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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511 -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 강지원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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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현 [kjh2525] 쪽지 캡슐

2017-05-11 ㅣ No.111956




2017
05 11 () 가해 부활 제4주간 목요일 복음 묵상



사도행전 13,13-25
요한복음 13,16-20


강지원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
주님의 행동을 본받아 >


찬미 예수님!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주님 부활 4주간 목요일입니다. 오늘의 요한복음은 성목요일 최후의 만찬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 주신 다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크게 두 가지의 메시지를 전해 주고 있습니다.
그 첫째는 오늘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어준 것처럼 주님의 행동을 본받아 너희들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나아가 세상 사람 모두에게 행하고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잘 알고 계시듯이 우리 신체 중에서 가장 지저분하고 더러운 부위가 바로 발입니다. 특히 팔레스티나 지역처럼 흙먼지가 많은 곳에서는 우리처럼 양말을 신고 발 전부를 덮어 주는 신발 형태가 아니라 흔히 우리들이 샌달이라고 표현하는 발을 드러내는 형태의 신발을 신습니다. 그러다 보니 땀난 발에 온갖 흙먼지들이 들어붙어 아주 지저분하고 더 더러웠을 겁니다.

그런 더러운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 종이 주인이나 손님한테 하는 행동입니다. 이런 발 씻김의 행위를 주님께서 손수 하신다는 것은 왕 중의 왕이신 분이 비천한 종의 모습으로 자신을 낮추어 우리 죄 많은 사람들을 섬긴다는 놀라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바닥까지 허리를 굽혀 더러운 인간의 발을 씻기는 행동이야 말로 사랑의 극치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이 피조물인 인간을 위해서 말입니다. 이런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는 이런 사랑을 보고 본받아 제자들도 그렇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 직전의 14절과 15절에서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주님이요 선생인 내가 여러분의 발을 씻었다면 여러분도 마땅히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사실 내가 여러분에게 본을 보여준 것은 내가 여러분에게 행한 대로 여러분도 그렇게 행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 명령은 그 당시 제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주님의 제자들인 우리들에게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사랑을 실천하는 자만이 진정 주님의 참된 제자라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것처럼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서로 아껴주고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며 사는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주님의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고 그들도 서로 사랑하게 되리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느님을 모릅니다.(1요한 4, 8) 왜냐하면 사랑은 하느님으로부터 오고 사랑하는 모든 이는 하느님에게서 태어났고 하느님을 알기 때문입니다.(1요한 4, 7)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 안에 머물러 계십니다.(1요한 4, 16) 누가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사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1요한 4, 20)

그리고 두 번째 메세지는 잠시 후 발생할 유다의 배신행위는 성서말씀을 토대로 이미 예견된 하느님의 섭리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유다의 배신행위가 실행되더라도 주님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받으신 것이 아니라, 여전히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분이시고 이로 인해 주님이 높이 들어 올려지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유다의 배신행위로 인해 제자들의 믿음을 흔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주님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살아가면서 우리 인간 이성으로는 이해될 수 없는 사건들도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나에게 불리하고 상처가 되는 사건들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흔들려서는 안 되고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과 우리들에 대한 주님의 은총이 드러나는 섭리로 받아 들여야 할 것입니다.


강지원 토마스 아퀴나스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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