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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무감각 - 윤경재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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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whatayun] 쪽지 캡슐

2017-04-17 ㅣ No.111502



 

감각과 무감각

 

- 윤경재 요셉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며 서둘러 무덤을 떠나, 제자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달려갔다. “평안하냐?” 그들은 다가가 엎드려 그분의 발을 붙잡고 절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우리가 잠든 사이에 시체를 훔쳐 갔다.’ 하여라.(마태28,8~13)

 

 

 

 

오늘 복음서 내용은 극단적인 두 그룹의 등장인물들이 나타내는 행동과 감정을 대조적으로 보여줍니다. 한 그룹은 평소에 예수님과 친밀함을 유지하였으며 사랑의 감정을 온 몸으로 표현하였던 여자들이며, 다른 그룹은 수석사제와 원로들로 예수님과 스스로 원수가 되었던 남자들입니다. 남자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권위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의 모순된 행동을 합리화하였습니다.

 

어찌 보면 인간의 감성과 이성이 한 자리에서 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여자들은 하늘처럼 사랑하던 사람을 졸지에 잃은 슬픔에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안식일이 끝나자마자 무덤으로 달려가 못다 한 비통함을 조금이나마 달래보려고 하였습니다. 무덤에 도착하여 보니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났고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앉았습니다. 그 광경을 함께 목격한 경비병들은 두려워 떨다가 까무러쳤습니다. 까무러쳤다는 것은 두뇌가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판단을 중지하였다는 뜻입니다. 또 몸이 느낄 수 있는 감각의 강도를 벗어나 몸 안의 기운이 마비되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감정과 감각은 에너지 흐름이기에 몸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이와 달리 여자들은 두려워하면서도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즉 그녀들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였으며 매몰되거나 왜곡시키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감정 분류를 한의학에서는 칠정(喜怒憂思悲恐警)을 이야기하고 심리학자 톰킨스는 흥미, 기쁨, 놀라움, 걱정, 두려움, 분노, 수치심, 불쾌감, 혐오감 등 아홉 가지로 나눕니다. 감정의 분류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모두 같은 방법으로 표정이나 신체를 통하여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예수님께서 마주오시면서 여자들에게 말을 거십니다. 천사들은 인간들에게 극에서 극으로 흐르는 감정의 굴곡을 맛보게 하였으나 예수님은 달랐습니다. 첫 마디가 평안하냐?”입니다. 천사와 달리 상대방 걱정부터 하셨습니다. 온전한 인간성을 지니셨기에 마리아를 비롯한 여자들이 얼마나 놀랐으며 감정적 혼란 속에 있을지 잘 아셨습니다. 그래서 혼란에서 벗어나 평안을 유지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 뜻은 우리 자신 안에서 솟아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라는 강요가 아닙니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표현하되 정도에 맞게 통합하여 다음 단계로 나아가라는 뜻입니다.

 

심리학에서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 아이라는 이론이 있습니다. 어렸을 적에 부모나 양육자가 사랑으로 적절한 감정 표현을 허용하고 받아주어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어린아이의 감정을 무조건 억압하고 소외시키거나 폭력과 학대로 상처를 주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아이와 같은 미성숙한 장애가 남아 있게 된다는 이론입니다. 이 이론에 의하면 상당수 성인들이 어릴 적 심리적 상처로 고통 받으며 그 죄가 대물림한다고 합니다.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 아이상태에서 벗어나 온전한 인성을 회복하는 방법은 어릴 적 받은 그 상처를 직접 대면하고 어루만져줌으로서 치유된다고 합니다. 그 과정 중에 극도의 슬픔을 누구나 겪는다고 합니다. 그 슬픔을 수용하고 실컷 울고 나면 카타르시스가 생겨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다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주님께서 눈 뜨고 차마 바라볼 수 없는 처참한 모습으로 졸지에 십자가 나무에 못 박혀 처형당하셨으니 그 광경을 목도한 여인들 심정이야 오죽했겠습니까? 울고 싶어도 속 시원히 눈물마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은 주간 첫날 새벽에 자신들의 눈물로나마 예수님 시신을 닦아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속 시원히 울기라도 해야 원이 풀릴 것 같았을 것입니다. 눈물은 여인들의 순수한 보물이니까요.

 

예수님께서는 온전한 사랑의 구현이셨기에 인간의 감정을 억압하지 않으셨습니다. 당신께서도 늘 인간의 아픔과 감정에 공감(compassion)하셨습니다.

 

여인들과 달리 경비병들과 수석사제와 원로들로 대변하는 남자들은 이성과 논리로 솟아오르는 감정을 외면하고 차단하였습니다. 놀라운 광경을 목도한 경비병들은 아예 까무러쳤습니다. 나중에 그런 사실을 보고받고도 애써 외면하는 수석사제와 원로들은 거짓말로 진리를 가리려 하였습니다.

 

종교학자 루돌프 오토는 신앙은 인간이 신 앞에서 압도적인 신비를 체험하고 고백하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그 누멘(numen)적이고 압도적인 신비를 해석하려 드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느끼고 체험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경비병과 수석사제 그리고 원로들은 압도적 신비를 맞닥뜨렸어도 외면하였습니다.

 

느낌을 배제하는 것을 무감각(apathy)이라고 부릅니다. 무감각이 지나쳐 타인의 아픔과 고통을 외면하고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을 사이코패스 또는 소시오패스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사회 곳곳에 자리 잡고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극단의 행동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들은 종종 가공할 범죄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고위층에 진출한 사이코패스들은 교묘하게 자신들의 정체를 숨기고 살아가 사회에 더 큰 피해를 가합니다.

 

세기의 죄인 히틀러가 바로 대표적 소시오패스이며 상처받은 내면의 어린아이때문에 평생 정신적 고통을 받고 살았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자칫 신앙생활에 지나친 이성의 강조는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우를 범하게 됩니다.

 

신앙은 인간이 자기 인간성에 뿌리박고 있는 이 세상에서 초탈하여 신의 영역에 들어가려고 신화하는 것임과 동시에 신께서 초월적 영역으로부터 하강하여 은총을 선사하는 작용이 만나는 역동적인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 안에 지니고 있는 이성과 감성을 온전히 사용하며, 또 겸손하게 성령의 도움을 청하는 자세를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알렐루야!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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