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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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먼저 이기적인 사람이 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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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1-04 ㅣ No.59729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31 주간 금요일 - 세상의 자녀와 빛의 자녀


 

저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하였습니다. 경영학을 전공하면 좋은 곳에 취직하고 나중에 사업을 하더라도 유리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처음 경제에 대해 배울 때는 잘 몰랐지만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사람을 잘 이용해야 된다는 것 등을 배울 때는 약간 거부감이 왔습니다. 다른 학과 학생들이 오죽하면 경영학과를 ‘사기과’로 부를 지경이었습니다. 사람 등쳐먹는 학문을 배운다는 것입니다. 물론 지나친 편견이긴 하지만 전혀 틀린 말도 아니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 사람을 이용한다...’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이 증가하는 만큼 세속에서 돈을 벌기 위한 학문엔 진력이 났습니다. 특별히 ‘사람을 이용한다.’는 것엔 더 이상 내가 계속 해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이용당해야 할 존재가 아니라 존중 받아야 할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에,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라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빛의 자녀가 되어 갈수록 세상에서 돈 벌어 부자 되는 것과는 멀어지나봅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장사를 하셨다면 아마 다 말아먹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다 퍼 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그래서 가장 세속적인 유다에게 재정 관리를 맡겼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서 집사가 아주 나쁜 사람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이라도 또 자기 자신을 위해 한 일일 지라도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에게 베풀면 다시 돌아온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한 일이면서도 결국 주인에게 칭찬받으면서 이야기가 끝나게 됩니다.

오늘 복음엔 부자 주인의 재산을 관리하는 종이 나오는데 주인에게 쫓겨나게 되자 주인의 돈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풉니다. 그렇게라도 공을 쌓아 놓아야 나중에 쫓겨났을 때 그들로부터 무엇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말 속 보이는 행동이지만 그는 주인으로부터도 일을 빨리 처리했다고 칭찬까지 받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으로 말씀하시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니 잘 들어라. 세속의 재물로라도 친구를 사귀어라. 그러면 재물이 없어질 때에 너희는 영접을 받으며 영원한 집으로 들어 갈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시며 자신을 위해 욕심내서 지니고만 있지 말고 그것을 약삭빠른 종처럼 이용해서라도 사랑을 실천하는 데 쓰라는 것입니다.

물론 남모르게 보답 받지 못할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 가장 좋기는 하지만, 그것이 힘들다면 적어도 보답 받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라도 사용하라는 뜻입니다.

 

얼마 전에 'W'라는 프로에서 아프리카 어느 곳의 물이 오염되어 동물들의 변과 죽은 동물들이 썩어가는 웅덩이의 물을 마시고 많은 사람들이 기생충에 의해 사망하거나 병이 들어 고생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어떤 분은 그런 곳의 한 가족이 한 달 동안 정수할 수 있는 정수약이 한 달에 3000원이면 된다고 하셨습니다.

 

또 그 프로그램에서 이런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전 세계 기아 인구 8억 5천만 명, 기아로 하루 10만 명 사망, 오염된 식수를 마시는 인구 11억 명, 5살 전에 굶어 죽는 어린이 한해 6백만 명, 어린이가 아닌 노동자로 사는 아이들 2억 5천만 명, 30초마다 말라리아로 어린이 한 명 사망,

500원은 방글라데시 어린이의 한 끼, 아프리카 한 가족의 하루 식사, 1명의 아프리카 어린이를 살리는 말라리아 예방 주사, 아프리카 어린이의 6명의 실명을 막을 수 있는 돈, 그리고 1,500원은케냐 어린이 한 명의 한 달 학비. 지금, 누군가에게 기적을 선물할 수 있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쉰들러 리스트’라는 영화를 아실 것입니다.

독일군 점령지인 폴란드의 크라코프. 기회주의자인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리암니슨 분)는 폴란드계 유태인이 경영하는 그릇 공장을 인수하러 도착합니다. 그 공장을 인수하기 위해 나치 당원이 되어 SS요원들에게 여자, 술, 담배 등을 뇌물로 바치며 갖은 수단을 동원하게 됩니다. 인건비 한 푼 안들이고 유태인을 이용하면서 한편으로는 유태인 회계사인 스턴(Itzhak Stern: 벤 킹슬리 분)과 가까워지게 됩니다. 스턴은 쉰들러의 이기주의와 양심을 흔들어 놓게 됩니다. 쉰들러도 자신의 눈을 통해 나치의 살인 행위들을 직시하게 됩니다.

그러한 쉰들러의 현실 직시는 마침내 그의 양심을 움직이고 유태인을 강제 노동 수용소로부터 구해내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문제는 이들 일명 '쉰들러의 유태인들'을 어떻게 구해낼 것인가 였는데 노동수용소 장교에게 뇌물을 주고 구해내기로 계획을 잡습니다. 그리고는 그들을 독일군 점령지인 크라코프로부터 탈출시켜 쉰들러의 고향으로 옮길 계획을 하고, 스턴과 함께 유태인 명단을 만들게 됩니다. 그러한 모든 계획은 완벽하게 이루어지고 마침내 1,100명의 유태인을 폴란드로부터 구해내게 됩니다.

