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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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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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희 [tenghong] 쪽지 캡슐

2006-03-24 ㅣ No.16620

나해 사순 3주간 금 마르코 12, 28-34- 천국의 열쇠

 

복음에 예수님께서 첫째계명과 둘째계명에 대해 말씀해 주십니다.

그리고 그러한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율법학자에게 ‘너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와 있다.’며 칭찬하십니다.

하느님과 이웃에 대해 어떻게 사랑하는 것이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며 사랑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하면,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일까요?


거의 모든 신학생들의 필독서라 할 수 있는「천국의 열쇠」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한 인물의 일생을 소설화하여 소개하면서 매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 어릴 때의 친구이자 주교를 등장시키며 과연 이 둘 중에 누가 하느님께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인가? 천국의 열쇠를 얻은 사람인가? 라는 물음을 제시하며 끝납니다.


치셤이란 이름의 주인공은 갑자기 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부모님과 친구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이 있는 고향을 떠나, 신학교에 입학합니다.

사제가 된 후 중국 선교를 떠납니다.

큰 기대를 갖고 중국에 갔지만, 중국 사람들은 코 큰 사람이 왔다며, 치셤 신부님을 받아 주지 않고 외면한 합니다.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하듯 하나하나 이루어 나갑니다.

신학교 시절에 배운 의술로 사람들에게 다가가 조금씩 친해집니다.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조금씩 새롭게 교회 재건을 위해 온 정렬을 기울이지만, 믿음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형편이 이러다보니, 많은 유혹을 받게 됩니다.

실제, 아들의 병을 고쳐준 한 유지가 찾아와 아들을 고쳐준 보답으로 세례를 받겠다는 말을 하지만, 거부합니다.

물론, 치셤 신부님 역시 ‘이 사람이 세례를 받으면, 그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겠다.’는 고민을 하지만, 세례는 그렇게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고백을 통해 받는 것이라며 거부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한다는 말이 있듯이, 중국 사람들은 치셤 신부님의 행동과 모습을 보며 조금씩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 열어 보입니다.

한두 명이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조그마한 공동체가 형성됩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렸을 적에 친구이자 서품 동기인 안셀모 밀러 신부가 주교 대리의 신분으로 치셤 신부의 공동체를 찾아 중국을 방문합니다.

와서는 치셤 신부의 삶과 교회 모습을 보고는 실망한 채, ‘왜 유지를 먼저 포섭하고 그들을 중심으로 선교하지 않느냐?’는 질책을 한 후 돌아갑니다.


시간이 한 참 흐른 뒤, 치셤 신부는 동료들과 다른 공동체를 다녀오다가 산적들에게 잡혀 수많은 고문과 고초를 당하다가 아기 때부터 키워준 여인의 도움에 의해 탈출을 하지만,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다리를 쩔뚝거리며 걸어야 했고, 얼굴 역시 탈출하다가 맞은 총에 의해 볼품없는 모습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36년간의 중국 생활을... 자신의 청춘, 삶, 온갖 열정과 애정이 담겨있는 중국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치셤 신부는 잠시 자신을 도와주려 중국에 와서 전염병을 치료하다가 결국 목숨을 잃은 고향 친구 옆에 묻히고 싶었지만, 교회에 순종해야 하게 때문에... 그리고 고향에 가서 해야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본국으로 돌아갑니다.


본국에 와서 보니, 친구인 안셀모 밀러 신부가 주교가 되어있었습니다.

치셤 신부는 친구 주교에게 고향의 주임 신부가 되게 해 달라고 청하고 고향에서 생활하게 됩니다.


앞에서도 잠시 말씀드렸듯이, 안셀모 주교는 치셤 신부와는 정반대의 삶을 살아간 인물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사제가 되기까지 정말 모범생이었고, 교수 신부님들의 사랑과 동기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사제가 된 후에도 엘리트 코스만 밟았습니다.

삶 보다는 이론에 뛰어난 인물을 대표할 수 있을 정도로, 교세 확장에 대한 뛰어난 행정가였습니다.


저자는 둘 다 늙어 이제는 하느님 나라에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두 성직자를 비교하여, 이 둘 중에 과연 누가 하느님 나라에 갈 것인가? 누가 천국의 열쇠를 쥐었는가? 라는 물음을 던지며 책을 마무리 합니다.

(독후감을 써보지 않아서... 나름대로 정리 한다고 했지만, 핵심내용이 많이 빠져버렸습니다. 무엇보다도 치셤 신부님의 삶을 바라보며 느낄 수 있는 많은 감동을 전해 주지 못했습니다. 이 사순 시기에 꼭 읽어 보길 권합니다.)


이 책을 읽고 후에 느낌은... 그리고 비록 핵심은 빠져버렸지만, 들은 여러분들도, 천국의 열쇠는... 하느님 나라에 가까이 가 있는 사람은 안셀모 주교가 아니라, 치셤 신부님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역시 마음과 힘을 다하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계명의 실천은 이론이 아니라 삶임을...

하느님 백성의 모임인 교회를 이루는 것은, 쉽게 타협하고 융통성을 발휘하여 많은 신자를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함께 살아가는 하느님을 전해 주고, 그런 하느님에 대한 진실한 믿음의 고백에 의해 이루어져야 하는 것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란, 진정 참된 마음과 믿음으로 하느님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것이고, 그 고백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알고 있고... 사랑은 말이 아니라, 삶이라는 말을 늘 하는데...정작 나는. 우리는 그렇게 살려는 노력은 잘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삶이 고결하고...삶으로 참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의 모습에 감동을 받으며 ‘정말 성인이다. 마음과 정성과 온 열정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모습은 이런 모습이다.’는 생각과 말은 하면서도, 정작 자신과는 상관없는... 삶과는 무관한 말이라는 점입니다.


고귀한 사람과 삶에 존경과 감탄은 하면서 정작 그 자신은 그런 삶을 살아가지 않으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부정하고 싶지만, 어쩌면 그런 모습에는 우리 안에 늘 행동보다는 말이 앞선다는... 말만 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아닐까요?


진정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고, 용서하는 교회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말은 하면서도, 내심 눈에 보이는 규모를 통해, 또는 현대인의 기호에 맞는...기분을 맞춰주는 교회를 통해, 그것으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요?


무엇보다도, 우리 안에 바로 우리가 비난하는 알셀모 주교의 모습이 있기에, 바로 안셀모 주교의 모습을 통해 자신의 위선과 거짓이 보이기에... 이를 숨기기 위해 안셀모 주교를 비난하고 치셤 신부를 존경하는 것은 아닐까요?


스스로에게 물어 봅니다.

과연 나는 어디에 있는가? 하느님 나라 가까이에 있는가? 천국의 열쇠가 바로 나에게 있는가?

정말 그 어느 때보다도,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멘

 

                            ♡ 이찬홍 야고보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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