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7일 (목)
(녹) 연중 제12주간 목요일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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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웅렬신부(가톨릭의 중심은 성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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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7-07-08 ㅣ No.113100

 

"가톨릭의 중심은 성체입니다."

찬미 예수님

예수님께서 공생활 3년 동안

우리와 같이 사시면서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3대 유언은

첫째,

서로 사랑 하여라.’

둘째,

이 세상 끝 날까지

복음을 선포 하여라’.

세 번째

는 오늘 복음 내용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첫 번째와 두 번째 유언,

서로 사랑하고

복음을 선포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 세 번째 유언은 이 두 유언을

완성하기 위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전체는 사랑과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이야기입니다.

그 완성을 위해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일곱 번 강조하십니다.

내 살과 피를 먹고 마시지

않으면 영생을 얻지 못하리라.’

마태오복음 2820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는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위안을 줍니다.

예수님은 네 가지 거룩함 안에서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첫 번째는 성체와 함께,

두 번째는 성령과 함께,

세 번째는 말씀(성경)과 함께,

네 번째는 성모님 안에서

함께 하십니다.

가톨릭의 중심은 성체입니다.

암브로시오 성인이 말했습니다.

빵이 어떻게 예수님의 몸으로

변할 수 있을까? 축성에 의해서

미사 때마다 사제의 입술에 의해

밀가루와 포도주가 축성되어

주님의 몸과 피로 변합니다.

사제가 빵과 포도주를 축성하고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먹어라

할 때, 그것은 사제의 말이 아니라

예수님의 인격체 안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신성한 축성의 단어에 의해

예수님은 제대와 감실 안에

제병의 형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이것을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느 날 개신교목사에게

궁금하지만 도전적인 느낌의

질문이 담긴 편지를 받았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으로 변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목사님 당신이 태어났을 때는

아주 작았지만,

당신이 먹은 음식이 몸과

피로 변화됨으로써

당신의 몸이 자라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먹은 빵이

우리의 살로 변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그리고 당신의 현존을

성체 안에 머무르게 하시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일 것입니다.”

두 번째 질문은

그럼 예수님이 과연 그 작은

제병 안에 계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입니까?

어떻게 사람의 몸뚱이가

그렇게 작은 밀떡 안에

존재한단 말입니까?”

목사님 주위의 풍경을 보십시오.

그 넓은 풍광에 비해서

당신의 눈은 얼마나 작습니까?

당신은 그 작은 눈 안에

저 넓은 풍경을 담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상으로 되는 일을

하느님께서

할 수 없으시다는 말입니까?‘”

세 번째 질문은 한 몸이신

예수님이 모든 축성된 제병 안에

동시에 계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거울을 마룻바닥에 던져 보십시오.

수 백 개의 깨진 거울 조각조각마다

깨어지기 전의 영상이

동시에 들어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동시에 수천 개,

수 백 만개의 축성된 제병

하나하나에 성체로 현존하는 것은

하느님에게는 일도 아닙니다.”

이렇게 각 질문에

짧게 답을 보냈는데,

그 다음에 편지는 안 왔습니다.

세상에는 기적과 신비가 있지요.

기적 다음에는 신비라는

단어를 붙이지는 않지만,

신앙이라는 다음에는

신비를 붙입니다.

기적이라고 하는 것은

검증이 가능지만,

신비라고 하는 것은

검증이 안 됩니다.

짧았던 다리가

성령기도회에 가서

갑자기 다리가 늘어났습니다.

암환자가 성지 왔다가

암이 나았습니다.

이것은 검증이 가능합니다.

이것은 기적이지

신비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비는

검증이 되지 않습니다.

처음에도 사제가 축성한

다음에도 빵의 모양이지,

살덩이로 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신비는 기적보다 윗 단계입니다.

그래서 신비는 믿어야합니다.

신앙을 통한 영적 확실성이 없으면

절대로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기적은 신앙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믿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천국에서 주님을

직접 뵙고 있는 영혼들이

부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제병의

형상 안에 계신 예수그리스도를

늘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예수님을

뵙지 않을 뿐이지,

제대 위에 계신 예수님을

뵐 수 있기 때문입니다..‘

()데레사 성녀는

내가 예수님이 살았던

시대에 살면 얼마나 좋았을까?

내가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분의 숨결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살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이 우리 안에

현존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라고 말했습니다.

성인이 되는 비결은 열심히

성체조배하고 성체강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오래전 중국선교를 다닐 때,

팔가자라는

교우촌을 찾아갔습니다.

