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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 (마태18,19ㄴ-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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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6-25 ㅣ No.147849

 

 

2021년 6월 25일 금요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마태18,19-22)

 

1독서<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신명30,1-5)

모세가 백성에게 말하였다.

1 “이 모든 말씀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2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너희가 하늘 끝까지 쫓겨났다 하더라도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너희 조상들이 차지하였던 땅으로 너희를 들어가게 하시어너희가 그 땅을 차지하고 조상들보다 더 잘되고 번성하게 해 주실 것이다.”

 

화답송 예레 31,10.11-12ㄱㄴ.13ㄷㄹ-14(◎ 10ㄷ 참조)

◎ 주님흩어진 당신 백성을 모으소서.

○ 민족들아주님의 말씀을 들어라먼 바닷가 사람들에게 이 말을 전하여라. “이스라엘을 흩으신 분이 그들을 다시 모으시고목자가 양 떼를 돌보듯 지켜 주시리라.” 

○ 정녕 주님은 야곱을 구하셨네강한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네그들은 환호하며 시온산에 올라와주님의 선물을 받고 웃으리라

○ 나는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위로하리라그들의 근심을 거두고 즐거움을 주리라사제들에게는 기름진 것을 배불리 먹이고내 백성을 내 선물로 가득 채워 주리라

 

2독서 <서로 용서하십시오.>(에페4,295,2)

형제 여러분,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30 하느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여러분은 속량의 날을 위하여 성령의 인장을 받았습니다.

31 모든 원한과 격분과 분노와 폭언과 중상을 온갖 악의와 함께 내버리십시오.

32 서로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하고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하십시오.

5,1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답게 하느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십시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신 것처럼여러분도 사랑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복음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마태18,19-2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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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제1독서 (신명30,1-5)

 

"이 모든 말씀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낸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들이실 것이다. " (1-3)

 

앞장인 신명기 29장에서는 계약을 위반한 자에게 닥칠 저주를 선포한 이후, 신명기 30장에서는 회복의 국면이 이루어질 수 있는 상황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절 다시 번역하면 '내가 너희 앞에 둔 그 축복과 그 저주의 바로 이 모든 일들이 너희에게 찾아온다면' 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앞장까지의 내용속에서 주로 다룬 것은 축복이 아니라 저주의 선포였다.

 

따라서 본문의 표현이 암시하고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불순종함으로 인하여 먼 나라에 포로로 끌려가는 데까지 이르는 비참한 상황이 이루어지는 미래의 시점을 배경으로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때로는 하느님께 순종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전 국가적으로 하느님을 배반하여 저주를 당한 이스라엘의 비극적인 역사가 모세의 설교 가운데 이미 등장하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로 번역된 '하세보타 엘 레바베카'(hashebotha el lebabeka)에서 '하세보타'는 '돌이키다' 란 뜻을 가진 '슈브'(shub)동사의 사역형 완료  2인칭으로서 '네가 다시 돌이키다' 라는 뜻이다.

원문은 사역형을 사용해서 능동적으로 곰곰이 생각하여 기억해 내는 자세를 나타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여기서 사용된 '슈브' 동사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로부터 돌이켜 배반할 때에도 사용되는 단어이다.  

하지만 여기 언급된 마음의 돌이킴은 이러한 하느님께 대한 배반과 대조되는 이스라엘의 회개를 암시한다고 할 수 있으며, 이 단어가 다음 절에서도 사용된 것을 볼 때에 본 단락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가 회개에 따른 불신앙으로부터의 회복임을 알 수 있다.

 

한편,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으로 번역된 '힛디하카'(hidihaka) '몰아내다'란  뜻을 가진 '나다흐'(nadah)동사의 사역형에 2인칭 단수 목적격 접미어가 붙은 말로서 '그가 너를 내몰았다'라는 의미이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몰아낸 것은 '콜 학고임'(kol hagoim) 즉 '모든 민족들'이다.

여기에서 '민족들'(나라들)이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 장차 이스라엘을 침공함으로서 그들에게 포로됨의 고통과 갖은 핍박을 주게 될 이방 국가가 단 한나라에 그치지 않을 것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북왕국 이스라엘 앗시리아의 침략을 받아 멸망당하고, 그 땅에 거주하던 백성들이 흩어지게 되었으며(B.C.722년), 남왕국 유다 역시 바빌론의 침략을 받아 3차에 걸쳐서 바빌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어(B.C.605년/B.C.597년/B.C.586년) 이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한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돌아와서'로 번역된 '샤브타'(shabtha) '되돌아가다' 뜻을 가진 '슈브'(shub)동사의 완료형 2인칭이다.