쉰들러는 자신의 재산을 바쳐 그렇게 많은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해냈지만 결국 죽을 때까지 사업 실패만 하다 돈도 제대로 만져보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러나 그로 인해 살았던 많은 유태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그의 무덤에 찾아와 꽃을 놓으며 감사의 표시를 합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유태인들을 빼내어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갈 때 그들을 보면서 자신의 차와 시계와 반지들을 팔았으면 수십 명은 더 살렸을 것이라고 후회하는 장면입니다. 이미 자신의 재산을 모두 바쳤지만 완전히 바치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부정하게 돈을 모았건, 또는 부정한 방법으로 사람의 생명을 구했건 하늘나라에는 좋은 일을 한 것은 잊히지 않고 남아있을 것입니다. 그는 세상의 자녀였다가 재물을 이웃을 위해 사용함으로써 결국엔 빛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만약 너희가 세속의 재물을 다루는데도 충실하지 못한다면 누가 참된 재물을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먼저 이기적인 사람이 돼라

 

우리가 빠지기 쉬운 위선 중에 이런 것도 있습니다. 즉, 자신은 자신의 행복도 포기한 채 상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는데, 알고 보니 상대는 자신을 그만큼 좋아하고 있지 않았을 때 큰 절망감을 느낍니다. 즉, 눈 떠서 눈 감을 때까지 오로지 배우자만을 위해 살았는데, 상대가 자신을 향해 그에 합당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배신감을 느끼고 크게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만 완전히 이타적인 삶을 살았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그만큼 이기적인데다 위선자입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정말 사랑하셨고 유다의 구원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그 때 그에게 큰 배신감이나 절망감을 느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사랑의 가장 밑바탕에는 우선 자신을 위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유다를 사랑하면서 그것으로 충분한 보상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당당히, “어서 가서 네가 해야 할 일을 하여라.”하시며 떠나보내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을 했는데 배신을 당했다고 크게 절망하는 사람은 온전한 사랑을 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자신도 좋으니까 사랑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이 이타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자신만 온전히 모든 것을 준 것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는 관계는 없습니다. ‘받아준다’하는 것처럼, 받는 것도 주는 것이고, 그래서 주면서도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이기적이다.’라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만은 그렇지 않은 척 행동하지 말아야합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은 사랑이어서, 우리 인간을 위해 존재하신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도 이기적이어서 당신 자신들을 위해 존재하십니다. 어떤 사랑도 먼저 이기적인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도 결국 당신이 행복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지, 당신의 행복은 아랑곳 하지도 않고 오로지 인간의 구원만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다.’하실 때 가장 행복하셨습니다. 즉, 당신 행복을 위해서도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주인의 돈을 유용하여 친구들을 만드는 약삭빠른 종의 비유를 들어주십니다. 예수님께서 돈을 유용하라고 이런 비유를 들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만 돈을 꽁꽁 쥐고 있는 것보다는 이기적인 방법으로라도 친구를 사귀기 시작하라는 뜻입니다. 비록 부정한 행위이고 이기적인 행위이지만, 결국 남에게 도움이 되는 행위를 하였으니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기적인 행위지만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 이기적이기 때문에 모든 관계도 그 바탕에서 맺어집니다. 돈만 요구하는 행려자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습니까? 능력 없고 볼품없는 상대를 배우자로 맞아들일 수 있습니까? 다 나에게 좋고 유익하니 친구로 사귀고 그러다 결혼도 하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관계가 오로지 상대만을 위해 자신의 전부를 희생하는 관계였다고 말하는 사람이 오히려 위선자입니다. 어쨌건 자신도 좋으니 그런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이렇게 시작하여 마더 데레사나 이태석 신부님처럼 사랑을 키워나가는 것입니다. 이 분들도 분명히 당신들이 사랑을 베푼 사람들에게 실제적으로는 받은 것이 더 많았다고 말할 것입니다. 이 분들은 자신을 위해서도 사랑을 한 것을 알기 때문에 위선자가 아닙니다. 혼자만 베풀고 아무 것도 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위선자입니다.

 

저도 저의 행복을 위해 사제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지, 처음부터 하느님과 이웃을 위해 제 온 자신을 희생하기 위해 신학교에 들어오기로 결심한 것은 아닙니다. 나의 행복이 하느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행복하게 하는 것에 있음을 깨닫고 저절로 그런 방향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생을 마칠 때 하느님이 계시지 않더라도 저는 제 살아온 삶에 만족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기적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이 계시면 더 기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이기심 때문에 주님을 더 사랑하고 이웃을 더 사랑하기 위한 노력을 끊임없이 해왔기 때문입니다.

 

                                    < 사랑한다는 말은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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