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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하늘나라 복음 선포 (마태1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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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7-08 ㅣ No.148159

2021년 7월 8일 목요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하늘나라 복음 선포 (마태10,7-15)

 

 

1독서<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이집트로 보내셨습니다.>(창세44,18-21.23-29; 45,1-5)

18 유다가 요셉에게 나아가 말하였다. “나리이 종이 감히 나리께 한 말씀 아뢰겠습니다나리께서는 파라오와 같으신 분이시니이 종에게 노여워하지 마십시오.

19 나리께서 이 종들에게 아버지나 아우가 있느냐?’ 물으시기에,

20 저희가 나리께 대답하였습니다. ‘저희에게 늙은 아버지가 있고그가 늘그막에 얻은 막내가 있습니다그 애 형은 죽고 그의 어머니 아들로는 그 애밖에 남지 않아아버지가 그 애를 사랑합니다.’

21 그러자 나리께서는 그 아이를 나에게 데리고 내려오너라내 눈으로 그를 보아야겠다.

23 너희 막내아우가 함께 내려오지 않으면너희는 다시 내 얼굴을 볼 수 없다.’ 하고 이 종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4 그래서 저희가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에게 올라갔을 때나리의 말씀을 아버지에게 전하였습니다.

25 그 뒤에 저희 아버지가 다시 가서 양식을 좀 사 오너라.’ 하였지만, 26 저희는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저희는 내려갈 수 없습니다막내아우가 함께 가야 저희가 내려갈 수 있습니다막내아우가 저희와 함께 가지 않으면저희는 그 어른의 얼굴을 뵐 수 없습니다.’

27 그랬더니 나리의 종인 저희 아버지가 저희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 아내가 나에게 아들 둘을 낳아 주었다는 것을 너희도 알지 않느냐?

28 그런데 한 아이는 나를 떠났다나는 그 애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고 말하였고사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아이를 다시 보지 못하였다.

29 그런데 너희가 이 아이마저 나에게서 데려갔다가 무슨 변이라도 당하게 되면너희는 이렇게 백발이 성성한 나를비통해하며 저승으로 내려가게 하고야 말 것이다.’”

45,1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는 모든 이들 앞에서 더 이상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모두들 물러가게 하여라.” 하고 외쳤다그래서 요셉이 형제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그 곁에는 아무도 없었다.

요셉이 목 놓아 울자그 소리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요셉입니다아버지께서는 아직 살아 계십니까?” 그러나 형제들은 요셉 앞에서 너무나 놀라그에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에게 나에게 가까이 오십시오.” 하고서는그들이 가까이 오자 다시 말하였다.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16-17.18-19.20-21(◎ 5ㄱ 참조)

◎ 주님이 이루신 기적을 기억하여라.

○ 그 땅에 기근을 불러일으켜양식을 모두 끊으셨을 때한 사람을 그들 앞에 보내셨으니종으로 팔려 간 요셉이라네

○ 사람들이 그의 발에 족쇄 채우고목에는 쇠사슬 옭아매었네마침내 그의 말이 들어맞아서주님 말씀이 그를 보증하셨네

○ 임금이 사람을 보내 그를 풀어 주고민족들의 통치자가 그를 놓아주었네그를 왕궁의 주인으로 내세워모든 재산을 다스리게 하였네

 

복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10,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제1독서(창세44,18~21.23ㄴ~29; 45,1~5)

 

"그러나 이제는 저를 이곳으로 팔아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 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창세45,5)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라고 번역된 '웨알 이하르 뻬에네켐'(weal yhar beenekem)에서 '웨알'(weal)은 '~마십시오'(do not)이고, '이하르'(yhar)는  '화내다'(be angry)이며, '뻬에네켐'(beenekem) 부사구로서 '너희 스스로에게'(with yourselves)이다.

 

한마디로 '그러므로 당신은 스스로에게 화내지 마십시오'(And do not be angry with yourselves)이다.

 

요셉의 이 말 형 자신들이 팔았던 동생 요셉이 이집트에서 막강한 권력을 가진 재상이 되었으니 죽을 죄를 지은 것이라고 스스로 비관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본문에서 사용된 부정어 '알'(al)은 '일시적인 금지'를 나타낸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일단 마음을 진정하고 자신의 설명을 들으라는 의미로서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라고 말하였고, 그 다음 문장의 '왜냐하면'이라는 뜻을 가진 접속사 '키'(ki; because)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여기서 '보내신 것입니다'에 해당하는 '셸라하니'(shellahani; sent me) 기본형 '샬라흐'(shallah)는 '보내다'라는 뜻을 지닌 단어이다.