 

앞절에서도 설명했듯이 이 단어가 가리키는 것은 불신앙에서 돌이키는 회개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단어 뒤에서 이 단어를 보완적으로 설명하기 위하여 쓰이는 '들으면'으로 번역된 '샤마타'(shamatha)는 문자적으로 '네가 듣다'(순종하다)이다.

 

이러한 표현은 모세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는 것이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사실이며, 그 말씀을 듣는 데서부터 회개와 그에 따른 회복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분의 말씀을' 번역된 '베콜로'(beqollo)에서 일반적으로 '말씀'이란 뜻을 지니고 있는 명사 '따바르'(dabar) 대신에 말씀의 내용보다는 소리를 발하는 것 자체를 가리키는 '목소리'라는 뜻의 '콜'(qol)이라는 단어가 쓰인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하느님 말씀의 현장감과 생동감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서 언제나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세대에게 적용되는 살아 있는 말씀임을 알려준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에서 '하는 대로' 번역된 '케콜'(kekol)에서 '콜'(kol) '모든'이라는 뜻이기 때문에 '케콜'은 '모든 것을 따라서'라고 번역하는 것이 원문의 의미에 가깝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가리키는 것은 '모세가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에게 명령한 모든 것'이다.

 

신명기 29장 28절에 나온 내용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그들이 들어야 할 것 바로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내 주신 율법의 모든 말씀 것이다.

또한 포로된 상황에서 이스라엘이 들어야 하는 말씀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으로 나타냄으로써 미래의 세대들이 들어야 할 말씀과 오늘 전하는 말씀을 일치시키셨다.

이것은 비록 많은 세월이 지난 그때라 할지라도 오늘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은 결코 변함이 없을 것을 암시한 것이다.

 

이러한 말씀의 항구성을 나타내기 위해 '너희에게 명령하는'으로 번역된 '메차웨카'(metsaweka)에는 '명령하다'는 뜻을 가진 '차와'(tsawa)동사의 분사형이 쓰였다.

히브리어에서 분사형은 그 행동이 끊임없이 계속됨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로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우베콜 나프셰카'(bekol lebobka wubekol naphscheka)는 신명기 4장 29절과 6장 5절에도 언급된다.

여기서 '뻬'(be)는 수단을 나타내는 전치사로서 '~을 가지고'란 뜻이다. 

또한 각각의 '뻬'(be)에 붙어 있는 '모든'이란 뜻의 '콜'(kol) 수단이 될 수 있는 대상의 최상 혹은 최대의 상태를 암시하는 말이다.

 

그리고 각각의 말 위에는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어 '카'(ka)가 붙어 있다.

이것은 주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하여 동원하는 수단이 다른 사람의 것이 아니라 반드시 당사자의 것이어야 함을 말해준다. 

즉 다른 사람에 의해 주입된 생각이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중심으로 하느님을 사랑해야함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번역하면 '너의 최선의 마음을 가지고, 너의 최선의 정신을 가지고'이다.

'마음'에 해당하는 '레바브'(lebab)는 사람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란 뜻이며, '마음을 다하고' 번역된 '뻬콜 레보브카' '너의 모든 중심을 다하여'라고 하는 것이 원어적 의미를 살린 번역이 된다(with all your heart).

 

히브리인들에게 있어서 '마음'은 자신의 생각과 의지와 감정(知,意,情)이 모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서 한마디로 '(한사람의)인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 자신의 모습을 감추는 부분이 없이 완전히 드러낸 상태에서 진실하게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정신'으로 번역된 '나프셰카'의 원형 '네페쉬'(nepesh) 일반적으로 '영혼'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는 단어이다.

'뻬콜 나프셰카' '너의 온 영혼을 다해'(with all your soul) 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자가 지녀야 할 가장 귀한 모습이기 때문에, 만일 그가 자기 영혼을 다해 하느님께 나아오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요한4,24).

