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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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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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6-02-04 ㅣ No.102235

오늘과 내일은 교구 서품식이 있습니다. 제가 일하는 성소국이 가장 바쁜 날입니다. 장소 대관, 무대 디자인, 서품식 초대장, 유인물, 봉사자 모임, 전례 준비, 성가 연습, 물품 운반, 공문 작성, 서품 대상자 면담, 서품 전 독신서약 미사 등이 있습니다. 매년 서품식 준비를 하지만 늘 긴장되는 업무입니다.

 

서품식에서 가장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장면은 성인 호칭기도입니다. 서품 대상자들은 모두 바닥에 엎드려 겸손한 자세를 취합니다. 바닥에 엎드려 있으면서 신자들이 함께 드리는 성인 호칭 기도를 들으면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신학생으로서 지냈던 모든 일들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힘들고 어려웠던 순간들,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 앞으로의 다짐, 고마웠던 사람들이 떠오릅니다. 그리 길지는 않은 시간이지만 그 순간에 서품 받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는 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그 순간을 생각하며 그 많은 신자들이 함께 기도 해 주셨던 것을 떠올립니다. 그러면 용기와 힘이 생깁니다. 사목의 결실을 맺어서 칭찬을 받을 때는 그 모든 일의 성과는 하느님의 은총임을 생각하며 좀 더 겸손한 마음을 가집니다. 나의 아픔과 좌절, 나의 실패와 고난까지도 모두 하느님께서 이루시는 일임을 믿고 그 안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돌아봅니다. 이것이 바로 성인 호칭 기도의 진정한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사제가 되면 매일 성체성사를 거행합니다. 사제의 축성과 기도로 제병은 성체가 되고, 포도주는 성혈이 됩니다. 그리고 성체와 성혈은 주님의 몸과 피가 되어서 사람들과 하나가 됩니다. 주님을 받아 모시는 이들은 이제 곧 제2의 그리스도가 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제에게 주어진 커다란 은총이며 사명입니다.

 

올해로 사제 서품 25년이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해 줄까 생각해 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목을 하면 좋겠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몸이 불편하셔서 일을 많이 못하시면 할 일이 많아진 것을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엄격하셔서 생활이 불편하면 사목을 제대로 배우는 것으로 여기며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자유로우셔서 모든 것을 맡기면 스스로 할 수 있는 역량을 키울 수 있음에 감사드리면 좋겠습니다. 주어진 모든 일들에서 감사할 것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감사드리면 감사할 일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주어진 사목에 성실했으면 좋겠습니다. 매일 아침 지하철에 몸을 맡기며 출근하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추운 겨울에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물건을 파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족들 생각에 모욕을 참아내며,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매는 이들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고민하고, 세상 사람들이 연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일하는 것 이상으로 사목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작은 일에 정성을 다하면 감동하고, 감동하면 변하게 되고, 변하면 마음을 움직이게 되고, 마음을 움직이면 사목의 결실이 맺어지기 마련입니다. 태산이 높아도 오르면 못 오를 것이 없습니다.

겸손하면 좋겠습니다. 주변에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그분들에게서 배울 것을 찾으면 좋겠습니다. 책을 통해서 많은 것들을 익히면 좋겠습니다. 특히 어른들에게 예의를 다하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었지만 제자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었지만 섬기는 삶을 사셨습니다. 겸손한 사제는 부족한 것들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채울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주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신학교에서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함께 기도 합니다. 낮에도 양심성찰 시간을 갖습니다. 저녁에는 묵주기도를 하고, 저녁기도를 함께 합니다. 성체조배를 하고, 영성훈화를 듣습니다. 이제 본당에 가면 모든 것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매일 기도하는 사제는 뿌리 깊은 나무와 같아서 고난의 바람이 불어도, 시련의 아픔이 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습니다. 샘이 깊은 물과 같아서 신자 분들에게 깊은 영성의 물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25년 동안 제가 제대로 못한 것을 이야기 하려니 부끄럽습니다. 앞으로 남은 날들을 저부터 그렇게 살고 싶어서 후배들에게 하는 덕담을 빌어서 다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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