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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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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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1-02-14 ㅣ No.6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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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일-마르코 8장 11-13절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하루하루가 표징>

 

 

    끝까지 물러서지 않고, 정말 변화되지 않는 바리사이들 앞에 깊이 탄식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려봅니다.

 

    ‘탄식’은 어떤 때 나오는 것입니까? 정말 해도 해도 너무한 때, 정말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 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 때 자기도 모르게 깊은 한숨과 함께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탄식하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종착지가 바로 코앞인데, 구원이 바로 눈앞인데, 영원한 생명이 이렇게 자기들 가까이 있고, 금방 손에 넣을 수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거부하고, 발로 차버리는 바리사이들 앞에 너무나 안타까운 나머지 터져 나온 탄식이었습니다.

 

    그간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준 기적이 얼마나 많았는데, 그간 예수님의 손으로 치유 의 은총을 입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빠져나간 악령들, 죽음에서 되살아난 사람들...그 모든 하늘의 표징들을 자신들의 두 눈으로 확인했던 바리사이들이었건만,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는 메시아의 능력을 자신들의 눈으로 다시 한 번 확인해보고, 승복하여 예수님께 돌아서기 위해서가 절대로 아니었습니다.

 

    그저 호기심에, 그저 장난삼아, 애초부터 신앙의 눈이 아니라 적개심과 불신으로 가득 찬 눈으로 예수님에게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바리사이들의 모습 앞에 예수님께서 느끼셨던 비애감과 실망감을 하늘을 찔렀을 것입니다. 극에 달한 바리사이들의 불신과 적대감, 꽉 막힘 앞에서 너무나 안타까웠던 예수님께서는 가슴 아프셨겠지만 그들에게서 기대와 희망을 접습니다. 그들을 남겨두고 떠나십니다. 영혼의 눈이 먼 그들이었기에, 바로 자기들 눈앞에 다가온 구원을 놓치는 일생일대의 과오를 저지르고 마는 것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하루하루가 기적입니다. 주변을 곰곰이 살펴보면 일상의 모든 흐름들이 표징입니다. 하늘을 뚫어지게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기를 쓰고 눈을 부릅뜨고 기적을 찾아 나설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가 제대로 회심하면, 우리가 제대로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이 다 경이로움의 대상이요, 매 순간 순간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랜 투병생활을 마치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간 한 형제의 간절한 바람이 아직도 제 귓가에 남아있습니다. 그 간절한 바람이란 것이 평범한 우리에게는 정말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그렇게 간절했나 봅니다.

 

    “시원한 물 한 컵만 벌컥벌컥 들이 마셔봤으면...”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것 같은 우리의 작고 소소한 일상들은 기적과 표징의 연속이 분명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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