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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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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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1-04-17 ㅣ No.63742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1년 4월 17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Drink from it, all of you,
for this is my blood of the covenant,
which will be shed on behalf of many
for the forgiveness of sins.
(Mt.26,27-28) 
 
제1독서 이사야 50,4-7
제2독서 필리피 2,6-11
복음 마태오 26,14ㅡ27,66

수십 년 전, 알래스카의 자연보호 지역에 사슴과 늑대가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정부 당국은 이렇게 함께 살다가는 약한 사슴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지요. 그래서 사슴의 천적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늑대를 모조리 없앰으로 인해 사슴의 안전을 지켜주기로 계획했고, 실제로 실행했습니다. 그 후 늑대는 완전히 사라졌고, 10년간 4,000여 마리의 사슴이 10배가 넘는 42,000마리로 증가되었습니다.

이렇게 사슴의 안전을 지켜주면서 편안하게 살 수 있도록 해주자, 예기치 못한 결과가 찾아왔습니다. 글쎄 늑대의 위협이 없자 사슴은 점점 게을러졌고, 운동량의 감소로 인해 체질이 약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 차츰 그 수가 줄어들어 오히려 처음의 숫자인 4,000마리 이하가 된 것이지요.

정부 당국은 다시 사슴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도 허사였습니다. 바로 그때 어떤 동물학자가 없앴던 늑대를 투입하라고 권고했고, 다시 투입하자 그때부터 사슴들은 다시 숫자가 늘기 시작했습니다. 사슴들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늑대에 희생되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뛰고 또 뛰어다닌 것이지요. 사슴은 건강해졌고 그래서 그 숫자도 늘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사슴과 늑대가 함께 있으면, 힘이 약한 사슴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러나 이 사슴을 오히려 건강하게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오히려 천적인 늑대였습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시련 역시도 이러한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통과 시련. 정말로 감당하기 힘든 것은 물론이고, 그래서 제발 내 곁에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 고통과 시련이 오히려 내 자신을 더욱 더 성장시켰고 지금의 내 자신이 있도록 만듦으로 인해, 어쩌면 오히려 고마움의 대상이라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고통과 시련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거부하기 보다는, 이를 통해 주님의 뜻을 찾고 주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더욱 더 노력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은 주님 수난 성지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파스카 신비를 완성하시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주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감으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지를 이미 다 알고 계셨지요. 즉, 십자가의 고통과 죽음을 겪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지니신 당신의 몸으로 견디어내기에는 너무나도 큰 고통과 시련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십자가를 피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하느님 아버지의 뜻이 있었고, 이 아버지의 뜻을 철저히 따라야 하는 것이 당신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힘들어도 불평불만을 먼저 던지는 우리가 아니었을까요? 이러한 불평불만이 터져 나올 때 십자가상에 계신 예수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불평불만을 던질 수 있는 상황에서도 하느님의 뜻이 먼저였던 예수님의 모습을 말입니다. 예수님처럼 철저히 하느님 뜻에 따를 때, 우리 역시 부활의 큰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간만큼 귀중한 것은 없다. 또한 시간만큼 낭비하기 쉬운 것도 없다.(윌리엄 펜)




시계침이 없는 시계





올 초 겨울, 갑곶성지에 방문했다가 보게 된 시계입니다. 아마도 지금 안식년을 보내고 계신 김종성 신부님의 작품(?)이 아닐까 싶은데요. 시계침이 없는 시계. 전혀 쓸모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그 위에 이러한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시계침을 뽑았습니다. 돌이킬 수 없다면 받아들이고 다시 출발할 수 있게 해주소서.”

시간에 대해서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이 아닐까 싶더군요. 시간을 되돌릴 수 없어서 시계침을 뽑아버리는 간절함. 그러나 이렇게 시계침을 뽑아도 시간은 계속해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돌이킬 수 없기에 받아들이고 다시 출발할 힘을 달라고 말합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해 계속해서 연연하는 우리들. 지금 이 순간. 곧바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돌이킬수없는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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