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2일 (토)
(녹) 연중 제11주간 토요일 내일을 걱정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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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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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2-01-12 ㅣ No.70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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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12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마르코 1장 40-45절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반드시 오십니다>

 

 

    어쩌면 이렇게 혹독한 시련이 내게 다가왔는지요? 너무나 끔찍한 병, 한번 걸리면 인생 종치는 병, 그래서 나와는 전혀 무관한 병이라고 생각했던 나병이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간 그럭저럭 잘 나가던 인생이었는데, 그리 나쁘게 살지도 않았는데, 천벌 받을 일은 꿈에도 한 적이 없었는데, 어찌 천형(天刑)이라 불리는 나병이 나를 찾아왔는지... 너무나 억울하고 원통해서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서든 이 나병을 숨겨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병은 순식간에 내 영혼과 육체를 공격해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 내 모습이 달라져만 가는데 정말이지 받아들이기 힘들었습니다.

 

    나병으로 인해 드러나게 달라진 내 모습에 주변 사람들은 관할 나를 당국에 신고했습니다. 당시 율법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조치였습니다. 나는 그날로 인간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했습니다. 가족들은 물론 친지, 친구들조차 나로부터 등을 돌렸습니다. 당시 나병환자들은 정상인들이 사는 성안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전염을 방지하기 위해 언제나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었습니다. 길을 가다가 인기척이 나면 큰 목소리로 “나는 부정 탄 사람이요?”라고 외쳐 사람들의 접촉을 막았습니다.

 

    자연히 내 거처는 따뜻하고 편안했던 성안에서 성 밖 토굴로 옮겨졌습니다. 밤이 오면 뼛속까지 시린 추위에 시달렸습니다. 길고도 긴 밤이 지나가면 제일 먼저 습관처럼 하는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혹시나 간밤에 하느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내 병을 고쳐주시지나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자신의 몸을 만져보는 것이었습니다.

 

    혹시나 병세가 완화되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개울가로 달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아니라면 이 지옥 같은 세상살이 하느님께서 간밤에 끝내시지 않았을까 기대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어김없이 새날은 밝아오고 병세는 어제보다 더 악화되어만 갔습니다. 또 다른 하루를 견뎌야만 하는 절망감에 나는 들짐승처럼 울부짖으며 그렇게 성 밖 무덤가를 떠돌았습니다. 긴

 

    하루하루 무너져 내리는 내 삶을 바라보며 하느님이 자비의 하느님이시라면서 어떻게 내게 이러실 수가 있냐며 하느님께 대들었습니다. 선하신 하느님께서 어찌 내게 이런 비참함을 허락하시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지금 이렇게 힘들어하는데, 나는 이렇게 들짐승처럼 산천을 헤매 다니는데, 세상을 어제와 별 다름 없이 돌아가고, 친구들은 내 불행에 상관없이 저리도 깔깔대며 웃고 즐기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나병환자는 목숨이 붙어있었지만 사실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몸이 움직이기는 했지만 시체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은혜롭게도 나병환자에게 하느님 자비의 손길이 다가갑니다.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물러설 곳이 없었던 나병환자였기에 목숨을 건 마지막 모험을 감행합니다. 율법을 어기고 인간 세상 안으로 달려 들어옵니다. 예수님 앞에 무릎까지 꿇으며 간절히 청합니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나병환자의 그 가련함, 그 비참함, 그 절박함, 그 간절함에 예수님 마음을 움직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손을 내밀어 그 나병환자의 몸에 대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느님 뜨거운 사랑의 손길이 썩어가는 나병환자의 육신에 닿는 너무나 특별한 순간입니다. 어찌 보면 이 순간은 무죄한 예수님의 신성과 죄 투성이인 우리 인간의 인성이 합일하는 축복의 순간입니다.

 

    하느님 손길이 인간에게 직접 닿는 그 강렬한 은총의 순간, 나병환자가 지니고 있었던 그 끔찍했던 나병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필요한 한 가지 노력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터치(touch)를 가져오는 간절함이요 절박함입니다. 겸손함과 강렬함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는 철저하게도 희망의 종교입니다. 아무리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혹독하고 비참하다 할지라도, 때로 더 이상 나아갈 의미를 못 찾는다 할지라도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합니다. 단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는 막다른 길에 다다랐다 할지라도 하느님의 현존과 자비에 대한 기대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비참하고 절박한 처지를 잘 알고 계십니다. 비록 조금 늦을 뿐이지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우리에게 오십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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