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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28일 화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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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병규 [vegabond] 쪽지 캡슐

2012-08-28 ㅣ No.75156



8월 28일 화요일 성 아우구스티노 주교 학자 기념일-마태23,23-26


 

“십일조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의로움과 자비와 신의를 실행해야만 했다.”

 

<나는 미련하게도 머리로만..>

 

 

    교회 역사 안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님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가신 대성인이 또 다시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354년 11월 13일 북아프리카 타가스테에서 태어난 아우구스티누스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문학적, 언어적 재능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청소년기에 접어든 아우구스티누스는 슬슬 불량기를 드러내 보이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17세 되던 해 어머니의 통제를 벗어나기 위해 카르타고로 떠납니다.

 

    유학을 핑계 삼아 카르타고에 도착한 아우구스티누스는 본격적인 불량 청소년기, 질풍노도의 시기를 맞이합니다. 물론 하고 싶었던 공부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어머니의 품을 벗어난 그는 너무도 이른 나이에 한 여인을 만나 아들까지 낳게 됩니다.

 

    거기까지만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당시 그리스도교와는 노선이 완전히 다른 웃기지도 않은 마니교란 이단 종교에 빠져 헤어날 줄을 몰랐습니다.

 

    어린 나이에 엉겁결에 가장이 된 아우구스티누스가 한번은 생활고에 시달렸던지 동거녀와 아들 아데오다토를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고향으로 돌아온 그는 빈대도 낯짝이 있지, 부끄러운 일이기에 입 닫고 조용히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자신이 심취한 마니교 교리를 고향사람들에게 전했습니다.

 

    완전히 맛이 간 아들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런 정신 나간 모습을 직접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한 모니카는 얼마나 충격을 받았던지 멀리서 찾아온 아들을 집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동네 사람 얼굴 보기 창피했던 모니카였습니다. 정말이지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 백방의 노력을 다해봅니다. 때로 타일러도 보고, 때로 야단도 치고 욕도 해보고, 때로 눈물로 호소도 해보고...별의 별 방법을 다 써봤지만 모두가 허사였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을 만나기 전까지, 젊은 시절 아우구스티누스의 방황과 탈선, 죄와 오류는 멈추지 않고 오랫동안 지속되었습니다.

 

    이런 그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 모니카였습니다. 그리고 모니카의 등 뒤에는 깊은 수렁에 빠진 아들이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아들을 향해 계속 손을 내밀도록 용기를 불어넣어준 암브로시오 주교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물론 그 오랜 방황과 배신, 어둠과 타락의 세월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신 자비의 하느님이 계셨습니다.

 

    마침내 오랜 방황의 세월을 접고 하느님 품 안에 안긴 아우구스티누스는 그 유명한 ‘고백록’을 통해 지난 세월 자신이 저질러왔던 오류와 죄에 대해 소상하게 고백합니다. 그릇된 신앙, 오류투성이였던 세속적인 지식, 지나친 호기심...그 모든 것들이 곧바로 죄와 연결된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대단한 지적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는 한번 들은 모든 것을 단번에 기억하고 이해하는 타고난 천재였습니다. 이런 그가 지적 능력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에 대해 이렇게 후회합니다.

 

    “나는 미련하게도 모든 것을 머리로만 알아듣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가 방황했던 시절, 오류와 죄투성이의 길을 걸었던 가장 큰 이유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그에게 결정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마음이요, 가슴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40세 때 저술한 고백록은 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위대한 저술 가운데 하나입니다. 놀랍게도 고백록 안에는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모든 삶의 역사가 가감 없이 기술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는 미화시킨다거나 완화시키는 법이 없습니다. 자신의 실수, 자신의 오류, 자신이 저지른 과오, 죄...모든 것들이 다 들어있습니다.

 

    감추고 싶었던 과거, 도덕적 결핍, 끔찍이도 어머니를 괴롭혔던 세월들, 마니교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날들, 그리고 마침내 자비하신 하느님의 품안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갖은 사연들이 가감 없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물론 고백록은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지난 삶을 고백하는 형식의 자서전이지만, 단지 죄투성이의 삶에 대한 고백만을 담고 있지는 않습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자비하신 하느님을 향한 애틋한 사랑의 정, 진흙탕 속에 빠진 자신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건져내주신 자비하신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정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고백록은 단순한 죄의 고백이나 참회의 글 모음이 아니라 우리 죄인들을 향한 하느님의 오묘한 손길이 담겨있는 명작입니다. 죽을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얼굴을 들 수 없는 비참한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큰 사랑으로 구원해주신 하느님 사랑에 감사드리는 한 영혼의 찬가입니다.

 

    오랜 방황을 끝낸 아우구스티누스는 아들 아데오다토와 절친 알리피오와 함께 마침내 387년 부활성야 때 당시 밀라노 주교였던 암브로시오 주교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습니다. 그리고 발레리오 주교로부터 사제, 그리고 주교로 서품됩니다.

 

    하느님을 멀리 떠나 방황하던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느님께 돌아서는데 성경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성경은 이 세상 그 어떤 쾌락을 통해서도 얻지 못했던 한없는 감미로움, 완전한 아름다움을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맛보게 했습니다. 평생 진리에의 갈증을 느껴왔던 아우구스티누스였는데 성경을 그의 갈증을 원 없이 채워주었습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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