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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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창 교향곡으로 드리는 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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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미 [viamaria] 쪽지 캡슐

1999-01-03 ㅣ No.211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을 좋아한다.

그 가사가 프리메이슨이 좋아하던 시인의 것이라는 것에 상관없이.  

베토벤의 들을 수 없는 귀로 인해 엄청나게 괴팍했다는 것과 상관없이

그 교향곡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교향곡의 음량 때문이다.

그가 그 곡의 악상을 처음 떠 올렸을 때 그의 귀는 점점 더 들리지 않고 있는 상태였고

그 곡이 완성 되었을 때 그는 전혀 들을 수 없었다.

그 곡에 초연 당시  무대감독은 오케스트라 무대 밑에 지휘자를 따로 앉혀 놓았고

베토벤은 곡이 끝났을 때 환호하는 관객의 반응도 눈치재치 못하고

여전히 지휘를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이야기도 감동스럽지만 그가 그 음량은 듣지 못하고 만들었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커다란 인상을 주고 있다.

작곡가가 아니니 그가 어떤 방식으로 곡을 만드는지 알 수 없어도

내 경험으로 봤을 때 어느 노래를 아무리 잘 외우고 있어도

머리 속에서 듣는 것과 귀로 다시 들을 때 그 소리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베토벤은 과연 어떤 기분이 였을까?

아무리 작곡의 대가 였어도 진짜 교향곡의 소리로 들을 수 없었던 곡의 느낌은

머리 속이 아니라 정말 귀로 들리는 생음악의 느낌은 몰랐을 것이다.

자신이 연주하고 자신이 지휘하면서도 그 음을 들을 수 없었다니……..!

한데 교향곡 9번은 그런 그림자조차 없다.

음악평론가는 뭐라고 할지 몰라도 내 귀에는 그것을 감지 못 하겠다.

힘차고 크고 웅장한 소리들 송년 음악회나 신년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듣고 있노라면

얼마나 그 소리들이 웅렁찰지 생음악으로는 들어 본적이 없지만

오디오에 소리로도 참으로 아름답다 힘차다고 느껴진다.

이 교향곡을 들고 있을 때는 가만히 내 안에 혹은 주변에 있는 예수님의 성화를 바라다보며

가만이 있으려 한다. (모짜르트 레퀘엠도 그렇지만)

그는 들을 수 없었지만 작곡할 수 있었던  곡

그 가사가 어떠하든 그 음악의 생동력 약동성

내가 하는 일들도 다 파악할 수는 없지만 그와 같이 하느님이 연주 하시면

커다란 소리로 세상에 울려 퍼질 것이다.

참으로 나에게는 들려지지 않는 음악이지만 다른 이이게는 커다랗게 다을 수 있을 것이다.

교향곡을 듣는 내내 떠 올리며 묵상할 수 있는 것은

베토벤은 자신이 들어 볼 수도 없는 마음의 소리로 이 곡을 만들었고

마음의 소리로 연주 했지만 이렇게 커다랗다는 것이다.

공연장에서 들으면 어떨지 모르나 내가 느끼는 그 음악은 참으로 크다.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다 들을 때면  내 마음도 입도 그 가락으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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