻게 사람을 바꾸어 놓는지 바오로 사도가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먼저, 성령님이 오십니다. 그리고 마리아가 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셨듯이, 성령의 은총인 믿음으로 자신 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됩니다. 그 그리스도와 일치됨으로써 사람은 이전 사람이 아닌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변해가게 됩니다.

물론 성령님이 오시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의 그릇을 씻어야 하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이 들어오시는 것입니다. 이 피와 물, 즉, 정화와 성령님의 오심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을 우리는 ‘성사’라 부릅니다. 물론 가장 완전한 성사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성체성사입니다.

 

사람과 헤어지는 것이 싫다고 변하기를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어차피 갈라지게 될 것을 예언하시는 것이고,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사람도 주위에 반드시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박해도 각오해야 하지만,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변해가는 것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람들 마음 안에 성령의 불을 질러 사람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이 성자께서 사람이 되신 유일한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 내 안에 사는 이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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