 

참고로 신명기 6장 5절의 '힘'으로 번역된 '메오데카'(meodeka) 원형  '메오드'(meod)를 더 설명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메오드' '넘치는 것'이란 뜻이다. 물론 이 단어를 '힘'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with all your strength(might)>, '그 사람이 내놓을 수 있는 최대한의 것' 또는 '넘치는 활동력'이란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즉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말의 의미는 관념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고, 실제적인 삶의 현장에서 나의 모습과 행동 등을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내 삶 속에 넘치도록 풍성하게 채워주신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느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사랑하여야 하는 것이다.

종합하면 하느님을 사랑하되, '전심, 전영, 전력'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너희의 운명'으로 번역된 '셰부테카'(shebutheka) '포로로 잡히다'는 의미를 가진 '샤바'(shaba) 동사에서 유래한 '셰부트'(shebuth)에 2인칭 단수 소유격 접미어가 붙은 형태로서 '너의 포로됨'(your captivity; your fortunes)이라는 뜻이다.

즉 이 단어는 이스라엘이 이방 나라에 포로되어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방 민족에 포로되어 있는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계약(언약)의 백성으로서의 신분을 다시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6월 25일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말씀이 운명을 되돌려 주신다네.

1독서~

신명 30, 1 “이 모든 말씀곧 내가 너희 앞에 내놓은 축복과 저주가 너희 위에 내릴 때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몰아내 버리신 모든 민족들 가운데에서 너희가 마음속으로 뉘우치고2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3ㄱ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의 *운명을 되돌려 주실 것이다.

하느님의 계명율법을 주신 후~


(신명11,26) “보아라내가 오늘 너희 앞에 축복과 저주를 내놓는다.”

말씀을 축복과 저주로 주셨음을말씀을 축으로 받을 것인지 저주로 받을 것인지 오늘 다시 강조 하십니다.

곧 10개의 계명으로 받아 616가지의 법으로 만든심판과 죽음 그 저주로 받을 것인지그 계명율법을 완성하시는 하느님의 계약(스타오로스-기둥곧 십자나무의 대속그 진리로 받아 하늘의 생명그 축복을 받을 것인지 내가 선택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2 ‘주 너희 하느님께 돌아와서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대로 너희와 너희의 아들들이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과 정신을 다하여 들어 사랑하면곧 계명의 율법의 삶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신앙으로 다시 돌아오면 행위의 마르타가 아닌 예수님 발치에서 말씀을 듣던 마리아가 되어 좋은 몫-하늘의 생명을 얻는다.


(루가10,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뿐이다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3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또 너희를 가엾이 여기시어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를 흩어 버리신 모든 민족들에게서 너희를 다시 모아 들이실 것이다.

=말씀이 운명을 되돌리는 것입니다아담 처럼(거짓 가르침)의 유혹으로 하늘의 생명나무를 자신의 뜻을 위해 선악의 땅의 계명으로 먹어먼지로 돌아가야 할 운명인 죄인인 우리들그렇게 먼지로 지옥으로 가야할 운명들을 하느님의 계약(기둥)의 말씀그 십자나무의 약속으로 되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야 할 존재들을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하늘의 존재로 되돌리시겠다는 것입니다.


(요한1,9-13) 9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 12 그분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이들당신의 *이름을 믿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권한을 주셨다. 13 이들은 혈통이나 육욕이나 남자의 욕망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다.

이름존재의 생각과 뜻곧 하느님의 생각과 뜻을 받아 하늘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14,6)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죄의 대속그 십자가의 예수님을 진리로 받아들여 운명이 되돌려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너희가 하늘 끝까지(밖으로쫓겨났다 하더라도주 너희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너희를 모아들이시고 그곳에서 너희를 데려오실 것이다.


2독서~

(에페4,29) 29 여러분의 입에서는 어떠한 나쁜 말도 나와서는 안 됩니다필요할 때에 다른 이의 *성장에 좋은 말을 하여그 말이 듣는 이들에게 *은총을 가져다줄 수 있도록 하십시오.

나쁜 말도덕과 윤리의 법그 선악의 나쁜 말로 사람을 죽이지 말고 죽어야 할 그 운명을 되돌리게 하는 성장(오이토도메세우다)하게 하는 하늘의 존재로 세우는 은총의 말을 주어야 합니다.

