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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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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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08-21 ㅣ No.58126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20주간 토요일 - 인생은 겸손을 배우는 학교


 

사제의 직업병은 누구든 가르치려고 드는 것입니다. 아마도 정치인이건 경제인이건 법관이건 의사이건 그 사람들이 신자라면 다 사제로부터 무언가는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율법학자나 바리사이들처럼 가르치기만 하고 실제로는 교만한 삶을 살아갈 위험도 있습니다.

 

저의 동기 신부 어머니가 차 사고가 났다고 해서 집으로 곧장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그리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톨게이트에서 앞 차가 떠났는지 알고 돈을 찾으며 앞으로 나가다가 앞 차를 박은 것이었습니다. 저의 동기신부는 어머니에게 그렇게 한눈팔고 운전을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나무랐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 신부가 자전거를 타고 힘들게 페달을 밟다가 너무 지친 나머지 앞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서 있는 차를 받았습니다. 차의 후방 등 한 쪽이 다 깨졌습니다. 그런데 그 차 주인이 나와 넘어져있는 신부를 일으키더니 괜찮냐고 물어보고는 몸만 괜찮으면 됐으니 배상은 안 해도 된다고 친절하게 대해주더라는 것입니다.

그 친구는 자신이 어머니에게 한 행동과 대비되는 그 아저씨의 너그러움에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겸손해진다는 것은 오랜 수련이 필요한 것이지 한 순간에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특히나 사제와 같이 가르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더욱 겸손해지는 것이 힘든 것 같습니다.

 

저희 교구에 사제 서품식이 있었을 때였습니다. 사제서품식을 모 실내 체육관에서 했는데 제가 자리에 앉으려고 걸어가자 위의 신자 석에서 “신부님, 신부님!”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었습니다. 저는 ‘도대체 누굴 보고 저리 난리지?’라고 생각하고 그 곳을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서품식이 끝나고 제가 보좌를 하던 성당의 신자들이 저를 우연히 보고는 “왜 우리가 그렇게 소리를 질렀는데 쳐다보시지도 않았어요?”라고 약간 서운하다는 듯이 말을 하였습니다. 저는 “저한테 그러는지 몰랐어요... 이름을 부르던지, 신부가 몇 백 명인데... ^ ^” 하면서도 은근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그 분들이 저에게 환호해 주어서가 아니라 그 환호가 저에게 오는지 모를 정도로 겸손하다는 제 자신에게 대한 만족 때문이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동기 신부들과 차를 두 대로 나누어 타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이동하였습니다. 중간 쯤 와서 다른 차가 어디쯤 오는지 궁금하여 전화를 해 보았습니다. 위치를 들으니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차는 아반떼였고 두 동기 신부가 타고 있었습니다.

마침 우리 차 앞쪽에 보니 흰색 아반떼에 남자 둘이 타고 있고 모습이 틀림없는 우리 동기 신부들이었습니다. 그래도 더 신중하기 위해 얼굴을 자세히 보고는 그들이 확실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창문을 내리고 “야~”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앞을 보며 자기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못 들었는지 알고 또, “야~ 부르면 대답을 해야지!”라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은 기분 나쁘다는 표정으로 다시 뒤돌아보고는 조금 가다가 다른 길로 빠져버렸습니다. 순간 ‘저 차가 아닌가?’하는 불길한 예감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식당에 도착하여 동기 신부가 타고 온 차를 보니 그 차는 흰색이 아니라 회색이었습니다. 저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길거리에서 창문을 내리고 건달들처럼 소리를 지르고 손가락질을 하였던 것입니다. 분명히 얼굴까지 똑같았었는데 마치 귀신을 본 것처럼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리고는 잠시 자신이 겸손하다고 생각했던 것과는 반대로, 내가 판단하면 다 옳다고 생각해버리는 교만함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당시의 모세를 대신하는 사제들이나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이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영광을 추구한다고 질책하십니다. 그들이 했던 일들을 지금은 사제들이 도맡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높아지려고 하면 낮아지니 교만하지 말고 모든 사람 중에 가장 작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나 겸손해 져야 함을 잘 알면서도 그것이 잘 안 됩니다. 몸 안에 교만이 너무 깊이 박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들을 키우시는 방향은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들의 교만을 깨닫게 하여 겸손하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경우처럼 수많은 실수와 잘못을 반복하게 하시며 그들에게 참 겸손이 무엇인지 가르치십니다.

베드로는 결국 예수님을 배반하고 닭이 울 때마다 눈물을 흘려 얼굴에 눈물 흐르는 골이 생겼다고 합니다. 예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는 사람이 되려면 결국 모든 이들보다 가장 약하고 죄 많은 인간임을 고백하게 될 정도까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우리를 겸손하게 하시기 위해서 많은 일이 일어나도록 섭리하십니다. 왜냐하면 겸손 없이는 믿음도 사랑도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죄를 짓도록 허락하시는 것도 바로 겸손하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죄책감에 눌려서 사는 것보다는 그것을 더 겸손해지는 계기로 삼는다면 죄까지도 우리에게 유용한 것이 됩니다.

우리가 죽기까지 겸손의 학교에서 수학하는 학생들임을 잊지 말고 매 순간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겸손해지는 계기로 삼도록 해야겠습니다.

 

 
 
< 주여 당신 종이 여기 왔나이다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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