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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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오게 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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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미 [viamaria] 쪽지 캡슐

1998-12-18 ㅣ No.177

성서를 읽기 좋아하고 성서 인물로 묵상을 자주 하지만

가장 묵상으로 잘 되는 대상은 목수 였던 요셉과 세례자 요한이다.   

그 두 분을 공통으로 묵상하기 좋아하게 된 것은 그분들의 삶이 주연으로 사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이라는 분을 드러내고 알리는 삶 이였지만 조연으로 사는 삶 이였다는 것과

철저히 잊혀지고 언급되지 않는 인물들이라는 점이 나를 끌어 당기 였다.

기도서에 세례자 요한에게 바치는 기도문은 없다.

수호성인으로 모시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문은 있지만 요한에게 지정된 기도문은 아니다.

또 요셉은 기도문이 있기는 있지만 호칭기도 뺴놓고는 예수님과 성모님 서열 다음이다.

그것도 마리아의 남편 요셉이라고 꼭 전치사가 붙는다.

그분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선지자로서의 삶을 받아드린 이상으로

무명으로 살아가는 희생을 받아 드렸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분들에게도 보통 사람들처럼 살고픈 욕구가 있었을 것이고

그분들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고 희망이 있었을 것인데

하느님은 그분들의 바람과는 전혀 다른 세계를 살게 하셨고 살아가게 하셨다.

그 무너짐 속에서 그분들이 할 말이 없었을까? 대답할 지능이 없었을까?

그분들에게 주어진 일에 중대함 만큼이나

하느님이 그분들에게 지식과 능력을 주시지 않았다면

그분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키웠고 예수님보다 앞서 드러낼 수 있었껬는가?

희생의 요구는 그 사람의 능력을 드러낸다.

희생할 수 있는 만큼 희생을 요구 받는 만큼 그에게 능력은 있는 것이다.

하느님이 그런 것들도 이미 주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느님이 감당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 고통을 주시거나 요구하지는 않으신다.

다만 우리가 그 어려운 난이도를 받아드릴 마음 자세가 되어 있고

그것을 실천할 능력이 있는 것인가가 문제일 뿐

고통에는 세가지 목적이 있다고 듣은 적이 있다.

첫째: 죄에 상태에서 회두 즉 당하는 고통으로 죄를 짓고 있는 결과를 인식해

         바른 길로 돌아가게 한다는 것

둘째: 고통 받는 이를 정화 시키는 것. 즉 그 사람안에 있는 불순물을 정화 시키는 것

셋째: 고통을 바치는 것으로서 다른 이를 위한 희생이 될 수 있다는 것.

세상에 모든 일에는 감당해야 할 노력과 희생이 있다.

여자들의 체중조절만 해도 진짜 무서울 정도의 고통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자들의 아름다움을 위해서도 그만큼의 노력이 필요할 진데

 하느님의 사업을 위해서야 그 얼마나 많은 고통과 희생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상 희생은 단 한 분만의 희생으로 세상을 구원한 것 이였지만

그 준비엔 보이고 보이지 않는 많은 이들에 희생과 봉헌이 있었고

난 그분들과 함께하는 이가 되고 싶다고 묵상하고 결심한다.

나도 그렇게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주님을 모셔오는 사람이 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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