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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첫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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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1-15 ㅣ No.59969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33주간 월요일 - 은총과 인연


 

어떤 사람이 아직 동이 채 뜨기 전 강가로 산책을 나갔습니다. 어둠 속에서 강가를 거닐던 중 그는 무언가 자루 같은 것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넘어진 채로 자세히 보니 그건 가방이었습니다. 호기심에 그 가방을 열어 보니 돌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심심하던 차에 그는 강가에 앉아서 그 가방 속의 돌들을 하나씩 꺼내어 강 속으로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던질 때마다 어둠 속에서 ‘첨벙 첨벙’ 들려오는 물소리를 즐기며 그는 해가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한 개의 돌을 무심코 던지려는 순간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손에 들고 있는 돌멩이가 떠오르는 태양 빛에 반짝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놀란 그는 돌을 들여다보고서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 마침 아침 산보객들이 모여들어 묻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누가 강물에 빠져 죽었습니까?” 그가 통곡을 하다 말고 대답을 합니다. “여보시오. 이게 뭔지 아시오? 다이아몬드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 가방 속에 수백 개의 다이아몬드가 들어 있었소. 그런데 나는 그게 다이아몬드인 줄도 모르고 거의 한 시간이 넘도록 강물 속에 다 던져 버렸단 말이요 그래서 이젠 한 개밖에 남지 않았소.” 그는 계속 통곡하더랍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수많은 은총의 기회가 오는데도 잡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내는 경우가 많을 수 있습니다. 그 은총들을 그냥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서는 눈을 부릅뜨고 이것이 혹 주님께서 주시는 기회는 아닌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선 그냥 스쳐지나갈 뻔 했던 은총을 확 낚아챘던 예리고에 살던 소경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기적을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지만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 분이 자신 앞을 언제 지나가실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꾸준히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혹시 예수님이 지나가시지 않느냐고 물어봅니다.

물론 어떤 사람들은 짜증을 내기도 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분은 이곳을 지나가지 않을 것이라고 하며 낙심을 시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소경은 소망이 있는 곳이면 반드시 그분께서 그 곳을 지나치시면서 원하는 바를 들어주실 분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자신도 믿음으로 눈을 뜨기를 원하고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것임을 믿었습니다.

결국 어떤 사람에게 그 분이 혹 지나가시느냐고 물었더니 정말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금방이라도 눈이 떠질 것 같은 기분으로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소리소리 지릅니다.

다른 사람들은 소경이 그렇게도 기다려오던 분이 지나가셔서, 그리고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는 마음으로 온 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오히려 조용히 하라고 소경을 꾸짖습니다.

그러나 소경은 멈출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기다려왔는데!’

예수님은 드디어 그 소경의 음성을 듣고 눈을 고쳐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당신이 지나가실 때 당신께 소리소리 지르며 무엇을 원한다고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원하지 않는 사람에겐 아무 것도 주실 수 없습니다. 그런 은총은 교만만 키우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운전을 하고 산길을 갈 때였습니다. 기름이 다 떨어진지 한참이 되었지만 주유소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주유소가 있는 곳을 내비게이션으로 찾기 위해 어떤 집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는 네비를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길 쪽에 하나 있기는 했는데 20킬로가 넘게 남아서 거기까지는 갈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집 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외출을 하기 위해 나오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차 문을 두드리고 왜 당신 집 앞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희는 기름이 다 떨어져서 그런다고 말씀드렸더니 당신이 가까운 주유소 있는 곳까지 안내 할 테니 당신 차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간신히 기름을 다시 채울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그 집 앞에서 섰고 또 마침 그 집에서 아주머니가 나오셨습니다. 그냥 스쳐지나갈 수도 있으셨겠지만 저희에게 호의를 베푸셨습니다. 인연치고는 참 고마운 인연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저희에게 꼭 필요한 사람을 제 때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이렇게 해서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이 모두 주님께서 보내주신 은총들입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이 다 은총임을 깨닫는다면 오늘의 소경처럼 주님을 더 찬미하게 될 것입니다.

나에게 잘해 주는 사람만 은총이 아닙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은총입니다. 나를 성숙시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것 모두가 은총입니다. 그러나 은총임을 깨달을 때에야 정말로 은총이 됩니다. 우리가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 주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은총입니다. 이것을 깨닫는다면 한 사람이라도 의미 없이 대하게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참 소중한 인연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은총을 잘 깨닫고 얻어내는 지혜의 눈을 청하도록 합시다.

