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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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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1-04-28 ㅣ No.64031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4월 28일 부활 팔일 축제 내 목요일
 

"Peace be with you."
"You are witnesses of these things."
(Lk.23.36,48) 
 
 
 
제1독서 사도행전 3,11-26
복음 루카 23,35-48
 
제가 자주 이용하는 고속도로가 있습니다. 이 도로에는 몇 곳에 무인단속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자주 이용하는 도로이기 때문에 어느 곳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 아주 우연히 몇 개의 무인단속카메라 중에서 하나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급한 마음에 카메라를 전혀 생각하지 않고 과속을 했었거든요. 과속을 하며 지나간 뒤에야 ‘맞다. 카메라가 있는데…….’하면서 후회를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뒤 과속에 따른 위반 통지서가 날아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통지서는 오지 않았고, 그곳을 지나갈 때마다 유심히 쳐다보니 다른 차들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맞습니다. 작동하지 않는 무인단속카메라였던 것이지요. 사람들도 그 사실을 알고 그 앞에서 일부러 속도를 줄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저 역시 시간이 지남에 따라 그곳을 지나갈 때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가끔 무시도 하면서 그 카메라 앞을 지나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 역시 약간의 과속을 하며 그 카메라 앞을 지나가는데, 갑자기 단속카메라가 번쩍이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작동하지 않는다고 무시했던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을 시작한 것이지요. 그리고 다음 달, 과속에 따른 위반 통지서 한 장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방심했었는데 그래서 항상 무시하고 지나갔었는데, 사실은 그래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 안에서도 우리가 종종 무시하며 방심하는 것들이 꽤 많은 것 같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자신의 건강, 자신이 헛되게 쓰고 있는 시간들……. 특히 주님과 나의 관계는 더욱 더 그랬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상의 것들을 먼저 다한 뒤에야 주님의 일을 하겠다면서 방심의 삶을 살았으며, 주님께서 제시한 사랑의 삶을 무시하며 지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을 본 뒤에 기뻐하기보다는 이상하게도 무섭고 두려워합니다. 3년 동안 동거 동락했던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지요. 왜 그랬을까요? 아마도 그들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것들을 무시했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즉, 예수님께서 미리 당신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까지도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이 말씀을 무시했기에 무서워 떨었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도 알아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부활시기를 살고 있는 지금, 우리가 무시하고 방심하고 있었던 주님의 말씀을 다시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또한 방심하며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내가 되지 않겠다고 주님 앞에 고백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 고백을 적극적으로 실천해 나갈 때에야, 주님의 기쁜 소식을 세상에 알리는 증인이 될 것입니다.

 

용기 있는 사람이란 양심이 명령하는 바에 따라 행동하는 사람이다.(루이제 린저)




꽃다발

 강의가서 받은 꽃다발
 

성 목요일,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셨다고 해서 ‘사제의 날’이라고도 합니다. 그래서 본당 교우들은 이 날 본당 신부님들께 축하를 드립니다. 특히 성유축성미사 때 보면 많은 교우들이 자기 본당 신부님을 찾으면서 축하의 박수도 쳐드리고, 또 꽃다발도 드립니다.

그런데 어떤 본당신부님께서는 꽃다발 받는 것을 너무나도 싫어하신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꽃다발 받을 때에는 보기 좋지만, 조금만 지나도 시들어버리는 모습이 보기 싫다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꽃다발 가격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아깝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부님의 모습에, 그 본당 교우들이 안타깝다고 말하더군요. 즉, 다른 본당 신부님은 많은 꽃다발을 들고 계신데, 자기 본당 신부님은 아무 것도 들고 있지 않아서 보기에 좋지 않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렇게 말씀하세요.

“우리들에게 사랑을 주시는 것도 좋지만, 우리들의 정성을 받아주시는 것도 사랑이 아닐까요?”

하긴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한 법이라고 말하지요. 그렇다면 상대방이 행복할 수 있도록 받아주는 역할을 담당할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께서는 받는 것에 대해서 너무나도 엄격해서 힘들다는 것입니다.

주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것, 중요합니다. 그런데 받는 것에도 익숙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그저께 강의에 가서 받은 꽃다발을 바라보면서 문득 들은 생각이었습니다.

 

Dance of The Clou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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