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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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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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7-05-07 ㅣ No.111885

제가 담당하고 있는 복음화 학교에서는 기도에로의 초대피정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시간이 되면 미사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피정 중에 많은 분들이 하느님의 삶을 깊이 체험하는 것을 봅니다. 저도 10여 년간 신학생들과 30일 피정을 함께 하였습니다. 피정 지도자가 너무 깊게 개입을 하면 학생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만나기보다는 피정 지도자의 마음에 들 수 있는 묵상을 찾으려 합니다. 피정 지도자가 아무런 조언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은 묵상을 잘하고 있는지 궁금해하기도 합니다. 저는 가능하면 개입을 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이 피정 중에 하느님을 만날 수 있기를 기도했습니다.

 

피정 중에 겸손의 3단계를 설명할 때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그것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 힘들어했습니다. 마치 제자들이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겸손의 1단계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10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대죄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준법운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교통법규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신호등 위반, 차선 위반, 과속, 중앙선 침범, 불법 유턴 등이 있습니다. 교통법규 위반은 교통사고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교통법규만 잘 지켜도 운전을 잘하는 것이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겸손의 2단계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하여 10계명은 물론이고, 교회의 가르침도 충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대죄는 물론이고 소죄까지 범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안전운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운전하기 전날은 과음하거나 과로하지 않는 것입니다. 장거리 운전을 하는 경우에는 적당한 시간에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큰 트럭이나, 버스는 먼저 보내거나 추월하는 것입니다. 뒤에 오는 차와 앞에 가는 차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약속 시각보다 일찍 출발하는 것입니다. 이런 운전습관을 가지면 운전이 즐거움이 되기 마련입니다.

겸손의 3단계는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 고통을 받는 것도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박해시기에 조선을 찾아왔던 선교사들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단순히 계명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하느님의 보다 큰 영광을 위해서라면 가난도, 질병도, 죽음까지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양보운전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길을 가다가 고장 난 차가 있으면 내려서 도움을 주는 것입니다. 짐을 지고 가는 어르신이 있으면 가는 길까지 모셔다드리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님께서 봉성체를 가시면 기쁜 마음으로 차량 봉사를 하는 것입니다. 운전이 교통수단이기도 하지만 운전은 복음을 전하는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오늘 성서 말씀은 우리 신앙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것이 회개입니다. 욕심과 교만함으로 나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겸손과 희생으로 타인을 위해서 살도록 마음을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우리는 모두 주어진 능력이 다르고, 하는 일도 다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능력과 재능으로 판단하시지 않습니다. 우리를 회개했는지 우리의 뜻대로 살아가는지를 보시고 판단하십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서는 먼저 함께 사는 가족들의 음성을 귀담아들어야 합니다. 이웃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바로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시기 때문입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 억울한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것, 병든 이들을 치료해 주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희생과 봉사를 하고 내가 원하는 만큼 타인에게 해 주는 것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성소주일을 지내면서, 예전에 신학생 때 읽었던 글을 생각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뜻이고, 이것이 하느님의 음성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힘없고 약한 자의 고통을 나누며, 사회정의를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사제

사리에 맞지 않는 독선을 피우지 않으며, 평신도와 함께 본당을 이끌어 가는 사제

겸손하며, 남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제

죽기까지 사제 성직에 충실한 사제

평신도들에게 적절한 강론을 준비하는 사제

검소하게 물질에 마음 쓰지 않으며, 공금에 명확한 사제

웃어른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말과 행동에 예의를 지킬 줄 아는 사제

청소년과 친하게 대화를 나누며, 교리교육에 힘쓰는 사제

성사 집행을 경건하고 예절답게 하는 사제

교구장과 장상에게 순명하며, 동료 사제들과 원만한 사제

가까운 친척이나 친한 교우에게 매이지 않는, 양쪽 귀를 모두 여는 사제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당신의 몸에 친히 지시고 십자 나무에 달리시어, 죄에서는 죽은 우리가 의로움을 위하여 살게 해 주셨습니다. 그분의 상처로 여러분은 병이 나았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 회개의 길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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