 

 

첫 마음

 

로마에 있다 보니 관광 오시는 손님들을 자주 맞이하게 됩니다. 관광지라면 항상 있는 좀도둑들에게 물건을 도둑맞지 않으면 대부분은 로마에 만족을 하고 돌아갑니다. 그런데 가끔가다가 냉담 신자도 함께 오게 되는데 그들은 오히려 로마 교회의 웅장함을 매우 비판적인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특별히, “교회가 너무 돈이 많은 거 아니에요? 저런 것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 도와줘야 맞는 것 아닌가요?”라는 식으로 말합니다. 저는, “저런 것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을 한 번 도와주느니 꾸준히 가지고 있으면서 그 수입으로 계속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는 것이 더 좋은 거 아닌가요?”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편으로는 속이 썩 시원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질문들이 꼭 틀린 질문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 때보다야 교회가 덜 부자이고 세상의 권력에 대한 영향력도 많이 줄었지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범이나 그 분의 제자들이 사신 모습에 비해 사치스러운 면이 없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가난하여 추운 겨울날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나무 구유 위에 놓이셨고 거의 평생을 나무를 다루는 일을 하시다가 공생활 때는 머리 누일 곳조차 없이 떠돌아다니시고 마지막엔 다시 나무 위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가난하게만 사신 것이고, 그 분의 제자들도 모두 박해와 가난 속에서 순교를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파견하실 때, 지갑도 신발도 지니지 말라 하시고, 그래서 그들에겐 사제관도 성당도 없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먹을 것은 자신이 일해서 벌었다고까지 말합니다.

교회는 끊임없이 부와 권력 안에서 성과 속을 넘나들었습니다. 종교라는 이름으로 좋지 않은 일들도 많이 하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과거에 교회가 저질렀던 그런 잘못들을 세상에 공식적으로 사과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돈과 권력이 많을 때가 교회 지도자들이 가장 타락했었을 때였습니다. 물론 이런 때 거지로 살며 가난을 추구했던 프란치스코 성인과 같은 분들이 어느 정도 성과 속의 균형을 맞추어주기는 하였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역사를 보면서도, 첫 마음을 잊는 순간부터 자신도 모르게 한 없이 다른 방향으로 흐를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교회는 지금도 그리스도께서 세우셨던 당시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쇄신의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사제가 되기 전에는 핸드폰도 안 쓰고, 차도 사지 않고, 옷도 클러지 셔츠만 입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유학하고 한국 들어가는 당일, 이미 사제가 되어있는 친구 신부들이 핸드폰을 제일 좋은 것으로 마련해 두었고, 주임 신부님이 차를 사라고 해서 보좌 신부가 끌 수 있는 수준으로는 가장 큰 차를 샀었고, 옷 선물이 하도 많이 들어와서 무슨 옷을 입어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어버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빠른 시간에 그렇게 첫 마음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같은 본당 출신으로 저를 쭉 보아온 한 자매님과 통화를 하면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신부님은 부드럽고 겸손한 모습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그런 모습이 많이 사라진 것 같아요.”

겉으로만이 아니라 속도 사무적이고 딱딱하고 권위적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변해가는 제 모습에 대해 충격을 받았고 사제가 되기 전의 결심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처음에 결심한 모습대로 사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되었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첫 마음을 되새기지 않는 순간부터였습니다.

결혼해서 살면서도 혼인 할 때의 첫 마음을 매일 되새기며 산다면 크게 안 좋은 상황까지 가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저도 사제가 될 때의 첫 마음을 매일 아침마다 되새기며 살기로 결심해봅니다.

오늘 독서에서 예수님은 에페소 교회를 이렇게 질책하십니다.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이렇게 예수님은 교회에게도, 우리 자신들에게도 첫 마음으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함을 권고하십니다.

본당의 한 수녀님께 들은 것인데, 성인세례식 때 명찰 표를 달며 한 봉사자가 너무 급해서 그랬는지 핀을 세례 당사자 분의 살에 꽂았고 그런 줄도 몰랐다고 합니다. 세례 받는 분은 세례 때는 당연히 그런 고통을 참아야 하는지 알고 세례식동안 아픈 것을 꾹 참고 끝나고 나서야 수녀님께 말씀드렸다는 것입니다. 아마 그런 순수한 마음으로 신앙생활하면 순교까지도 문제없을지 모릅니다.

신앙이나, 결혼생활이나, 직장생활이나 무엇이든 우리가 처음 시작했을 때의 그 마음을 자주 새기며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 찾아내어 회개하고 처음 결심을 되새기며 살아가려 노력해야겠습니다.

 

 

 
< 아버지 당신 손에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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