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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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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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1-16 ㅣ No.60022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연중 제 33 주간 수요일 - 사랑, 삶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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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리아라고 하는 저의 왕팬 할머니에게 가끔 전화가 옵니다. 그 할머니는 저의 사진을 보면서 매일 기도하고 사진 속의 저와 이야기를 하실 정도로 저를 좋아하십니다.

전에 세례 받으신 지가 얼마 안 되시는지라 저에게 기도하는 방법을 물으셔서 저는 성체 앞에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앉아서 예수님을 만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다리가 좋지 않아 매일 성당에 가는 것은 불가능하였습니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성경을 필사해보면 어떻겠느냐고 했습니다.

그러자 제가 유학 나올 때 2년 만에 들어오라고 하시면서 그 동안 당신은 성경필사를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2년 만에 끝내고 돌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는 약속대로 1년 8개월 만에 신구약 성경을 모두 필사하여 상을 받았습니다.

다리가 아프셔서 제대로 걷지도 오래 앉아있지도 못하시는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쓰셨는지 신기하기만 합니다. 본당 신부님도 건강 생각하셔서 그만 쓰실 것을 권유하였지만 그 할머니는 끝까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쓰신 것입니다. 저도 성경 필사를 조금 해 보아서 젊은 사람에게도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압니다. 그런데 갓 세례 받으신 팔순이 다 되시고 건강도 안 좋으신 분이 일 년 반 만에 신구약을 완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은 그렇게 빨리 쓸 수 있었던 이유가 저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는 그 분이 성경필사를 하도록 권유한 것 밖에는 해 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저 때문에 쓸 수 있었다고 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다른 사람들 칭찬 다 받았으니까 이제 신부님도 칭찬해 주세요!”

할머니는 저에게 칭찬 한 번 들으려고 그렇게 쓰신 것입니다. 저는 참 대단하시다고 칭찬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합니다.

‘사랑이 곧 힘이구나!’

 

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종들에게 한 미나씩을 맡기고 떠납니다. 다른 종들은 열심히 일을 하여 좋은 결과를 내었는데 한 종만이 그것을 묻어놓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 종은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벌려 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이렇게 변명합니다.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종은 주인을 냉혹하고 무서운 사람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 그런 주인을 좋아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주인을 위해 자신이 고생하며 재산을 늘려 줄 이유를 찾지 못한 것입니다.

사랑하지 않으니 무기력하고 게을러지게 되는 것입니다. 열심히 일 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로사리아 할머니가 저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 성경필사를 했다고는 하지만 그 노력의 결과는 다 자신이 갖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저를 사랑하는 힘으로 그 일을 이루어 낸 것만을 보면서 기뻐합니다. 제가 무엇을 받아서 기쁜 것이 아니라 그만큼 저로부터 힘을 얻어서 큰일을 이루어 낸 것을 보는 것만으로 기쁜 것입니다. 주님과 저를 사랑했다는 증거는 그만큼 부지런하게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무엇을 얻으려고 우리를 창조하시고 살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좋은 열매들을 맺으면서 살아가는 것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분을 사랑한다면 부지런히 그 분을 위해 일을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끔은 ‘왜 이렇게 고생하며 살아야하는가?’ 하는 의문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 분이 원하시니까.’라고 대답하며 다시 일을 시작합니다. 살아가는 힘은 갖고 싶다고 갖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을 사랑함으로써 저절로 얻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무기력을 없애고 활기차게 사는 방법은 그 분을 더 사랑하는 길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힘이 날 것입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산다면 우울증이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구원을 주신 하느님을 위해서 산다면 기쁨과 힘이 넘칠 것이고 힘든 일도 거뜬히 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는 사람은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는다고 하였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종들은 주인을 사랑하는 만큼 열매를 맺었고 주인은 마지막 날에 그 사랑의 정도에 따라 보상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마지막도 똑 같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매일매일 주님을 더 사랑하기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 외에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네 입에서 나온 말로 너를 심판한다.”

 

제가 가장 듣기 행복했던 칭찬은, “신부님은 예수님을 닮았어요.”입니다. 그리고 그것만큼 기분 좋은 소리는 “신부님은 참 겸손하세요.”였습니다. 물론 이런 소리를 자주 들을 만큼 잘 살지는 못해도 그런 판단을 내려주시는 분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그런 말을 해 주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 그렇게 행동하려 노력합니다.