그런데 성경의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말씀,  즉 '구원', '도움'(시편20,3)이나 '재앙'에 관한 소식을(여호24,12) 전하기 위해 사자를 보낼 때도 이 단어가 사용되므로, 구세사안에서 약속의 실현이라는 관점에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구약 성경의 그리스 번역본인 70인역(LXX)은 '샬라흐'(shallah)를 '아포스텔로'(apostello)라고 번역했는데, 이 말이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복음 전파를 위해 보내신 '사도'를 의미하는 '아포스톨로스'(apostollos), 즉 '보냄을 받은 자', '파견된 자'의 어원이 되었다(마태10,2; 루카17,5; 로마1,1).

 

따라서 요셉이 '여러분 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라고 한 말의 의미에는 하느님께서 그에게 주신 사명을 이루기 위해 먼저 이집트로 '보냄을 받은 자'가 되었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런 사실은 실제로 요셉을 이집트로 판 자들은 형들이었으나 본문의 주어가 '하느님'(엘로힘)으로 나오는 데서도 확인된다.

즉 요셉의 형제들이 시기심 때문에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에게 팔았던 사건을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될 야곱 일가의 생명을 보존시키기 위해 먼저 요셉을 이집트에서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사용하셨음을 보여 주고 있다.

 

결국 요셉의 이야기는 한 인간의 고난과 역경에도 불구하고 그가 승리한 사실을 전해주는 의미 뿐만 아니라 당신의 선택하신 백성을 보존하고 계약을 계승시키려는 창조주 하느님의 오묘한 섭리가 주제인 것이다.

 

어제 독서에 보면, 요셉이 형들에게 막내 아우 벤냐민을 가나안에서 이집트로 데려오면 살려줄 거라는 말을 한다. 이 말을 들었을때, 형들은 자신들에게 가중되는 고통의 압박감 때문에, 지난 과거를 뉘우치는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창세기 42장 23절에 형들이 요셉과 자신들 사이에 통역이 서 있었기 때문에 요셉이 못 알아듣는 줄 알았으나~ "요셉은 그들앞에서 물러나와 울었다"고 되어 있다.

 

요셉이 위선자인가? 겉으로는 형들을 엄하고 무섭게 대하고, 돌아서서 우는 이중인격자인가?

이것은 아이들을 혼낸 후에, 돌아서서 괴로워 우는 어머니의 모습과 같다.

사랑하기 때문에 때리는 것이다. 깊은 참회를 경험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창세기 43장 27-30절을 보면,

요셉은 형들이 아버지 야곱을 설득해서 동생 벤야민을 데리고 와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때,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묻고는 눈을 들어, 자기 친 어머니 라헬의 아들 친동생 벤냐민을 보며,

자기 아우에 대한 애정이 솟구쳐 올라 울음을 참았다가 서둘러 안방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운다.

 

이렇게 요셉은 다시 해후하게 된 형제들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에 하염없이 마음속 깊은 곳, 뼈속 깊은 곳에서 울음이 솟아나는 순수한 피와 감성의 소유자이다.

하지만 공인인 재상으로서의 자신의 위치와 마음으로는 이미 용서해 주었지만~

형들의 참회를 이끌어내고 진정한 화해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공적으로 울음을 드러내지 않고 감추는 절제의 미덕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제 창세기 44장 18-34절을 보면,

유다가 아버지 야곱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할 수가 없어 벤야민 대신에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나서는 목숨건 간절한 애원에,  더 이상 요셉은 자신을 억제하지 못하고, 신하들은 다 물러가게 하고, 형제들 앞에서 목놓아 운다.

그 소리가 얼마나 큰지, 이집트 사람들에게 들리고 파라오의 궁궐에도 들렸다.

 

 대성통곡의 의미가 무엇인가?

 

단순히 형들에게 왕따 당하고 자신을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들의 배신에 대한 상처와 한풀이인가?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아버지와 가족과 생이별을 하고 고아처럼 살면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기근이 동기가 되어 극적 조우를 하게 된 애증의 눈물인가?

 

형들이 요셉 자신에게 한 과거 행위들을, 바닷가 모래톱위에 새겨진 글자처럼 비바람과 파도에 씻어버리고 망각의 피안으로 날려버린, 형들의 실종된 죄의식과 무뎌진 양심을 회복하고, 뉘우치게 하는 과정속에서 그래도 아직 남아있는 인간성의 선함을 발견하고 화해하게 하는, 느님의 섭리와 안배하심에 대한 감사의 눈물인가? 

