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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흐르는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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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0-22 ㅣ No.59405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29 주간 금요일 - 징조에 민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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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젊은이가 사회가 자신을 무시한다는 이유로 고시원에 함께 살고 있던 조선족들을 비롯한 여자들을 살해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정부가 하는 일이 못마땅해 국보 1호를 불태워버렸습니다. 또 길거리에서 아무 이유 없이 살해를 당하는 많은 사건들도 뉴스에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이런 것을 보면 그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우발적으로 사건을 저지른 것처럼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정상적인 사람이 착했다가 한 순간 갑자기 변해서 그런 사건을 저지를 수는 없습니다.

작은 구멍이 큰 둑을 허물어뜨리듯이 큰 잘못도 다 작은 것들이 누적되어 일어나는 것입니다. 한 순간에 성인이 되는 사람도 없고 한 순간에 살인자가 되는 사람도 없습니다. 만약 살인자가 되었다면 그 이전에 그런 징조가 나타났을 때 고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리옷 유다도 한 순간에 변하여 예수님을 배신하였다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바오로 사도도 한 순간에 회개하였다고 하면 오산입니다.

 

문제는 점점 나빠지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는 것에 있습니다. 화살은 겨냥하는 방향으로 날아가듯이 지금의 나의 모습도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방향으로 날아가고 있다면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것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것들이 징조입니다.

이 징조에 둔감하면 결국 큰일을 당하고 맙니다. 얼마 전에 이태리 아퀼라 지방에서 큰 지진이 있어서 이례 없이 수백 명이 사망하였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이미 땅에서 솟아나는 징조를 눈치 채고 정부에 사람들을 피신시켜야 한다고 여러 차례 언질을 준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 또 산사태로 수십 명이 매몰되어 사망하였습니다. 이것도 예고 된 재난이었습니다. 산이 허물어져가는 것을 고치라고 이미 돈이 지불 된 상태였는데 그 액수가 터무니없이 작아서 고치지 않고 그냥 방치하였다가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만 것입니다. 우리나라 삼풍백화점도 이미 예고되어져 있었다고 하고 미국의 911 테러도 정부엔 이미 보고가 되어져 있던 상태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예고되지 않은 재난이란 없는 것 같습니다.

 

아주 작은 징조라도 잘 캐치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영성적으로도 민감한 일일 것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작은 일도 결코 작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아주 작은 일이라도 하느님 허락 없이 벌어지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나에게 벌어지고 있는 것들이, 마치 500미터 전부터 계속 속도 카메라가 있다고 가르쳐주는 도로 표지판과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뻔히 보면서도 굳이 인정하려하지 않고 고치려 하지 않는 것이 잠을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잠을 자기 때문에 자신이 조금씩 나빠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합니다. 개구리를 물에 넣고 조금씩 끓이면 개구리는 온도의 변화를 느끼지 못하고 죽고 만다고 합니다. 그 변화를 느껴 재빠르게 물 밖으로 뛰어나오면 살 것이지만 작은 변화는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세상 것들은 예표를 보고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면서도 인간 일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예측 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작은 잘못이 쌓이는데도 자신의 잘못을 바꾸려하지 않으면 결국 큰일을 벌이고야 만다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자신을 방치하기 때문에 큰 잘못을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에게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이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뻔한 일은 누구를 미워하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 우리 스스로,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우리가 용서하오니,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인데도 신자들의 많은 경우 아직도 미움을 가지고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건 깨어있지 못한 것입니다. 만약 지금 당장 주님께서 부르신다면 그 미움 때문에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적어도 미움이 지금 이대로 지속되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래서 마지막에 이렇게 덧붙이시는 것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이는 미움을 지니고 계속 살다가 마지막을 맞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자, 우리들도 지금 이대로 계속 간다면 구원을 받을 확신 속에 살고 있습니까? 나를 돌아보고 지금 이대로 계속 되어도 괜찮은지 항상 되물으며 큰 재난을 당하기 전에 어떤 징조가 있으면 바로바로 고쳐나가야 하겠습니다.

