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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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비끼가 강하면 강할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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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1-11-26 ㅣ No.2968

11월 27일 화요일-루가 21장 5-11절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사이비끼가 강하면 강할수록>

 

이 세상 종말에 일어날 성전 파괴를 비롯한 여러 가지 위협적인 예수님의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는 참으로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 마지막 날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늘 안절부절, 조마조마해 하면서 마음졸이며 살아가야하는가? 아니면 10여 년 전 우리나라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휴거소동 때처럼 주님께서 당장 오실 지 모르니 모든 것을 단념하고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지니게 됩니다.

 

돌이켜보니 그때 참으로 대단했었습니다. 그때 당시 사이비 교주들의 종말에 대한 거짓 가르침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었습니다. 잘 다니던 직장에 사직서를 썼던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가정을 내팽개치고 통장이랑 살림살이를 통째로 짊어지고 교회로 피신했던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사이비끼가 강하면 강할수록 그들이 강조하는 단어가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닌 종말이요 휴거입니다.

 

언젠가 한 사이비 지도자의 설교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참으로 가관이었습니다. 말씀의 요지는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뽑힌 성도 여러분! 드디어 주님의 날이 눈앞에 다가왔습니다. 내일이 바로 그 날입니다. 성도 여러분, 지금 하고 있던 일들을 모두 중단하십시오. 그리고 우리 교회로 나오십시오. 우리 함께 모여서 거룩하게 주님의 날을 맞이합시다. 그리고 구원을 받읍시다."

 

오늘 주님의 날, 마지막 날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거를 믿고 재산을 바쳐가면서 밤새워 철야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만 하느님께서 선별하여 구원하신다면 그 하느님은 참 하느님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 말입니다. 그렇게 될 때 하느님은 너무도 작은 하느님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의 하느님은 크신 하느님이십니다. 비록 우리가 철야기도를 하지 않더라도, 비록 우리가 자주 타락의 길을 가더라도 우리의 이 부족함과 비참함을 가엾이 보시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느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지옥까지도 내려오실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단지 이 세상 종말의 순간 구원받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만큼 팍팍한 생활은 다시 또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숱한 이웃들과 동료들은 제쳐두고 나 혼자만 구원받겠다는 심보만큼 이기적인 심보는 또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이기적인 신앙을 하느님께서 좋아하실 리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교회는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만이 구원되는 교회. 그리스도교 신자들만이 아기자기하고 재미있게 살다가 우리끼리만 구원받는 교회가 결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보다 우리 교회는 세상의 죄인들과 세상의 고통을 끌어안는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우리의 교회는 지저분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한 가운데 존재하는 교회, 세상의 갖는 고통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역사 안에서 참으로 아이러니컬하게도 교회가 고상함만을 추구할 때, 외형적인 성장에만 연연할 때, 교회는 언제나 쇠퇴와 타락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반대로 교회가 박해와 고통을 수용할 때 거듭 정화되고 진정으로 성장하는 면모를 보여왔습니다.

 

때로 이해하기 힘들겠지만 찬란한 순금이 몇 백도나 되는 도가니를 이용한 제련과정을 통해서 추출되듯이 고통과 죽음을 통한 정화과정을 겪은 후에야 우리의 영혼과 우리의 교회는 더욱 새롭게 태어날 것입니다.

 

주님의 날을 잘 준비한다는 것은 매일의 시련을 잘 견디어 내는 일이며, 나란 존재의 부족함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언젠가 우리가 이승의 삶을 접고 또 다른 삶에로 옮겨가는 그 날, 두려움이 아닌 기쁨으로 맞이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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