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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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내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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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1-10-06 ㅣ No.2856

언젠가 "의탁의 기도"로 유명한 샤를르 드 푸코 신부님의 정신을 따라서 생활하는 예수의 작은 자매회 본원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푸코 신부님께서 한평생 추구하셨던 가난과 겸손의 삶을 따라 그곳 수녀님들은 참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가고 계셨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그날도 몇몇 노인 수녀님들은 묵묵히 "몸으로 때우는 일들"에 전념하고 계셨습니다. 총본원이라고 하길래 으리으리한 건물로 생각했었는데, 수녀님들이 직접 시공한 반조립식 건물이었습니다. 수녀원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중 푸코 신부님의 기념관에 들렀는데, 거기에는 그 유명한 "의탁의 기도"가 걸려있었습니다.

 

"아버지, 이 몸을 당신께 바치오니, 좋으실 대로 하십시오.

저를 어떻게 하시든지 감사드릴 뿐

저는 무엇이나 준비되어 있고, 무엇이나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저와 모든 피조물에 이루어진다면,

이 밖의 다른 것은 아무 것도 바라지 않습니다.

내 영혼을 당신 손에 도로 드립니다. 당신을 사랑하옵기에

이 마음의 사랑을 다하여, 하느님께 영혼을 바치옵니다.

당신은 나의 아버지시기에 끝없이 믿으며, 남김 없이 이 몸을 드리고

당신 손에 맡기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저의 사랑입니다.

 

이 기도문을 대하는 순간 사하라 사막의 한 가운데서 철저하게도 겸손하게 또 다른 나자렛 예수로 살아가셨던 푸코 신부님의 모습이 손에 잡히는 듯 했습니다. 사막의 성자라고 불리셨던 푸코 신부님, 사하라 사막의 한가운데에서 철저한 은둔 생활을 하시면서 그곳 사막의 가장 소외된 원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시다 피살되신 영성가이십니다.

 

원래 푸코 신부님은 프랑스의 귀족출신이었습니다. 그의 혈관에는 즐기기 좋아하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기나긴 방황의 여정 끝에 나자렛 예수님의 삶에 매료되어 가장 비천한 자로 살기 위해 나자렛으로 갑니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미소한 존재로 남아 있고자 하였고, 노동자와 미소한 자들의 고통에 직접 동참했습니다.

 

나자렛은 이스라엘의 마지막 자리였습니다. 가난하고 볼품없는 노동자들이 빵을 얻기 위해 어려운 노동을 해가며 사는 지방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곳 나자렛에서 하루하루의 노동으로 근근히 생계를 유지하며 30년이란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한 사형수로 무참히 살해되십니다. 이런 나자렛 예수님의 삶은 푸코 신부님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며 남은 삶의 이정표가 됩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자리를 선택했습니다. 아무도 그 자리를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나자렛의 신비에 깊이 감동을 받은 푸코 신부님은 자신의 삶을 통해 또 하나의 나자렛을 건설합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사하라 사막 그 한 가운데서 철저하게도 자신을 감추며 하루하루의 노동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생활을 선택하십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참된 겸손이 어떤 것인지 잘 설명하고 계십니다. 충직한 종처럼 자신이 해야할 일들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나서 "저는 당연히 해야할 바를 했을 따름입니다."라고 말하는 겸손을 강조하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겸손해지고자 한다면 우리 안에 또 하나의 나자렛을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매일의 십자가를 기꺼이 수용할 때 우리는 또 하나의 나자렛을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할 하루하루의 노동을 기쁜 마음으로 해나갈 때 우리는 또 다른 나자렛의 겸손한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열악한 상황과 부조리와 이해하지 못할 모순에도 불구하고 기도로써 성화시켜 나갈 때 우리는 나자렛 예수님의 영성을 충실히 실천하는 것입니다.

 

"나는 생활로 복음을 외치고 싶습니다."

-샤를르 드 푸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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