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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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예수님의 수난은 모든 이를 위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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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0-12-07 ㅣ No.60492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대림 2 주간 화요일 - 한 사람의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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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저의 동기 신부가 소포를 보내왔기에 감사한다고 인사하기 위해 전화를 했습니다. 요즘 성탄 판공 때문에 좀 바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걱정을 털어놓았는데 요즘 판공자수가 작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하였습니다.

요즘 사제들이 판공성사 율에 그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교구에 그 숫자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은 컴퓨터 통계프로그램으로 한 해의 본당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숫자화 하여 지난해와 비교하고 그래서 반성과 함께 새로운 목표와 전략을 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숫자로 통계 내다보니 부작용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고 믿고 싶지만 어떤 신부님들은 숫자를 조금씩 올려서 보고하기도 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 숫자로 사제의 사목이 평가받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그 유명한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의 비유가 나옵니다. 목자는 바로 예수님이고 예수님을 본받아 사목해야 하는 사제들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백 명의 양들을 목적지까지 이끕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보니 한 마리가 사라졌습니다.

그래도 예수님의 사목은 99%의 성공으로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그 숫자에 만족하실까요? 예수님은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사람을 하나의 숫자로 보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많은 무리 가운데 하나의 숫자로만 취급당한다면 얼마나 비참한 일이겠습니까?

인간은 부족하면 다른 것으로 채워 넣는 한 숫자에 불과하지만은 않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온 우주의 가치보다도 큽니다.

만약 어떤 사제가 사목을 열심히 해서 미사 참례 율을 많이 높였다고 합시다. 그러나 자신의 가정엔 소홀해져서 부모님이 냉담하신 채 돌아가셨다고 합시다. 그 사제가 과연 ‘그래도 잃은 숫자보단 얻은 숫자가 많으니 난 기쁘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습니다. 많은 사람을 얻은 것처럼 보여도 가장 소중한 사람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가 바로 이것인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단 한 사람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하는 것.

예수님께서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고는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만 세상에 사셨고 또 아주 자그만 지역에서만 활동하셨으며 친하게 지낸 사람들은 불과 몇 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이 협소한 인간관계를 보면서 과연 시공을 초월하여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셨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께서 관계를 맺은 소수의 사람들과 시공을 초월하는 관계를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사랑하시기 위해 모두 똑같이 만나시고 똑같이 대해주신 것이 아니라 단 한 사람이라도 당신의 온 에너지를 다하여 사랑하시고 관계 맺으셨습니다. 한 사람을 온전하게 사랑하게 될 때 비로소 온 인류를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을 숫자로 보는 그런 관념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것은 제가 볼 때 비가톨릭적입니다. 물론 실제사목에서 유리하게 쓰일 수는 있지만 사목자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위를 기울이기보다 숫자에만 집착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왜 한꺼번에 많은 사람을 만드시지 않고 아담, 한 사람만 만드셨을까요? 한 인간과 온전한 관계를 맺기를 원해서가 아닐까요? 혹은 아담에게서 왜 많은 여자를 만들지 않고 하와 한 명만 더 만드셨을까요? 아담이 한 여인인 하와와 온전한 관계를 맺기를 원해서가 아니셨을까요?

사랑해야 하는 한 사람부터 온전히 사랑하도록 합시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만큼 나 하나를 사랑하지 않으셨다면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랑’을 전부로 삼는 신앙을 지니고 있으면서 실제로는 구체적으로는 한 명도 온전히 사랑하지 못할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우선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부터 더 사랑하려고 노력합시다. 그렇게 서로 사랑하는 것을 사람들이 본다면 그것을 통하여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임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모든 이를 위한 것

 

사랑하면 함께 있고 싶고, 미워하면 꼴도 보기 싫은 것이 너무도 당연한 마음입니다. 그래서 결혼해서 함께 사는 배우자가 계속 사랑스러우면 천국을 사는 것이고, 만약 미워지기 시작하면 천국이 지옥으로 변하게 됩니다. 미운 사람과 어쩔 수 없이 한 집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지옥과 같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미워하면 천국에 갈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지옥에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 고레띠 성녀는 자신을 범하려다 맘대로 되지 않자 자신을 수십 차례나 칼로 찌른 청년을 숨이 마지막 넘어가기 전 온 힘을 다해 용서합니다. 용서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온 몸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그 극도의 고통 속에서도 자신을 찌른 그 사람과 함께 천국에서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죄짓게 하려고 하고, 헤아릴 수 없는 고통을 주고, 피어나지도 못한 채 죽게 만든 사람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감탄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리고 성녀의 바람대로 그 청년도 실제로 회개하여 지금 천국에서 함께 살고 있습니다.

성인과 악인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원수까지도 행복해지기를 원하고, 불행한 사람은 행복한 사람들까지도 불행해지기를 원합니다. 천사가 인간을 하늘나라 행복에 함께 하기를 원하는 이유이고, 악마가 갖은 수를 써서 인간을 지옥에 떨어뜨리려는 마음이 이것입니다.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천사의 마음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길을 잃지 않은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길을 잃었다가 다시 찾은 한 마리 양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즉, 하느님의 뜻은 단 한 사람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는 것입니다.

개신교의 어떤 신학자들은 예정설을 이야기하며, 구원받을 사람이 이미 정해져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오늘 복음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생각입니다. 어떻게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창조하시면서 구원될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할 사람을 나눠놓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열 손가락이 있는데 아홉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몇 년 전에 친구를 시켜 길가는 어머니를 차로 쳐서 죽이고 보험을 타내려고 했던 폐륜아가 경찰에 구속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어머니는 돌아가시지 않았고, 휠체어를 타고 경찰서에 와서 아들을 잘못 키운 자신에게 대신 벌을 주고 아들은 다시 기회를 달라고 했던 뉴스가 있었습니다.

한 어머니도 자신을 해하려 한 아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면, 하느님께서야 더 큰 사랑으로 우리 모든 인간이 구원받기를 희망하시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도 아이를 낳기 위해 고통을 당하셨지만, 그 영혼까지도 만들어 넣어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어떤 누구도 지옥에 떨어질 것을 정해놓고 창조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그리스도는 구원받을 몇 명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해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 분의 피 안에서 씻기지 않을 만큼 큰 죄는 없습니다. 구원받을 선택된 몇 명만을 위해 피를 흘리셨다고 말한다면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제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어떤 누구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단 한 방울로도 온 세상을 구원할 힘이 있고 그 구원을 원치 않는 한 사람 한 사람 때문에 더 고통스러워하십니다.

그런데 만약 우리 마음속에 ‘저 사람은 구원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분명 이는 하느님의 뜻과는 다른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내가 제일 미워하는 사람까지도 다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원수를 위해서까지 기도를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이런 마음이라면 바로 이 세상이 천국이 될 것입니다.

 

 

 

 
< 하느님 당신은 나의 모든 것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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