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0월 22일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You hypocrites! You know how to interpret
the appearance of the earth and the sky;
why do you not know how to interpret the present time?
(Lk.12.56-57)
제1독서 에페소 4,1-6
복음 루카 12,54-59
뉴욕의 운전 면허증 관리 사무실에 특이한 편지가 한 통 왔답니다. 편지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지요.
“나는 이제 곧 91세가 된다. 이제 나이가 많아서 더는 운전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자진해서 면허증을 반납한다. 그러나 25세부터 운전을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한 번도 사고를 내거나 벌금을 낸 적이 없다. 60여 년 간 무사고로 운전하고 이제 스스로 면허증을 반납하게 되어 대단히 자랑스럽다.”
이 할아버지처럼 60여 년 간을 운전하면서 벌금도 안 내고 사고 없이 지내다가 자진해서 면허증을 반납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저 역시 운전을 한 지 10년 정도가 되었는데, 그 동안에 커다란 사고도 한 번 있었으며 벌금을 낸 경우도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할아버지처럼 무사고에 무벌금은 정말로 어렵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 할아버지의 무사고 무벌금 운전의 비결은 무엇일까요? 이 비결을 할아버지에게 묻자 할아버지는 아주 단순하게 답변하셨습니다.
“항상 교통 규칙을 잘 지키고, 먼저 양보하고,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것이다.”
무사고 무벌금 운전의 비결은 사실 그 자체로는 어려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문제는 꾸준히 실천하기가 어렵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교통 법규를 지키지 않는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나만큼은 지키겠다는 마음을 먹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또한 바쁘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참고 인내하며 교통 법규를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기본을 지켜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운전에서만 해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우리 삶 전체 안에서 철저히 기본을 지켜야 합니다. 특히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삶을 위해,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마음, 빠른 결과만을 추구하는 성급함, 나의 욕심을 먼저 채우려는 이기심 등을 없애는 기본적인 원칙들이 내 안에서 완성되어야 합니다.
무사고 무벌금 운전의 비결은 간단한 규칙을 철저하게 지킬 때에 이루어지는 것처럼, 주님을 따른다는 것 역시 간단한 규칙인 사랑의 법규를 철저하게 지켜질 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라면서 꾸짖고 계시지요. 바로 세상 안에 묻어나는 주님의 뜻을 올바르게 판단하여 실천해야 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 말 자체로는 어렵지 않습니다. 단지 실천하기가 어려울 뿐이지요.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렇게 철저하게 따르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이라는 커다란 선물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을 기억하면서 쉽게 포기하기보다는 다시 열심히 실천해 나가는 우리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나쁜 아이디어가 지름길로 가라 해도 넘어가지 마라. 인생은 커브 길이니 때로는 돌아서 가야한다(빌터 뫼르스).
![](HTTP://bbs.catholic.or.kr/attbox/bbs/include/readImg.asp?gubun=100&maingroup=2&filenm=img%5F38%5F10343%5F4%5Fmarsss7%2833%29%2Egif)
아버지와 신발(정호승, ‘너를 위하여 나는 무엇이 될까’ 중에서)
아버지는 언제나 내 발보다 큰 신발을 사 주셨다. 처음에는 키가 쑥쑥 자라니까 일부러 큰 신발을 사 주시는 줄 알았다. 또 가난한 형편에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신으라고 그러시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무슨 신발이든 그리 오래 신지 못했다. 내 발이 채 크기도 전에 신발이 먼저 닳아 버렸다. 품질이 나빴기 때문이다. 아무리 아껴 신어도 금세 닳아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을 기회란 거의 없었다.
나는 언제나 그게 불만이었다. 신발이 벗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걷지 않으면 안 되었다. 한번은 학교 운동회 때 큰 신발을 신고 달리기하다 꼴찌를 한 적도 있다. 나는 자연히 걸음걸이가 느려졌으며, 아무리 급해도 뛰어가는 일이 드물었다.
그 뒤 어른이 되어 이번에는 내가 아버지에게 신발을 사 드렸다. 아버지 회갑을 기념하기 위해 어느 구두 가게에 들른 나는 아버지에게 말했다.
“이번에는 아버님이 한 치수 큰 구두를 사세요.”
그러자 아버지가 빙긋 웃으면서 말씀하셨다.
“내가 네 발보다 큰 신발을 사 준 것은 나름대로의 생각이 있어서였다. 항상 여유를 가지고 살라는 뜻이었지. 자기 발에 꼭 맞는 신발을 신고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바쁘게 사는 것보다, 조금 헐거운 신발을 신고 여유 있게 걸어 다니며 사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
Love - Guido Negrasz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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