곧 십자가의 대속 그 진리의 말씀그 좋은 말씀을 주어 살리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 (마태18,19-22)

마태18,19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한마음으로 곧 하느님의 이름()으로좋은 말씀으로 청하면 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인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의 십자가의 용서그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21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22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일흔 일곱무한정 용서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일곱의 일곱이라는 것, ( 77=49 이다) 다음해 50. 그 희년의 정신으로 라는 말씀입니다.

7은 안식의 숫자그 안식()은 하느님께서 창조로 이루어 졌다’ 하신 것(창세2,1-3참조)입니다그 이루어진 안식을 인간(아담)들이 거부하는 죄를 범했기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시 이루신 것입니다.


(요한19,30) 예수님께서는 신 포도주를 드신 다음에 말씀하셨다다 이루어졌다.” 이어서 고개를 숙이시며 숨을 거두셨다.


너희는 용서할 존재가 아니라 십자가의 용서를 받아야할 존재라는 것을 오늘 알아들어라’ 하시는 말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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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복음 (마태18,19ㄴ-22)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일곱번까지 해야 합니까하고 물었다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21~22)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에 해당하는 '아페소'(apheso; I forgive)의 원형 '아피에미'(aphiemi)는 '~으로부터'라는 분리를 나타내는 전치사 '아포'(apo)와 '보내다', '가게 하다'는 뜻을 지니는 동사 '히에미'(hiemi)의 합성어에서 유래하여 일차적으로는 '보내 버리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다양하게 사용되는데, 아내와의 인연을 끊어버린다 뜻에서 '이혼하다'는 용례로 사용되었고(1코린7,11), 또한 숨이 완전히 떠나 버린다는 의미에서 '죽는다'는 용례로 사용되며(마태27,50), 그리고 채권자로서 권리를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미에서 '탕감하다'는 용례로도 사용된다(마태18,30).

그러니까 '아피에미'(aphiemi)라는 단어는 원래의 상태에서 완전히 떠나 다른 상태로 가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 본문에서도 이 단어는 상대가 자신에 대하여 잘못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그 잘못에 더 이상 개의치 않고, 잘못을 하지 않았을 때와 똑같이 대한다는 의미로 쓰였으며, 이것은 형벌을 유보하는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용서하는 을 가리킨다.

 

한편, '일곱 번'에 해당하는 '헵타키스'(heptakis; seven times) 이에 상응하는 히브리어 '셰바'(sheba)와 마찬가지로, 근동 문화권에서는 중요한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하느님께서는 제7일에 천지 창조를 완성하신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숫자는 '완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제7일은 거룩한 안식일이며, 제7년은 거룩한 안식년으로 지켜졌던 규정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숫자는 '거룩'을 뜻한다.

뿐만 아니라 대속죄일에 피를 일곱 번 뿌린 사실과(레위16,11이하) 관련해 볼 때 이 숫자는 죄 용서의 상징적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자신에게 잘못한 자에 대해 세 번 용서해 주는 것을 대단한 관용으로 평가했으며, 이것을 실천하도록 가르쳤다.

따라서 베드로는 이보다 훨씬 더 큰 관용의 자세를 보이기 위해 히브리인에게 큰 의미를 지니는 숫자인 '7'을 염두에 두고일곱 번이나 용서하면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의도를 가지고 예수님께 말씀드렸다고 볼 수 있다.

 

'일흔 일곱 번까지라도'

 

'일흔 일곱 번'에 해당하는 '헵도메콘타키스 헵타'(hebdomekontakis hepta; seventy-seven times)에서 '헵도메콘타키스(hebdomekontakis; seventy times)는 '70'을 의미하며, '헵타'(hepta)는 '7'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두 숫자가 합쳐진 이 표현은 해석상 다소 문제가 있다. 이것을 '490'(70×7)으로도 볼 수 있고, '77'(70+7)로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 의미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예수님께서는 무한한 용서를 나타내기 위한 상징적 용도로 '헵도메콘타키스 헵타'라는 표현을 사용했기 때문에, '490'이나 '77'이라는 특정한 숫자의 크기에 의미가 있지 않다.

베드로는 충분하지 않겠느냐는 의미로 '7'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끝없이 용서해야 한다는 의미로 '70'과 '7'이란 숫자를 겹쳐서 사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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