 

어쨌든 요셉은 형들을 가까이 오라 하고 "내가 형님들의 아우 요셉입니다. 형님들이 이집트로 팔아넘긴 그 아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를 팔아 넘겼다고 해서 괴로워하지도 자신에게 화를 내지도 마십시오.

우리 목숨을 살리시려고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 땅에 기근이 든지 이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다섯 해 동안은 밭을 갈지도 거두지도 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나를 여러분보다 앞서 보내시어, 여러분을 위하여 자손들을 이땅에 일으켜 세우고, 구원받은 이들의 큰 무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목숨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서둘러 아버지를 모시고 이곳으로 내려오십시오."(창세45,4-14참조)

 

위의 요셉의 말속에서 형들에게 형님들이라는 존칭을 쓰고, 자신을 아우라 하며, 우리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정안에서의 위계질서와 한식구라는 동질성과 관계를 바로잡고 회복을 한다.

또한 분명히 형님들이 자신을 이집트로 팔아 넘긴 것을 지적하나, 이제 충분히 자신의 행위를 알아듣고 참회했으니, 죄책감과 자책에서 벗어나라고 충고한다. 

 

그 다음 이제는 마음과 시선을 들어 올려 모든 일들 위에 초월하여 있는, 하느님의 크나큰 섭리와 안배를 바라보면서 그들과 온전히 화해를 이루고 수평적인 관계 회복을 한다.

 

우리는 여기서 용서와 화해를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요셉은 이미 형들을 만났을때 마음으로 이미 용서했다. 용서는 상대방과 관계없이 내가 하느님의 마음으로, 하느님의 가르침에 따라 하면 된다.

그러나 화해는 다르다. 요셉이 형들을 감옥에 가두고, 막내동생을 데려 오라 하고,  아버지 야곱의 안부를 묻고,

아버지의 마음을 헤아리고 다시 불러 들이는 과정이 바로 자신과 형들의 잘잘못을 따지며 화해하는 과정인 것이다.

 

이것이 이루어질때, 인간들의 상호 주고 받은 상처와 고통 너머로~~

아니 그것안에서도 선을 끌어내시며 당신의 일을 하시는 하느님의 섭리와 안배가 보이고,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느님께서 요셉을 이집트의 재상으로 만드신 이유가 무엇인가? 단순히 형들을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해서인가? 아니다.

사실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삭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하느님은 이런 과정을 통하여, 자격없고, 부도덕하고, 혈기많은 야곱의 열두 아들들을 단련하시고, 믿음의 열두 지파를 세워서, 하느님의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요셉은 자기 아우 벤야민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벤야민도 그의 목을 껴안고 울었다. 요셉은 형들과도 하나 하나 입을 맞추고 그들을 붙잡고 울었다. 그제야 형들은 그와 이야기 했다."(창세 44,14-15)

 

눈물은 이렇게 상처를 닦아 주는 치유를 가져오고 화해를 가져온다.

형제들간의 이 울음은, 창세기 46장 29절의 요셉이 고센으로 올라가 아버지 야곱을 만나 ~ 목을 껴안은채 한참 우는 장면으로 절정에 달하고 목적을 이룬다.

이처럼 요셉의 영적 통찰력은 인간적인 육정을 초월해서 하느님의 일과 구원의 대 드라마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2020년 7월 9일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우리가 창조 되었음을 기억하며.

(마태 10,7-15)

7 “가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하늘나라가 왔다는 것은 하느님의 통치(말씀)가 오셨다는 것이고,

그 통치를 받은 이들~

(묵시21,4)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다다시는 죽음이 없고 다시는 슬픔도 울부짖음도 괴로움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전 것들곧 율법의 옛 계약그 심판의 법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로마3,20-25) 20 어떠한 인간도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율법을 통해서는 죄를 알게 될 따름입니다. 21 그러나 이제는 율법과 상관없이 하느님의 의로움이 나타났습니다이는 율법과 예언자들이 증언하는 것입니다. 22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거기에는 아무 차별도 없습니다. 23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느님의 영광을 잃었습니다. 24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진 속량을 통하여 그분의 은총으로 거저 의롭게 됩니다. 25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

하늘의 통치는 예수님의 피로 거저 주시는 그리스도의 죄의 용서치유구마인 것입니다거저 받은 십자가의 복음으로~~

 

앓는 이들을 고쳐 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어라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어라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9 그러니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 돈도 지니지 마라. 10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하느님의 통치그 말씀을 준비하고 의지하라 시는 것입니다.

