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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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으로 시집간 아들 /최강 스테파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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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미숙 [michelleoh] 쪽지 캡슐

2012-01-25 ㅣ No.70734




살림을 하다 보니 이래저래 신경 쓰이는 것이 한 둘이 아니다. 워낙 냄새와 소음에 민감한 편이라서 청소나 빨래는 어느 프로 주부 못지않게 잘 해 낼 자신이 있는데 매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참으로 고된 일이다. 평상시 주변 사람들로부터 음식 솜씨가 제법 좋다는 소리도 자주 들었었고 또 내 스스로도 주방에 들어가 음식 만드는 것을 재밌어 하는 편이라서 이렇게 음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게 될 줄은 몰랐다. 소풍가서 한 두 끼 해 먹는 것하고 매일 매일 끼니를 해결하는 일하고는 차원이 다른 이야기라는 것도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음식 때문에 어려운 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첫 번째는 매 끼니를 해결할 메뉴를 고르는 일이다. 아침은 빵 한 조각과 커피 한 잔으로 해결한다지만 점심과 저녁 매일 두 끼를 무슨 음식을 해 먹을까 결정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바구니를 들고 시장을 몇 바퀴 돌아봐도 내 눈에 들어오는 식재료는 맨 날 똑같다. 쇠고기 한 덩어리, 대파, 그리고 계란을 사고 나면 더 살만 한 게 없어서 막막해 진다. 얼마 전 요리를 다 해 놓고 냄새 때문에 도저히 먹지 못하고 버린 뒤로 돼지고기로는 잘 눈길이 가지 않는다. 또 그 밖에 중국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코너의 식재료들은 아직 내게 익숙한 것들이 아니라서 선뜻 사지를 못한다. 이렇게 빤한 식재료들로 준비할 수 있는 메뉴 중에 최고는 장조림이다. 밥을 물에 말아서 장조림 반찬에 먹으면 차려서 설거지까지 마치는데 오 분 밖에 안 걸린다.

음식 때문에 어려운 일의 두 번째는 먹고 남은 음식을 해결하는 일이다. 혼자 사는 살림이라서 음식을 할 때마다 일부러 조금씩 준비를 한다고 하는 데도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남기는 음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면 음식을 보관할 살림도구도 빤한 상황에서 한 없이 냉장고에 쌓아둘 수도 없고 결국 일주일에 한 번쯤은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짬뽕 한 그릇을 먹게 된다. 이런 저런 남은 음식들을 불린 쌀과 함께 냄비에 쏟아 붓고 한참을 끓이면 가끔씩 티비에서나 봤던 전쟁 중의 ‘꿀꿀이죽’과 같은 짬뽕 한 그릇이 되는데 그 맛이 썩 먹을 만하다. 지극히 창조적인 ‘최강식 짬뽕’을 대할 때마다 내 머릿속에는 어머니가 떠오른다.

내가 어렸을 적에 명절이 지나고 나면 어머니께서는 호박전이며 나물 그리고 생선구이와 같은 명절 음식들을 섞어서 찌개를 끓여주시곤 하셨는데 나는 그 음식을 몹시도 싫어했었다. 어머니의 그 명절식 잡탕 요리가 나올 때면 나는 그 음식에 젓가락 한 번 대지 않음은 물론 아예 그 식탁에서 손을 털고 일어나서 내 방으로 건너와 버렸다. 그럴 때마다 어머니는 ‘너는 참 까다롭기도 하다. 맛있기만 하구만’하시면서 밥을 안 먹고 일어나는 나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새로운 밥상을 차려서 내 방까지 날라 오시곤 하셨는데 심술이 꽉 차 있던 나는 그 새롭게 차려오신 밥상도 못 본채하고 안 먹기 일쑤였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나도 참 못된 놈이다.