이와 반대로 저를 판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교만덩어리”라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하는 모든 것은 인기를 위해 한다고 생각하며 모든 것을 안 좋게 판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주신 계명대로 원수까지도 사랑하려고 노력하지만, 오는 대로 돌려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한 사람에 대한 판단도 이렇게 의견이 천차만별입니다. 그런데 개중에는 하느님을 판단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내가 예수님이라면 십자가에 달리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사람들을 왜 가만히 놔둬요? 하느님이라면 죄 없는 사람을 조롱하고 죽이려 하는 사람들을 그 자리에서 무섭게 심판했을 거예요. 그래야 사람들이 믿죠. 저렇게 힘없이 십자가에 달려있는 사람을 어떻게 하느님으로 믿을 수 있겠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오히려 저라면 그렇게 인간적으로 보복하는 것이 하느님이라면 그런 분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인 것입니다. 권능으로 심판하고 벌을 주는 것은 인간이 만든 하느님이고 오직 하느님만이 인간의 상식을 넘어설 수 있는 분입니다.”

하느님이 그래야 하는 분이라고 생각하면서,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합니다. 하느님을 그렇게 무서운 분으로 판단하면서 자신이 그만큼 자비가 없는 사람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한 사람이 똑 같이 행동해도 사람마다 각자 다르게 판단하는 것은 그만큼 각자의 모습을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은 자신이 쓴 안경대로 사람을 판단하기에 실제로는 남을 판단하면서 자신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판단하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판단 받게 되어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가 옆집 아주머니를 흉보고 있었습니다. 빨래를 해도 어쩌면 저렇게 깨끗이 하지 못하냐는 것입니다. 그 흉을 듣고 있던 사람이 말합니다.

“저 얼룩은 이집 유리창이 더러워서 그렇게 보이는 건데요?”

심판을 이기는 방법은 자비뿐입니다. 내가 심판하지 말아야 나도 심판받지 않습니다.

오늘 열 명의 종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주인님에게 심판받은 단 한 명의 종은 주인을 “냉혹한 분”으로 판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은 종이 자신을 심판한 대로 “냉혹하게 심판”합니다.

아담과 하와도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판단하고 그 목소리를 듣고 나무 뒤로 숨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죄를 짓기 이전의 하느님은 아담과 함께 거닐며 다정스럽게 이야기 하던 분이었습니다. 죄를 짓고 나니 그런 하느님이 무서운 심판자처럼 보이게 된 것입니다. 하느님은 같은 분이시지만 인간이 그렇게 변해버린 것입니다. 하느님을 자상한 분이 아니라 심판자로 여기게 되는 것은 인간 안에 있는 법정인 ‘양심’ 때문입니다. 양심이 자신을 죄인으로 판결했기 때문에 하느님을 더 이상 사랑스러운 분이 아닌 냉혹한 심판관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면 그 두려운 심판을 받게 됩니다.

두려움은 사랑의 반대말입니다. 부모님이 두려워지는 이유는 아이가 무언가 잘못을 했기 때문이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무언가 죄를 짓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냉혹한 사람이 되어버렸기에 사람들도 그렇게 판단하여 사람을 두려워하게 되고 담을 쌓고 자신 안에 갇혀 살게 됩니다.

주인님은 한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서 그것을 빼앗아 열 미나 가진 사람에게 줍니다. 열 미나 가진 사람은 주인님을 그만큼 자상한 사람으로 여겼기에 그 보답을 받아 가진 것에 더 얹어 받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그만큼 좋게 판단하면 자신도 그만큼 좋게 판단 받고, 하느님을 사랑이라고 여기면 나에게 오는 것은 사랑뿐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이 되시어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주실 만큼 사랑이 풍부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절대로 하느님을 무서운 분으로 여기게 되지 않도록 주의합시다. 내가 믿는 그 모습으로 그 분은 나에게 그렇게 대하십니다. 오늘은 항상 우리 안에서 함께 생활하시는 그분께 마치 애인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하느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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