그 교우촌은 김대건신부님과

최양업신부님이

부제 때 머무르신 곳입니다.

신양에서 달구지를 타고

동네를 들어가는데,

양옆에는 끝도 안 보이는

옥수수 밭이었어요.

동네는 옥수수 밭으로 둘러싸여있고,

마을 안의 200년 된 성당에는

낡은 비둘기 성령상이 서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피정지도 하러

신부님이 왔다고 하니,

회장님이 깨져서 잘 소리도 안나는

성당 종을 30분은 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넓은 옥수수 밭에서

꼼지락 거리면서 수많은 신자들이

나와서 성당마당에 7-800명으로

가득 찼습니다.

일하다 말고 나와서 한국에서

온 신부를 환영합니다.

물론 그 자리엔 공산당원들도

있었고 철저하게 감시를 했습니다.

거기 머물며 여러 가정을

방문했을 때,

모든 집의 방향은

제각각 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두 같은 점은

문이나 창문은 꼭 성당을

향해 있었습니다.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성당을 마음대로 갈 수

없었던 없었기에,

늘 창문과 문은 성당 쪽으로

향해서 내고,

문 앞에 서서 감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십자가를

그리워했던 겁니다.

신자들은 문 앞에서

주님을 만났고 유리창을

내다보면서 성체를 그리워하며

그 어려운 혁명의 시기를

견디어 냈다고 합니다.

만일 천사가 내려와 여러분에게

예수님께서 어느 집에 기다리는데

거기에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라고 한다면,

우리는 즉시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그 분에게 달려갈 겁니다.

요한 보스코 성인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당신은 주님께서 많은

은총을 주시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그 분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은총을

조금만 받기를 싶습니까?

그렇다면 가끔 방문하십시오.

당신은 마귀가 당신에게서

멀리 달아나기를 바라십니까?

그러면 예수님을 자주 방문하십시오.

성체조배는 마귀를 정복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방법임을 명심하십시오.“

성 알퐁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모든 일생 중에서 당신이

성체 앞에서 보낸 시간이

당신에게 가장 큰 힘을 줄 것이고,

당신의 임종 때와 영원에서

가장 큰 위로를 받을 겁니다.”

구약에서는 하느님을 보면

죽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반대로

나를 보라고 합니다.

나를 안보면 죽을 것이다.

나를 먹지 않으면 죽을 것이다.’

라고 나옵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이 다른 겁니다.

가톨릭의 중심은 성체입니다.

성당에서 불이나면 사제들은

목숨을 걸고 성체부터 꺼내야 합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도 많은

신부님들이 성당에 화재가 났을 때,

성체를 꺼내다 돌아가신

분들도 많습니다.

또 성체에 관한 수많은

기적들이 있습니다.

8세기경 이탈리아 란치아노에서

사제 서품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아주 어린 신부님이 미사를

봉헌하다가

갑자기 분심이 들었습니다.

내가 경문을 읽는다고 해서

어떻게 밀가루가 살과 피가 될까?’

신학교에서 신학과 성체에 대해

배웠어도 마음에

와 닿지 않았던 겁니다.

그런 의심을 가지면서 성체를

들어 올리는 순간, 손에 있던

그 제병이 살이 되고 밑으로

피가 뚝뚝 떨어졌습니다.

나중에 그것이 조사가 되어,

이것은 예수님의 성체요

성혈이라고 공인합니다.

지금도 그 성당에 가면

빵의 모습이었지만 살로 변한

그 성체가 모셔져있습니다.

성체에 대해 가장 열심인 신자는

제 경험으로는 사형수들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사형이 거의 없어졌지만,

예전에는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수인사목하는 사제들이

교도소에 가서 미사를 드릴 때

사형수들은 나올 수 없었습니다.

대신 미사 후 성체를

모시고 감방에 갑니다.

사형수들은 미사가 시작이

됐을 때부터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올 때까지 무릎을 꿇고

성체를 기다립니다.

입에 성체를 넣어줄 때

울지 않는 사형수는

하나도 없습니다.

어쩌면 이 성체가 내 생애의

마지막 성체일 수 있다는

애잔한 마음으로

성체를 영하기때문 입니다.

우리 교우들이 형장에서

죽을 때 4번을 입회해봤는데,

참으로 담담하게 죽습니다.

일반인들의 형장에도 입회를

몇 번 해봤지만,

아주 처참합니다.

기도해드릴까요?”

필요 없어!” 욕을 해댑니다.