그렇게도 다른 음식끼리 섞이는 맛을 싫어하는 내가 비록 혼자이기는 하지만 직접 살림을 꾸려 나가는 요즘에는 별 수 없이 남은 음식을 모아서 ‘최강식 짬뽕’ 요리를 해 먹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영락없이 남은 음식을 버려야만 한다. 하지만 음식을 버리는 일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림에 죽어가고 있는 어린 생명들을 생각하자면 너무도 큰 죄악을 저지르는 일이라서 차마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니 옛날 어르신들이 하시던 말씀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 옛날 어르신들이 말씀하시기를 ‘속 못 차리는 딸들은 시집가서 자기 하고 똑같이 속 못 차리는 딸을 낳아서 키워봐야 친정어머니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된다’고 하셨는데 내가 영락없이 그 꼴이다. 어머니가 계시는 고국을 떠나 이 곳 중국으로 시집와서 직접 살림을 차려놓고 살아보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의 밥상이 그립다. 이런 저런 음식을 다 모아서 짬뽕을 끓여놓고 딱 그 밥상머리 맡에 앉으면 내가 그렇게도 싫어했던 어머니의 명절식 잡탕 요리가 더욱 그립다. 지금이라면 어머니 보시는 앞이니 어머니의 정성을 봐서라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 때는 왜 그리 못되게 굴었을까. 중국으로 시집와서 이래저래 참 철들어가는 느낌이다.

이미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철없던 시절의 잘못에 대해 어머니께 용서도 청할 겸, 중국으로 시집 온 아들이 이렇게 철들어 간다는 것도 알려드릴 겸 오랜만에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살림 하다보니까 옛날에 어머니께서 왜 자꾸 여러 가지 다른 음식을 섞어서 찌개를 끓여주셨는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네요. 어머니께 그리도 못되게 굴었던 이 못난 아들을 용서해 주세요.”
“호호호! 이제 시작이시라네. 혼자지만 그래도 직접 살림이라고 꾸려가다 보면 앞으로도 이 어미에게 용서 청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닐 텐데 우리 신부님 꽤나 바쁘시겠네. 용서는 언제라도 해 드릴 테니 앞으로 또 살림하다가 깨닫는 점이 생기거든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게 잘 새겨두시오. 부엌 살림하는 일이 그리 녹록치는 않을 거요. 언젠가 꼭 한 번 시켜보고 싶었는데 하느님께서 내 마음을 어찌 이리 쏙 알아주셨을까! 호호호!”

남들이 하는 일이 내 마음에 들기에는 너무나 부족함이 많게만 보인다. 하지만 그 말을 뒤집어 보면 내가 하는 일도 다른 이들의 성에 차기에는 역시 부족함이 많게만 보인다는 말이 된다. 정확히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보지 않고 섣불리 상대방이 하는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많은 말로 떠들며 판단하는 것은 대단히 가벼운 행동이다. 아직도 몸 안의 열기가 펄펄 끓는 젊은 나이의 청소년이라면 모를까, 짧지 않은 세월 동안 세상 살아가는 일을 체험한 장년의 어른들이 여전히 남의 일에 대해 경솔한 언행으로 판단하는 일을 일삼는다면 이는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것은 세상에 일어나는 일 하나하나에 일희일비一喜一悲 하지 않고 좀 더 오랜 시간을 묵묵하게 지켜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다. 내 눈 앞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주의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면서도 마음은 자신의 지난 시간과 인연을 돌아다보며 스스로를 갈고 닦는 일에 더욱 정진하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힘이 있는 어른이다. 그런 어른들만이 인생의 후배들에게 무엇인가 값나가는 교훈들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다.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을 아직 깊고 넓게 키우지 못한 어린 아이들은 자기 입맛대로만 해달라고 울고 불며 어리광을 부린다. 아직 눈을 뜨지 못한 그들이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런 어린 아이들이 나이가 들어서 시집, 장가를 가고 아이를 낳아 기르다보면 그제야 제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게 된다. 제가 어릴 적 했던 유치한 행동을 똑같이 하는 아이들을 보고 키우면서 철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어린 아이 적의 유치한 행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여전히 세상 전체가 자기 입 맛 대로만 돌아가야만 한다고 우기는 어른들이 너무나 많다는 데 있다.

인생과 인격의 깊이가 느껴지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행복하다. 누구나 자신을 만나는 사람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타인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우리가 타인을 개조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타인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도 자기 안에서부터 시작된다. 결국 모든 일은 자기 마음의 변화로부터 시작되고 완성된다. 중국으로 시집와서 혼자 살림하면서 살아가다보니 고향에 계신 어머니 마음도 조금씩 헤아려지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 마음도 더 깊이 깨달아 가는 것 같아서 참 행복하다. 이 행복을 잘 나누고 살고 싶다.





한국외방선교회 최강 스테파노신부

http://cafe.daum.net/frchoi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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