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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가독서(賜暇讀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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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남량 [narcciso] 쪽지 캡슐

2018-09-15 ㅣ No.4557

 


사가독서(賜暇讀書)



 

조선 시대 때 국가의 유능한 인재를 양성하고 문운(文運)을 진작시키기 위해 젊은 문신들에게 임금의 명으로 직무를 쉬면서 글을 읽고 학문을 닦을 수 있도록 한 제도를 가리켜 사가독서(賜暇讀書)라고 한다. 글을 읽고 학문을 닦던 곳을 독서당(讀書堂) 또는 호당(湖堂)이라고 하여 독서당(讀書堂)제도 또는 호당(湖堂)제도라고도 한다.

사가독서(賜暇讀書)제도가 최초로 실시된 것은 조선 세종 때(1426년 12월) 권채(權採(, 신석견(辛石堅), 남수문(南秀文) 등 3인을 선발하여 관청공무에는 관계없이 연구에만 몰두하게 하였는데, 대제학 변계량(卞季良)이 세종의 명을 받고 시행했다. 이때 독서를 한 장소는 자택이었다.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한 뒤 집현전 학사들 가운데 재행(才行)이 뛰어난 자를 선발, 휴가를 주어 독서 및 연구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하고, 그 경비 일체를 나라에서 부담하도록 하였다.

1504년 갑자사화 이후 연산군은 독서당(讀書堂)과 이 제도를 폐지하였고, 중종은 506년 11월 다시 부활시켰다. 임진왜란 이후 사가독서(賜暇讀書)는 중단이 되었으나 광해군 때(1608년) 대제학 유근(柳根)의 청으로 한강별영(漢江別營)을 독서하는 장소로 삼았다. 인조 때 병자호란이 있은 뒤 활성화되지 못한 채 영조 때까지 명맥을 이어오다가 왕실 학문 연구기관이자 왕실 도서관인 규장각(奎章閣)의 설립과 함께 폐지되었다.

선발된 문신에게 주어지는 기한은 1개월에서 3개월이었으며 최장기인 경우에는 달수를 표시하지 않고 '장가(長暇)'라고만 하였다. 1 차의 사가독서(賜暇讀書)에 선발되는 인원은 보통 6인 내외였으며 많을 때는 12인까지, 적을 때는 1인만 뽑힌 때도 있었다. 1426년부터 1773년까지 총 48차에 걸쳐서 320명이 선발되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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