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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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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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0-08-12 ㅣ No.5796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0년 8월 12일 연중 제19주간 목요일
 
 
 
 
 I say to you, not seven times
but seventy-seven times.
(Mt.18.22)
 
 
제1독서 에제키엘 12,1-12
복음 마태오 18,21ㅡ19,1
 
아메리카 인디언이 곰을 잡는 방법은 아주 독특하지요. 우선 커다란 돌덩이에 꿀을 바르고 나뭇가지에 밧줄로 매달아놓습니다. 이를 발견한 곰은 꿀을 먹기 위해 앞발을 들고 돌덩이를 잡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돌덩이가 곰의 앞발에 차여 앞으로 밀려가지요. 그리고 다시 뒤로 돌아오면서 곰을 때립니다. 이에 곰은 화가 나서 더 세게 돌덩이를 치고, 그럴수록 돌아오는 돌덩이는 더 큰 반동으로 곰을 후려칩니다. 결국 어떻게 될까요? 곰은 큰 반동으로 돌아오는 돌덩이에 맞아 나가떨어지게 되고 인디언은 아무런 힘도 쓰지 않고 곰을 잡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곰은 아마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 놈이 나를 때렸겠다. 그럼 나도 본때를 보여줘야지!’

자신의 욕구 충족만 생각하는 분노가 결국 자기 스스로를 죽이고 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이 정도 상처를 받았으니, 저 사람도 이 정도의 상처를 똑같이 받아야 해.’라면서 복수를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나에게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역시 똑같은 마음을 갖게 된다는 것이지요.

‘내가 잘못한 것이 있기는 하지만,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어?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지.’

폭력의 악순환을 끝내는 방법은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용서에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용서를 누구보다도 많이 체험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께 잘하기도 했지만, 대답을 잘못해서 야단을 맞기도 했고 더 나아가 주님을 배신한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를 용서해주시지요. 따라서 그는 어느 정도의 용서를 하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사실 당시의 유대인들은 하느님의 자비를 생각하며 1~3번 정도의 용서를 했다고 합니다. 하느님의 용서는 이 보다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던 베드로는 힘껏 잡아서 일곱 번을 말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의 대답은 이를 뛰어 넘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는 데에는 몇 번이라고 딱 집어서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자비한 종의 비유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상상으로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초월적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시지요.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거액의 빚(일만 탈렌트는 현재 우리나라 화폐 가치로 보면 4조 2천억 정도에 해당함)은 인간이 하느님한테서 받은 은혜가 헤아릴 수 없이 크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따라서 인간은 그 은혜의 60만분의 일(백 데나리온은 일만 탈렌트의 60만분의 일)이라도 이웃에게 베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향한 복수를 결심했었다면 내가 주님께 받은 은혜를 생각하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너희가 저마다 자기 형제를 마음으로부터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의 내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그와 같이 하실 것이다.”


모든 행복은 여유로운 아침 식사에 달려 있다(존 건서).




부족함과 행복함(‘좋은생각’ 중에서)

행복이란 만족한 삶이라고 했습니다. 자기가 만족할 수 있으면 무엇을 먹든, 무엇을 입든, 어떤 일을 하든 그건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의 불행은 결핍에 있기보다 부족하다고 느끼는 결핍감에서 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것도 다른 사람과 비교하면서 느끼는 상대적인 결핍감에서 비롯된다고 합니다.

첫째, 먹고 입고 살고 싶은 수준에서 조금 부족한 듯한 재산.

둘째, 모든 사람이 칭찬하기에 약간 부족한 용모.

셋째, 자신이 자만하고 있는 것에서 사람들이 절반 정도밖에 알아주지 않는 명예.

넷째, 겨루어서 한 사람에게는 이기고 두 사람에게 질 정도의 체력.

다섯째, 연설을 듣고도 청중의 절반은 손뼉을 치지 않는 말솜씨가 그것입니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의 조건들은 완벽하고 만족할 만한 상태에 있는 것들이 아닙니다. 조금은 부족하고 모자란 상태입니다. 재산이든 외모든 명예든 모자람이 없는 완벽한 상태에 있으면 바로 그것 때문에 근심과 불안과 긴장과 불행이 교차하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적당히 모자란 가운데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나날의 삶 속에 행복이 있다고 플라톤은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잘 모르고 있습니다. 늘 없는 것,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하며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행복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되 만족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행복은 물질적 풍요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만족할 줄 아는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을 그분들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Remembering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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