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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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신부님의 매일묵상 -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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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헌모 [kanghmo7] 쪽지 캡슐

2021-05-30 ㅣ No.147231

삼위일체 대축일 (마태28,16-20)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큰 사랑으로 우리를 빚어 만드셨고, 아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도 당신의 사랑으로 살기를 기대하며 또 살 수 있도록 일깨워 주십니다.

이 시간 성부, 성자, 성령의 위격으로 계신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기쁨을 간직하시길 바랍니다.

 

성그레고리오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어떻게 한 분이십니까? 하는 질문에 ‘세 개의 등불이 가까이 있다면, 그 사이에는 빛이 하나로 섞여 세 개의 빛이 뭉쳐졌다고 하지 않고 빛이 밝다고 하듯이 신성(神性)도 그렇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태양자체를 성부로, 지구까지 오는 빛을 성자로 그 빛이 따뜻하게 하고 자라게 하는 역할을 감당하는 것을 성령으로 표현했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 다 부족합니다. 삼위일체 신비는 인간의 머리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믿음의 문제입니다.

 

아버지는 우리 앞에 계시는 분으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곧 생명을 주신 모든 것의 근원이시고 목표이시며 시작이요 마침이십니다.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세상을 위해 아들을 넘겨주신 분입니다.

 

아들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이십니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자신을 바치신 분으로 존경과 순명을 가르치신 분입니다. 죄인의 대변자요, 억압받고 소외받는 이들의 변호자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십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으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 머물도록 이끌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해 주시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며 우리를 대신해서 탄식해 주시고 새로움을 더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렇게 각기 역할이 구별되면서도 하나이신 하느님을 사랑 안에서 만나시길 기도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1요한416). 그래서 “사랑이 있으면 천국이요, 사랑이 없으면 지옥입니다”(까롤로 까레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면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세상 끝날까지”함께 계신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더욱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분으로서 함께 계신다니 가슴 벅찬 일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레미야가 “아, 주 하느님 저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릅니다”(예레미야1,6)하며 예언자 직무를 거절할 때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미야1,8)고 하셨고, 모세도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4,10)하고 직무에서 벗어나려고 할 때 “내가 너희를 도와 주겠다”(탈출4,15)고 하셨습니다. 에제키엘서 2-3장에 보면 에제키엘이 소명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도 “두려워하지 마라” 하시며 “내가 너에게 주는 이 두루마리로 배를 불리고 속을 채워라” 하셨고 에제키엘은 “그것을 먹으니 꿀처럼 입에 달았다” 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는 약속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복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도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럴 수 있는 일입니다. 사실 눈으로 보았다고 해서 저절로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주님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가르침을 지키게 하라는 할 일을 주시고 함께 있겠다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약속을 믿고 맡겨진 일을 성실히 감당한 사람은 믿음의 눈이 새롭게 열렸습니다. 사도행전이 바로 그것을 증언하는 말씀입니다. 오늘은 사도행전을 꼭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믿음은 주님의 말씀을 따름으로써 더욱 다져지고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커지길 원하는 사람은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대로 사십시오. 큰 믿음을 소유하고 싶은 사람은 사랑하십시오.

 

우리는 흔히 부부는 일심동체(一心同體)라고 합니다. 물론 동상이몽(同床異夢)인 분도 계시겠지만 일심동체가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면 한마음(일심)이 되고 한마음이 되면 두 몸은 이미 한 몸(동체)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이는 한마음, 한 몸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극복할 힘이 있습니다. 가난해도 풍요로울 수 있고 상황이 어려워질수록 더욱, 의지하고 더욱 일치합니다. 힘들면 힘이 들수록 더 큰 사랑이 요구됨을 압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멋진 집에 살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높은 지위에 있어도 외롭고 쓸쓸하게 됩니다. 사랑이 없으면 그 어느 것으로도 일치할 수가 없습니다. 이 관계는 부부사이의 관계만이 아니라 인간 삶의 모든 관계가 그렇습니다. 부자관계도 사제관계도 우리 이웃과의 관계도 사랑으로 일치하지 않으면 혼란과 많은 상처가 남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께서 명하신 가장 큰 계명이 사랑입니다.

 

서로간의 관계에 이해타산이 끼어들면 힘들어집니다. 나도 피곤하고 상대도 피곤합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 성령이 사랑으로 하나이듯 우리도 서로 사랑하여 하나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그곳에 주님이 함께하십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주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믿음이 생길 것입니다. 사랑하는 가운데 더 많이 행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많이 사랑하십시오. 많이 행하게 될 것이고 주님과 함께하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만약 내가 아직 주님이 함께하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더 많이 사랑하십시오. 그분께서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커다란 맛을 느끼는데 있지 않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려는 결단을 내리는데 있습니다”(소화 데레사).

 

아무리 좋은 가전제품도 전기 코드를 빼어 놓으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주님께서 아무리 많은 은총을 주시고자 해도 내가 사랑하지 않으면 코드를 빼놓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먼저 주님과의 일치를 이루기 위해서 사랑할 수 있는 오늘이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힘들고 지쳤을 때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고 약속하신 주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연세 많은 할아버지께서 외출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손자, 손녀들이 집으로 오시는 길에 H.O.T 음반을 사다 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하고 손바닥에 H.O.T 라고 쓰고 외출을 하셨습니다. 집으로 급히 돌아오다가 손주들하고 약속한 것이 생각나 손바닥을 봤습니다. H.O.T,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H=호떡, 0=오뎅, T=튀김을 사가지고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날 할아버지께서 몹시 고독하셨답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내면의 일치, 마음의 하나가 됨을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 일인지요? 더욱이 주님의 마음과 하나가 된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고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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