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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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3."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 - 파주 올리베따노 이영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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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문숙 [moon6388] 쪽지 캡슐

2017-04-23 ㅣ No.111625

요한 20,19-31(부활 제2 주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

 

 

 

오늘은 부활 여드레 날이고, 부활 제2주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자비 주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인 예수님의 지고한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그 사랑은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건네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이를 사도 베드로는 오늘 <제2독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시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생생한 희망을 주셨고,

 

또한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는 상속 재산을 얻게 하셨습니다.”(1베드 1,3-4)

 

 

 

오늘 <복음>은 부활 첫째 날 있었던 일과 부활 여드레 째 날에 벌어진 일입니다.

 

먼저 부활 첫째 날 저녁에 있었던 일입니다. 돌아가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엠마오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소식을 듣고도 믿지 못하고,‘두려워 문을 잠가놓고 있는’ 그들에게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들에게, 부활의 선물을 주고자 찾아오십니다. 꾸지람이나 질책을 할만도 한데, 오히려 “평화가 너희와 함께”(20,19.21.) 하고 인사하시면서, 대뜸 제자들을 소명에로 파견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나도 너희를 보낸다.”(요한 20,21)

 

 

 

이는 비록 제자들은 당신을 믿지 못했지만, 당신께서는 그들을 믿으신 까닭입니다. 비록 그들에게 발등이 찍히고도 믿는 것입니다. 배신당하고도 믿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큰 신뢰인지요? 이 얼마나 지고한 사랑인지요? 비록 우리는 미처 당신을 믿지 못해도 당신은 우리를 믿으시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당신을 미처 사랑하지 못해도 당신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입니다.우리는 이 사랑과 믿음을 결코 떠날 수는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사명뿐만 아니라, 이를 실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새롭게 창조해 주십니다. 곧 부활의“숨을 불어넣어”(20,22 참조)주십니다. 성령을 주십니다. 십자가에서는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신 당신께서는, 이제 당신의 영을 내놓으십니다.

 

이는 우리가 용서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하여, 이제 우리에게도 용서가 가능해졌습니다. 바로 이 “성령의 선물”로 말미암아서 말입니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

 

 

 

그러나, 그 자리에 토마스는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드레 째 되는 날, 제자들은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입으로는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요한 20,25)라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두려움에 떨며, 문을 닫아걸고 집안에 모여 있었습니다. 토마스는 이러한 동료들의 모습을 보고, 더욱 더 예수님의 부활을 믿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실, 토마스를 포함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분을 따라다니면서, 무수히 많은 기적과 권능을 보았습니다.빵의 기적도, 물위를 걷는 기적도,온갖 병자들과 마귀 들린 자의 치유도, 죽은 자의 살아남도 보았습니다.그러나 그들은 모두가 ‘보고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또 다시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들어오시어 그들 한 가운데 서시며”(요한 20,26),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요한 20,27)

 

 

 

그때서야 토마스는 비로소 마음의 눈이 열려, 상처받은 예수님의 몸에서 주님을 보았습니다. 당신을 불신하고 거부한 자신을 그분께서는 이미 용서하고, 믿고 사랑하신다는 것을 마음의 눈으로 뵌 것입니다.

 

바로 이 사랑에서 토마스는 새롭게 창조된 것입니다. 아담의 옆구리에서 나온 하와처럼, 예수님 옆구리의 상처에서 새로 탄생한 것입니다. 그 사랑, 그 자비를 체험하면서 그는 비로소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 나의 하느님”(요한 20,28)

 

 

 

이 용서의 체험이야말로 바로 부활의 표시라 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서 불신이 믿음으로 바뀌고, 거부가 탄성의 고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은 창과 못에 찔린, 손과 옆구리의 상처로부터 흘러나온 새 생명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내어주신 그 사랑으로부터 흘러나온 용서입니다.그것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그래서프란치스코 교종께서는 “자비의 특별희년” 칙서인 [자비의 얼굴]을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의 얼굴이십니다.”(1항)

 

 

 

그러니, 부활의 삶은 용서하는 삶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곧 “용서”는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명이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는 표징이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나에게서 그러한 부활의 표징이 드러나고 있는가?

 

 

 

나의 옆구리를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내 옆구리에 내 형제, 내 이웃을 껴안고 있는가?

 

내 옆구리에서 흘러내리는 사랑의 피, 생명의 피를 건너 주고 있는가?

 

나를 거부하고 배척하는 이를 옆구리에 받아들여, 믿어주고 희망해주고 있는가? 나를 상처내고 비난한 이를 끌어안아, 품어주고 도와주고 있는가?

 

 

 

주님! 오늘 제가 당신의 자비를 흠뻑 누렸으니,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되게 하소서!

 

당신의 성령이 제 영혼을 적셨사오니, 제가 용서하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제 안에 부활 생명이 피어나고, 사랑의 권능이 이루어지게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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