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8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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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고 계신 선생님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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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1-07-27 ㅣ No.2609

언젠가 제가 아이들의 학부형으로 지내던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때 아이들 사이에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 한가지 생겼습니다. 그 일은 다름이 아니라 저와 같이 살던 두 아이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일이었습니다.

 

남들이 들으면 "초등학교 졸업하는 것이 뭐 그리 큰 일이라고!" 하겠지만, 제가 봤을 때 그 일은 분명히 기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두 아이는 무단 가출이나 결석이 너무도 상습적이어서 가출부문 기네스북에 이름이 다 올라갈 지경이었습니다.

 

두 아이는 여러 시설을 전전하던 끝에 저에게로 오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아이 다 한 반에 편성이 되어 선생님 한 분이 두 아이의 담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경험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과거에는 시설 소속 아이들이나 문제성이 있는 아이들의 전학수속을 밟는다는 것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특히 그 때 당시 저는 저희 아이들 문제로 교무실을 밥먹듯이 드나들곤 해서 선생님들 사이에 기피 인물로 찍혀있었습니다.

 

그 날도 전학수속차 두 아이와 함께 교무실에 들어서는 순간 선생님들의 얼굴에 스치는 긴장된 모습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두 아이의 담임을 맡게된 선생님은 갓 결혼하신 여선생님이셨습니다. 그 선생님에게 너무도 미안한 나머지 저는 거의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선처를 부탁드렸습니다. "선생님! 너무 죄송해서 어쩌죠? 저희 아이들 다루시기 많이 힘드실텐데...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이나 맡겨드려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두 아이와 좀 거리를 둔 상태에서 두 아이가 그간 겪어왔던 어려움들, 두 아이가 안고 있는 문제점들-상습적인 무단 가출 및 결석, 약간의 도벽 등등-에 대해서 약간의 설명을 드렸습니다.

 

이런 상황 앞에서 보통 선생님들은 표정이 좀 심각해지거나 어두워지면서 "왜 하필 내 반에 이런 아이들이?" 아니면 "이런 아이들에게 특수학교가 바람직할텐데..."하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그 선생님은 전혀 그게 아니었습니다.

 

"제가 부족하지만 한번 이 아이들 마음을 잡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하시면서 두 아이에게 다가가시더니 두 아이를 품에 안으시며, "잘 왔다! 애들아. 그동안 얼마나 고생이 많았니? 나랑 한번 잘 지내보자." 하시면서 아이들을 교실로 데려 가셨습니다.

 

물론 그 후로도 두 아이는 보란듯이 가출을 시작했고 그 반의 출석률과 반평균 점수를 여지없이 깎아먹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선생님은 싫은 기색 한번 하지 않으시고 가출에서 돌아올 때마다 번번이 따뜻이 아이들을 맞아들이시고, 다시 한번 잘 해보자고 격려하셨습니다. 선생님의 숱한 인내와 노력의 결과 두 아이는 마침내 초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입니다.

 

선생님의 그런 마음 씀씀이가 너무도 고마워서 졸업식이 끝난 뒤 두 아이와 함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려고 교실로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또 한번 놀란 것은 선생님의 폭발적인 인기였습니다. 다른 반 교실은 행사가 모두 끝나 적막했는데, 유독 그 선생님의 교실에만 아이들과 또 학부형들이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선생님과의 작별이 아쉬워 교실을 떠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다시 두 아이와 교실을 찾았을 때, 이번에는 분위기가 왠지 이상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모두 떠나버린 텅 빈 교실, 교탁 위에 엎드려 흐느끼고 계셨습니다. 흐느끼는 선생님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희 두 아이도 따라 울었습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아이들을 위해 한없이 인내하고 헌신하셨던 선생님, 그리고 지금은 떠나버린 정든 아이들과의 헤어짐이 너무도 아쉬워 울고 계신 선생님의 뒷모습은 너무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숱한 잘못과 배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인내하고 기다리시며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자비의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죄악이나 과오를 일일이 기억해놓았다가 나중에 처벌하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끝도 없는 방황을 슬퍼하시며 눈물 흘리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마치도 오랫동안 가출했다가 돌아온 아이들을 끌어안고 눈물 흘리시는 우리의 선생님처럼 말입니다.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은 오늘 복음의 예수님이나, 우리 선생님처럼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웃의 고통과 슬픔 앞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고통을 슬퍼하고 눈물 흘리는 모습,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하찮아 보이는 일인 것처럼 보이지만 거기서부터 자신과 이웃을 위한 해방과 구원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향한 어떤 셈도 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숱한 죄악과 떠나감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아무란 보복감정이 없으십니다. 그분은 그저 우리의 슬프고 절박한 상황이 가슴 아파 눈물 흘리시며 하루라도 빨리 우리가 돌아오기를 손꼽아 기다리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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