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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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1.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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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1-08-07 ㅣ No.148868

 

(간질병 걸린 소년을 치유해시는 예수님)

2021년 8월 7일

연중 제18주간 토요일

복음 마태 17,14ㄴ-20

그때에 14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무릎을 꿇고

15 말하였다. “주님제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간질병에 걸려 몹시 고생하고 있습니다.

자주 불 속으로 떨어지기도 하고

또 자주 물속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16 그래서 주님의 제자들에게 데려가

보았지만 그들은 고치지 못하였습니다.”

17 그러자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고

비뚤어진 세대야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있어야 하느냐?

내가 언제까지 너희를 참아 주어야

한다는 말이냐아이를 이리

데려오너라.” 하고 이르셨다.

18 그런 다음 예수님께서 호통을

치시자 아이에게서 마귀가 나갔다.

바로 그 시간에 아이가 나았다.

19 그때에 제자들이 따로 예수님께

다가와, “어찌하여 저희는 그 마귀를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물었다.

20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의 믿음이 약한 탓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이 산더러

여기서 저기로 옮겨 가라.’ 하더라도

그대로 옮겨 갈 것이다너희가

못할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부터

계산해 보면가톨릭의 역사는 자그마치

2,000년이 넘습니다그렇다면 가톨릭이

가장 순수했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전체가 사랑의 실천에 온 힘을

기울였을 때는 언제였을까요?

그런 시간이 없었다.”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실제로 순수했던 때가

있었습니다바로 처음 박해를 받았던

300년 동안의 시간은 정말로 순수하게

주님의 뜻을 따른 시기였다고 합니다.

다른 것에 정신을 빼앗기지 않았고,

가장 소중한 주님의 뜻을 지키고

실천하기 위해 똘똘 뭉쳤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예를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박해 시대의

우리 선조들은 순수하게

주님의 말씀에만 집중했습니다.

모든 것이 마련되는 순간만이

주님을 따르는 때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갖은 방해로 가득해서 어렵고

힘든 것들이 너무 많았던 때가

주님과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어렵고 힘든 고통과

시련의 시간이 자기에게 벗어나기만을

청하고 있습니다그 시간만 지나면

더 열심히 주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 고통과 시련의 시간에 주님을

만나지 못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상황에서도 주님을 만날 수가 없습니다.

병자의 아버지가 예수님을 찾아와 아들에게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청합니다.

불 속 그리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또한 어떤 사람도 고치지 못하기에

절망으로 가득 찼을 것입니다.

충분히 포기할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포기하기보다

예수님을 찾아갑니다가장 어렵고

힘든 상황이었지만 포기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고예수님으로부터

커다란 은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듯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었습니다이 믿음은 산을

옮길 정도로 힘이 있습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지는 삶은 모두

다릅니다그 모든 상황에서 주님께서는

분명히 함께하십니다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만이 아닌기쁘고 행복을

느끼는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함께하십니다어떠한 순간에서도

함께 하는 데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통해 주님과의 순수한 만남을

가질 수 있으며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시간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새로운 시간 속에는

새로운 마음을 담아야 한다.

(성 아우구스티노).

바보멍청이 짓도 괜찮습니다.

얼마 전, ‘바보의 세계라는 책을

읽었습니다인류의 역사는 바보,

멍청이의 말과 행동으로

이루어졌음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음이 역사의

원동력이었음을 말합니다.

바보짓이 인류의 발전을

가져왔다는 것은 지금을 사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깨닫게 해줍니다.

바보멍청이 짓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포기만 하지 않으면 됩니다.

바보멍청이가 늘 역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그래서 틀려도 괜찮습니다.

틀릴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바보멍청이 짓이라고

손가락질받는 것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이 역사의 중심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감을 갖고

이 세상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위로해주시는 예수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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