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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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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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ayo98060] 쪽지 캡슐

2012-09-04 ㅣ No.75319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2년 9월 4일 연중 제22주간 화요일



They were all amazed and said to one another,
"What is there about his word?
For with authority and power he commands the unclean spirits,
and they come out."
(Lk.4,36)



제1독서 1코린토 2,10ㄴ-16
복음 루카 4,31-37

요즘 정치권이 아주 시끌벅적합니다. 올 12월에 있을 대통령 선고를 위해 각 당에서는 대통령 후보 경선을 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정치라는 것에 관심도 많이 가지고 바라보았지만, 요즘에는 이 정치인에 대한 불신 때문에 색안경을 쓰고 바라볼 때가 상당히 많습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이런 말을 쓰지요.

“국민들의 생각이 이렇습니다.”

하지만 저에게 그 생각을 물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제 주위의 사람들에게 제가 대신 물어봐도 이러한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국민들의 생각은 이렇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지금 현재 모든 국민의 입장을 대변하는 정의로운 사람처럼 이야기한다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이러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각종 비리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게 됩니다.

이런 모습을 보니, 정치인들이 마치 국민이라는 남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욕심만을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안 들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한 ‘~ 때문에’라는 말 역시 불신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전임 대통령 때문에, 또 상대 당 때문에, 그리고 정치인 누구 때문에 등등의 말로 올바른 정치를 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는 것 역시 그들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이 역시 남의 이름을 팔아서 자신을 겉으로 치장하려는 욕심이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이 이 세상에 뿌리 내리지 못하고 대신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한다면 약간의 거짓은 애교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말로 그럴까요? 주님께서는 약간의 악도 허용하지 않으십니다.

오늘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 하나가 예수님께 소리를 지릅니다.

“아! 나자렛 사람 예수님, 당신께서 저희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자기를 그냥 놔두어도 크게 변할 것이 없으니 상관하지 말고 그냥 가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단오하게 “조용히 하여라.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말씀하면서 마귀를 쫓아내십니다.

앞선 이야기에서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또 당의 이익을 위해 약간의 거짓을 말하기도 하는 것처럼, 그리고 우리 역시 생활을 하면서 외적인 이익을 위해 약간의 거짓말은 괜찮다는 식의 타협을 하는 것처럼, 우리 마음에서는 끊임없이 “무슨 상관이 있냐?”라는 유혹이 계속됩니다. 그때 우리들은 과연 예수님처럼 단오하게 내게서 나가라고 명령하고 있는지요? 혹시 ‘그래, 이 정도는 괜찮을 거야. 남들도 다 그렇게 하잖아.’ 식의 타협을 하여, 내 안에 악의 뿌리를 계속 간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악에 대해 단오하게 대처할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님께 청합시다.

 

좋은 것은 좋은 것으로 이어져 생의 불빛을 키운다(더글라스 리튼).



어제 동창신부와 점심식사로 복 중탕 먹었습니다. 너무 맛있었어요.



자신의 내면 가꾸기
 

뉴스를 보면 우리 사회 전체가 외모 가꾸기에 지나친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성형을 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연예인도 텔레비전을 통해 많이 목격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외모를 가꾸지 않는 사람은 마치 자기 관리가 부족한 사람인 것처럼 평가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외모 가꾸기가 정답일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외모 가꾸는 것이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외모라는 것은 어느 한계가 분명히 생기기 때문입니다. 전에 한 번 어떤 책에서 본 글을 이곳에서 소개했던 것처럼, 마흔이 넘어가면서 사람들은 외모의 평준화를 이루는 것 같습니다. 화장을 하나 하지 않으나 똑같다고 하지요. 사실 자기 나이 대에 맞는 외모를 갖추면 그만입니다. 아니 나이 대에 맞지 않는 외모를 갖추고 있지 않다 해도 그것이 크게 자랑할 것도 또 부끄러워할 것도 아닙니다. 그 외모를 가지고 몇 백 년 살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얼굴입니다. 주님께서는 외모를 잘 가꾸었다고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얼굴을 아름답게 잘 가꿔야 영원한 생명이 있는 구원의 문을 활짝 열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짧다고 할 수도 있는 이 세상의 삶만을 위해 자신의 중요한 내면은 팽개친 것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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