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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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 제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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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12-20 ㅣ No.116944

하느님께서 부족한 저를 도구로 써 주시어 몇 군데 대림특강을 다녀왔습니다. 이번 대림특강의 주제는 하느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사랑하시는지 살펴보았고, 저는 그에 합당하게 살았는지 돌아보았습니다. 세상에서는 재물, 권력,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특별한 대접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이 특별한 대접을 받습니다.

 

첫째는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목자의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이 우리에 잘 있는 것도 좋아하시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것을 더 좋아하십니다. 하느님께서 회개하는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루가복음 15장의 돌아온 아들의 이야기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죄를 지은 여인의 죄를 묻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죄를 용서해 주셨고,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베드로와 유다는 똑같이 예수님을 배반하였지만 결과는 달랐습니다.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고, 베드로 사도는 회개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회개한 베드로를 내치지 않으셨고, 교회를 맡겨 주셨습니다.

 

둘째는 회개한 것을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루가복음 10장에서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가장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온 마음과 정성과 생각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율법학자는 예수님께 질문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법학자에게 말씀하십니다.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되었습니까?’ 율법학자는 누가 나의 이웃입니까?’라고 물었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강도 맞은 사람의 이웃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이는 같은 이야기지만 전혀 다른 결과를 가져옵니다. 율법학자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자비를 베푼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당신도 그러게 하십시오.’ 회개한 것을 행동으로 옳기는 사람이 하느님께로부터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루가복음 19장의 자캐오 이야기에서도 잘 알 수 있습니다.

 

셋째는 이제 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입니다. 성모님께서는 이 몸은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요셉 성인도 법대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성모님을 아내로 맞아 들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 동산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나자렛의 성가정은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자렛의 성가정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신앙을 증거한 모든 성인 성녀들은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살았습니다. 우리가 회개한 삶을 살아간다면, 회개한 것을 삶으로 실천한다면, 나의 뜻을 드러내기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면 우리는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사랑받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주신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구약에 예언된 바로 그 말씀을 받아들였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모든 고통과 절망에서 해방되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갈등과 번민에서 자유로워지는 것도 아닙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은 이제 가장 약한 아이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셨던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며, 사랑하셨던 주님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들은 꽃처럼, 떨어지는 낙엽처럼 허망할 것 같은 우리의 삶은 바로 이런 예수님의 삶을 따라갈 때, 십자가를 넘어, 죽음을 넘어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또 다른 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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