죽은 후 내려가 보면 혀와

창자는 있는 대로

다 빠져 나와 있어요.

사람얼굴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교우들은 마지막

세상을 떠나면서 사제에게

강복과 안수 받고 그리고

사제의 눈을 보면서 죽습니다.

죽은 후 내려가 보면

참 깨끗합니다.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의연할 수 있었던 힘은

한 달에 한 번

영했던 성체입니다.

우리가 하느님과 가까워지는

유일한 방법은 사형수의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형의 집행이 언제인지

모를 뿐이지 우리는

넓은 의미로 사형수입니다.

성인 성녀되는 방법은

종말론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뜨면 잡소리와

잡생각이 여러분을

지배하기 전에,

누워서라고 제일 먼저 할 일은

자기 몸에 십자성호로

축성하는 겁니다.

주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하루를 마지막으로

알고 살겠나이다.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자기에게 하루밖에

안 남아있다 하면 열심히

안 살 사람이 어디 있고,

용서 못해줄 사람이 어디 있고,

움켜쥐고 욕심 속에

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루밖에 안 남아있다고 하면

오늘 드리는 이 아침기도가

내 생애의 마지막 아침기도요,

오늘 드리는 이 묵주기도가

내 생애의 마지막 묵주기도요,

오늘 읽는 이 성서구절이

내 눈으로 보는

마지막 성서구절이요,

오늘 영하는 이 성체가

내 생애의 마지막 성체요,

오늘 듣는 신부님 강론이

내 생애 마지막 고별 강론이다

라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그것이 바로

성인이 되는 길입니다.

하루하루를 마지막으로

살다보면 그것이 그 사람의

삶이 되는 것이요,

그렇게 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가고,

그 분 앞에 섰을 때 죽을힘을

다해서 열심히 살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두에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마태 28:20).’

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4가지의 거룩함 성체,

성령, 성경(말씀) 그리고

성모님 안에서 함께 하십니다.

성경과 성령과 성모님은 어떤

의미에서 성체를

보호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체의

울타리가 성모신심이요,

성령의 역사요,

말씀을 통한 체험입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는

성체께 가까이 갈 수 있습니다.

가능한 한 주일에 평일미사

한 두 번이라도 참석하십시오.

일주일에 한 번 주일미사 때

영성체 하는 것으로는

일주일 동안 못 버팁니다.

몸 편안히 하려고 혈압 약은

매일 먹으면서 천상의 약은

왜 일주일에

한 번만 영하십니까?

우리의 의지와 머리로만으로

분별을 못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으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어떻게 분별해서

결정하고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그 순간순간 예수님의 삶으로

살아가려면 가능한 성체를

자주 영해야합니다.

요즘은 미사가 없어서

못 영한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겁니다.

아침의 시작을 미사와

성체로 하면 그 날 하루는

축성된 하루가 될 것입니다.

하루의 마무리를 미사와

성체로 하면 그 날 받은 상처와

모든 것이 치유가 될 것입니다.

소화 데레사와 대 데레사 성녀는

천국의 영혼이

부럽지 않다고 했죠?

? 성체를 영할 수 있기에.

성체성혈 대축일!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 안에 들어오십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십니다.’

-갈라디아서 220-

바오로사도의

그리스도와의 동일화입니다.

예수님을 영하면 그리스도와

비슷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 사십니다.

이것이 바로 성체를 영하는

천주교신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아니겠습니까?

성체를 영하고 나면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니,

자리에 들어가서

성가 부르지 마시고 예수님의

손을 가지고

치유기도 하시면 됩니다.

가슴에 손을 대고 주님,

제 역사 안에 들어오시어

제 인성안의

상처를 치유시켜주십시오.’

몸이 아픈 사람은 예수님의

손을 가지고 아픈데 손을 대고

치유기도 하십시오.

자비를 청하십시오.

믿는 대로 될 것입니다.

개신교 교우들은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그 은혜를

천주교 신자들은 성체를 통해

얻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보물이 보물인줄 모릅니다.

당연히 가면 넙죽

받아먹는 것으로 알고,

성체를 영하고 나서도

누가 내 안에 들어와 계신지

의식을 못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오상의 비오신부님은

햇빛이 없이는 살아도,

성체가 없이는 못 삽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성체에 대한 간절한 마음은

우리를 예수님과 닮게 하고,

예수님과 동일화를

이룰 것이라는 것을

명심합시다.아멘!

2017년 그리스도의 성체성혈 대축일 (6/18)

배티성지 김웅열(느티나무)신부님 강론.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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