 

 

흐르는 강물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오늘 식사하는데 한 신부님께서 밤에 꿈을 꾸었는데, 자신이 사제 옷을 벗고 다른 여자와 살림을 차린 꿈이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하나’ 막막하기도 하고, 성당에 갔더니 자신이 잘 알던 사무장님도 성당에 못 들어오게 막았다고 합니다. 밤새 이런 꿈을 꾸고 깨어나니 많이 피곤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한 번은 전에 좋아했던 여자와 신혼살림을 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사제로 살면서도 결혼에 대한 환상은 여전히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처음엔 좀 좋더니, 아침에 출근하기 위해 밥을 먹으려고 앉아있는데, 짜증과 잔소리를 해 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성격들이 예전에 실제로도 조금씩 보였었기 때문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어떻게 평생 저 성격을 겪으며 살아야할까?’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잠을 깼는데, 사제관이었습니다. 저는 바로 성호를 긋고 한 사람이 아닌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저를 뽑아주신 하느님께 서품 받을 때보다도 더한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 한 번은 아침에 일어났는데, 시간이 8시가 넘은 것이었습니다. 새벽미사를 주례했어야하는데, 본당 신부님께 혼날 것이 분명했습니다. 저는 조심스럽게 밖으로 나왔습니다. 사무장님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수녀님, 신자 분들도 저를 보는 시선이 예전과 전혀 다를 것이 없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주임 신부님이 아무 말 없이 대신 나가서 미사를 했구나.’ 생각했습니다. 용서를 청하기 위해 주임 신부님을 만나러 가려고 하는데, 문득 ‘혹시 내가 일어나서 미사를 하고 다시 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가만히 생각해보니, 정말로 일어나 미사를 하고 다시 들어와 잠을 잔 것이 너무 꿀잠을 잤기에 미사 한 것을 잊어버렸던 것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또 하느님께, 해야 할 것을 꼭 하게 해 주신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아주 단순한 논리지만, 후회하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꼭 해야 하는 일을 하지 않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해버렸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한 번 지나면 되돌아오지 않고, 한 일도 되돌이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 번 들어갔던 강물에는 다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물은 이미 흘러가버렸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라고 꾸짖으십니다.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라는 것을 아는 것처럼, ‘잘못을 저질렀으면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그런 것은 무시하면서 사는 사람들을 두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죗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은 이미 우리 양심이 알고 있습니다. 어린 아이가 물병을 깨서 엄마가 열심히 치우고 있다면 아이도 무언가 돕고 싶어서 안절부절 못 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임이 자신에게 있고, 자신도 그 책임을 져야 함을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자신의 양심을 통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다에서 선원들은 일기예보를 주의해서 듣고 태풍이 온다고 하면 일찌감치 배를 철수시킵니다. 일기예보가 만의 하나 틀릴 수도 있지만, 그 희박한 확률에 목숨을 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예수님은,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라고 하시며 반드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라고 예고하십니다.

 

한 번은 로마에서 주일에 약속을 하고 시간에 맞추어 나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만나려 한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한 시간 전에 나왔다가 기다리다 가버린 것입니다. 저는 그날 서머타임이 시작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대죄가 있어도 고해성사도 못 보고 심판대에 서게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마지막 날에 우리가 뻔히 우리의 한 일과 하지 못한 일에 대해 심판을 받고 책임을 져야 할 터인데, 준비할 시간을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다만 꼭 해야 할 것은 미리미래 해 놓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앞으로 반드시 있을 심판에 대한 좋은 준비가 될 것입니다. 물론 잘못을 했더라도 고해성사를 미리미리 보는 것이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심판에 대비하는 현명한 모습일 것입니다.

 

 

 

< 나의 하느님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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