 

11 어떤 고을이나 마을에 들어가거든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라.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정신으로 사람들의 칭찬대접을 받지 말라는 것이지요그 칭찬을 자기 의로움으로 챙길까 염려하는 말씀입니다.

 

12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13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예수님의 평화곧 십자가의 대속으로 얻는 용서자유그 구원의 평화를 빌어 주라는 말씀이지요(미사 때 우리가 나누어야 할 평화의 인사인 것입니다.)

 

14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도 듣지 않거든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 ‘먼지를이 아닌 직역하면 먼지로’ 털어 버려라 입니다.

 

(창세2,7)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시니사람이 생명체가 되었다.

하느님의 말씀(통치)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하느님의 숨을 받지 않는 먼지일 뿐입니다그 먼지로 털어 버리라는 말씀이지요.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심판 날에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그 고을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더러운 영의 말인간을 위한 그 계명에서 하느님의 말씀십자가의 복음 그 진리의 길로 돌아오면새 계약의 말씀 양식을 먹여~(예레31,33~ 히브10,16~ 참조)

다시~~

(호세11,4.8-9) 4 나는 인정의 끈으로사랑의 줄로 그들을 끌어당겼으며 젖먹이처럼 들어 올려 볼을 비비고 몸을 굽혀 먹여 주었다. 8 에프라임아내가 어찌 너를 내버리겠느냐이스라엘아내가 어찌 너를 저버리겠느냐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내버리겠느냐내가 어찌 너를 츠보임처럼 만들겠느냐내 마음이 미어지고 연민이 북받쳐 오른다나는 타오르는 내 분노대로 행동하지 않고 에프라임을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으리라나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이다나는 네 가운데에 있는 거룩한 이’ 분노를 터뜨리며 너에게 다가가지 않으리라.

 

새 계약(공동번역성서)

(예레31,33-34) 33 그 날(십자가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 줄 내 법을 말한다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그 마음에 내 법(새 계약)을 새겨주어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다. 34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그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 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 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될 것이며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내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이는 내 말이라어김이 없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영(), 성령을 통하여 완성하시는 것,

그러면 제자들은 왜 뽑으셨는가그들에게 하라 하신 복음 선포로 자신들과 다른 이들이 더러운 영의 말을 들어 사람의 규정과 교리로또 선악의 자기 의로움을 위한 헛된 신앙으로 하느님을 헛되이 섬겼던 그 잘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그래서 돌아와 하느님의 구원을 받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구원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로 받아야 할 존재라는 것이지요.(에페2,8-9) 그 깨달음을 위한 것이 신앙생활인 것입니다아멘.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복음 (마태10,7-15)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전대에 금도 은도 구리도 지니지 마라. 여행 보따리도 여벌 옷도 신발도 지팡이도 지니지 마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어떤 고을이나 마을이 들어가거든, 그곳에서 마땅한 사람을 찾아내어

 떠날 때까지 거거에 머물러라. 집에 들어가면 그 집에 평화를 빈다고 인사하여라. 그 집이 평화를 누리기에 마땅하면 너희의 평화가 그 집에 내리고, 마땅하지 않으면 그 평화가 너희에게 돌아올 것이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고 너희 말을 듣지 않거든, 그 집이나 그 고을을 떠날 때에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 버려라." (7-14)

 

마태오 복음 10장 7절의 '거저'에 해당하는 '도레안'(dorean; freely)는 받는 이의 관점에서는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고 선물로서 받은'이라는 뜻이고, 주는 이의 관점에서는 '어떤 결과도 기대하지 않고 주는'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먼저 예수님께로부터 아무 대가도 치르지 않은 선물로서의 구원을 받았다.  

이제는 받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돌아올 아무런 이익도 기대하지 않고, 구원을 베푸시는 주님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라는 말씀이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사가 10장 9절에서 전직 세리 출신으로서 금전 계산에 빨라서 돈의 종류를 일일이 나열한다.

금('크뤼소스'; chrysos; gold), 은('아르귀로스'; argyros; silver), 구리('칼코스'; chalkos; brass)로 세분하면서, 동시에 짧은 문장 안에 '마라'라고 한 번밖에 번역되지 않은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 '메'(me; neither)와 '메데'(mede; nor)가 세 번이나 반복하여 사용한다.

