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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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보자 하니 가관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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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2-01-09 ㅣ No.3134

1월 10일 목요일-루가 복음 4장 14-22절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며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하고 수군거렸다.

 

 

<보자보자 하니 가관이네!>

 

공생활을 시작하신 예수님께서는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할 첫 번째 대상으로 고향 사람들인 나자렛 사람들을 선택하셨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나자렛 사람들은 예수님의 메시아성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중대한 실수를 범하고 맙니다.

 

아마도 이런 마음에서였겠죠. "예수 그 친구가 메시아라구? 야! 정말 보자보자 하니 가관이네. 내가 그 친구 바로 옆집에 살았던 사람인데, 절대 그럴 리가 없어. 나는 예수를 꼬마 때부터 알고 있었거든. 그의 부모들에 대해서도 잘 아는데,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야. 메시아는 그런 형편없는 가문에서 태어날 리가 없어!"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한 나자렛 사람들의 불신은 큰 것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메시지에 점점 분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 것이었으면 예수님이 같은 고향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벼랑 끝으로 끌고 가서 떨어뜨리려 했겠습니까?

 

공생활 시작 단계부터 예수님의 사명은 크나큰 난관에 부딪힙니다. 예수님의 이처럼 철저하게도 바닥에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인지도나 지지율은 거의 바닥이었습니다. 철저한 불신앙, 냉담함, 배척 등으로 인한 깊은 좌절감, 그것이 공생활을 시작하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시작하십니다. 청중들은 예수님의 명쾌한 가르침에 한편으로 탄복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극도의 반감을 드러내며 철저하게도 예수님을 거부합니다.

 

"아니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닌가?" 이 말은 요즘 말로 이렇게 해석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야! 저 친구, 그 촌구석 나자렛에서 한평생 대패가루만 마시고 살던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그런 주제에 어디 율법이나 성서에 대한 기본적인 수업이나 한번 제대로 받아봤겠어? 그런 자가 주제넘게 성전에서 가르치다니 이게 될 말인가? 말세다, 말세!"

 

이토록 예수님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예수님의 고향이나 출신 성분 등, 그의 인성에 집착하다보면 예수님의 메시아성은 끊임없는 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러나 다른 예언자들과 전혀 다른 새로운 방식으로 선포되는 독특한 말씀과 그에 따른 행적들을 살펴보면 메시아임이 분명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메시지는 환영했지만, 그 메시지를 선포하는 예수님은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의 메시지는 우리에게 하나의 총체적인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결단을 말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말씀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의 도전이요 문제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특히 잘 믿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일생일대를 건 하나의 투쟁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으로 인해 박해와 고통의 십자가의 길을 출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안개 자욱한 바다를 어렵사리 해쳐나가는 멀고도 지루한 항해와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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