 

그 뜻은 복음을 전한 것에 대한 보답으로서 불의하게 어떤 대가를 바라거나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인데, 마태복음사가는 복음 선포자가 가져야 할 청렴성과 신앙의 강직성에 대해 더욱 강조한다.

 

또한 마태오 복음사가는 10장 10절에서 9절과 유사하게 부정을 나타내는 접속사 '메'(me)와 '메데'(mede)가 네 번이나 사용되어 매우 강조하고 있는 것이 있다.

10절에 기록된 여행 보따리나 여벌 옷, 신발이나 지팡이는 유대인들이 여행할 때 가지고 다니던 여행 필수품인데, 이것을 지니지 말라는 명령을 내리는 것이다.

 

'여행 보따리'에 해당하는 '페라'(pera; bag for the journey)는 여행에 필요한 물건들을 넣는 도구였고, '옷'에 해당하는 '키톤'(chiton; coat; tunic)는 먼 거리를 걸어서 여행하는 자가 반드시 준비해야 할 필수품이었고, '지팡이'에 해당하는 '라브도스'(rabdos; staff; stick)는 광야에서 짐승들을 만났을 때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왜 복음 전파의 임무를 부여받고 파견되어지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이런 기본적인 필수품의 소지를 금했을까?

 

이것은 천국 복음을 전해야 할 제자들이 마태오 복음 6장 25절이하 34절까지의 '세상 걱정과 하느님의 나라'에 관한 산상 설교의 말씀을 먼저 솔선하여 실천해야만 복음을 전할 자격이 생기기 때문이고,

'목숨을 부지하려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또 몸을 보호하려고 무엇을 입을까~'(마태6,25)를 걱정하지 말고, 오직 이 모든 것들을 공급하여 주시는 하느님만을 의지하고 신뢰하며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10절 후반 '받는 것은 당연하다'에 해당하는 '악시오스'(aksios; is worth of)를 통해 복음 전파자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음을 강조하고 있다.

 

복음 전파자는 오로지 복음을 전하는 하느님의 봉사자로서 자신의 생계를 위해 일하지 않기 때문에 일정한 수입이 없기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일꾼'에 해당하는 '에르가테스'(ergates; worker)가 먹을 것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은, 복음 전파자들에게는 생계 걱정을 하지 말라는 의미와 더불어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는 복음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지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1코린9,14.17,18; 1티모5,18).

 

또한, 복음 전파자가 육신의 편안을 위해 더 나은 숙식을 제공하는 집으로 옮겨 복음 전파자의 관심이 오로지 복음 전파에 있다는 사실이 희석되게 하지 말라는 당부와 더불어, 복음 전파의 가치를 바로 이해하고 복음 전파자들을 충심으로 도와줄 수 있는 믿음의 사람을 찾아 한 곳에 머물기를 명한다.

 

마지막으로,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영접하지 않는 이들은 이교도 취급을 하라는 말씀이 나온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여행에서 본국으로 돌아올 때 이교도 지역의 흙을 묻혀 들어오는 것을 부정하게 여겨 신발을 터는 관습이 있었다.

 

마태오 복음 10장 14절의 '너희 발의 먼지를 털어버려라'에서 '털어 버려라'에 해당하는 '에크티낙사테'(ektinaksate; shake off)는 '밖으로'라는 뜻의 전치사 '에크'(ek)와 '흔들다'는 의미의 '티낫소'(tinasso)가 결합되어 '흔들어 분리시키다' 뜻을 지니는 '에크티낫소'(ektinasso)의 부정 과거 명령형이다.

부정 과거 명령형은 단 한번의 행동으로 끝내는 경우에 사용되기에 이것은 미련을 두지 말고 단호하게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의미이다.

 

그들의 거절은 단순히 복음 전파자의 숙박을 거부한 것의 뜻일 뿐만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한 행위로서 이러한 불신앙의 행위는 결국 15절의 하느님의 심판을 불러오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봉사자들은 사심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거저 받은 복음을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쁘게 전했는지,

오로지 전할 복음의 내용에 충실하며 자신의 전존재와 미래를 온전히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주님께 의탁하고 맡기는 신앙으로 살아왔는지를 성찰해 보아야 한다.

 

동시에 하느님의 자녀들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때문에 현세적 생계 수단과 돈벌이를 포기한 복음의 전파자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기 위해서 자신이 획득한 수입의 열의 하나를 봉헌하는지를 물어 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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