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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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나를 밟고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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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16-12-26 ㅣ No.108952

 

스테파노신부님복음묵상

"나를 밟고 가십시오"

오늘은 8년 전 돌아가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영명축일이군요.

제가 젊은 수도자 시절

12월 26일만 되면

기분이 좋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원장

신부님께서는 성 스테파노 축일

아침 마다 저희들에게

빳빳한 만 원짜리 세종대왕을

한 장씩 보너스로 주셨습니다.

 이게 웬 떡이냐며 입이 함지박만해진

 저희는 뜻밖의 거금에 행복해하며

발길을 명동으로 향했습니다.

당시 12월 26일마다

명동대성당에서는 교구장이셨던

김추기경님께서 직접 주례하시는

미사가 봉헌되었습니다.

추기경님의 주옥같은 강론,

따뜻하고 편안한 강론을 듣고 난

저희는 삼삼오오 흩어져 맛있는

점심도 사먹고

재미있는 영화도 보며

 하루를 명동에서 지냈습니다.

워낙 다정다감하고 편안하셨던

추기경님이 참으로 그립습니다.

아직도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희 수도회 소속 스페인 출신

선교사 왕신부님에

얽힌 이야기입니다.

 성 요셉 축일 날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전화가 한통 왔습니다.

 왕신부님을

찾는다는 전화였습니다.

왕신부님께서 수화기를 들자

저쪽에서 들려오는 소리.

“왕신부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명동의 스테파노입니다.

오늘 축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건강하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명동의 스테파노가 누군지

기억나지 않던 우리 왕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오~ 명동의 스테파노!

죄송합니다. 누군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렇게 제 축일을

축하해줘서 너무 고맙습니다.

스테파노! 자매님에게도

안부 전해주세요. 고맙습니다!”

 이렇게 김추기경님께서는

그 바쁜 와중에도 영명축일을

맞이하는 신부님들에게 일일이

직접 전화를 거셔서 진심어린

축하를 해주시고

안부를 물어봐주셨습니다.

 수많은 신부님들이 아직도

당시의 따뜻한 감동을 잊지 못하고

두고두고 이야기들을 하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김추기경님께서는

 얼마나 인간적인 분이셨는지 모릅니다.

 자신과 타인에게 솔직하셨습니다.

자신을 과장하거나

 치장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2005년 경 사제가 되기 직전

단계의 성직자들인 부제들,

 까마득한 후배 성직자들을 만나서

이런 말씀을 하셨더랍니다.

 “누가 나에게 미사예물을 바칠 때

자연히 내 마음이 어디로 더 가냐

하면 두툼한 쪽으로 더 가요.

 ‘아니!’라고 하는 게 자신 있는 분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나는 안 그래요.

나는 두툼한 데 손이 가요.

 그리고 어떤 때는 무의식중에

이렇게 만져보기도 해요.” ^^

 이토록 인간미 넘치고 자상한

김추기경님이셨지만 당신께서

사랑하시는 양떼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독재자들에게는

아주 단호하고 냉정하셨습니다.

 시대와 역사 앞에 씻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은 독재자가 어불성설인

10월 유신을

선포하자 김추기경님께서는

 대놓고 이렇게 반박하셨습니다.

“10월 유신 같은 초헌법적

철권통치는 우리나라를 큰 불행에

빠트릴 것이라고 단언합니다.”

 김추기경님과 같이 반독재 노선을

선택했던 당시 원주교구장 지학순

주교님께서 그 억울한 ‘민청학련’

사건에 대한 양심선언을 하셨을 때,

 김추기경님께서는

이렇게 조언하셨습니다.

“지주교님, 양심대로 하십시오.

우리 성직자들이야 가진 거라곤

 양심밖에 없지 않습니까?”

 흑심을 품고 군사 쿠테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 그분,

‘본인은 29만원뿐’으로 유명한

그분께서 새해 인사차 추기경

집무실을 방문했을 때도

추기경님의 말씀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마치 서부 활극을

보는 것 같습니다.

 서부 영화를 보면 총을 먼저

 빼든 사람이 이기지 않습니까?”

 마침내 김추기경님께서는

 명동성당에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는 경찰 고위층의

엄포 앞에 역사에

길이 남을 명언을 던지십니다.

“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 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돌아보니 김추기경님의 생애는

 백색 순교자의 삶이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가장 힘겨운

시절을 보냈던 군부독재 시절,

그분은 목숨을 걸고 당신의

어린 양떼를 지키고자

각고의 노력을 다하셨습니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 부제의

삶과 죽음에서 백색 순교자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님의

생애가 오버랩되는 것은

제 생각뿐일까요?

 오늘 순교자 성스테파노의

축일을 기념하며 이 시대 순교란

어떤 것인가 성찰해봅니다.

 김추기경님의 생애 안에서

 이 시대 순교자의 모습이

 확연히 드러납니다.

이게 정말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

 한이 있더라도 할 말을 하는 것이

이 시대 순교입니다.

공동선을 위해 내 안위를

과감하게 포기하는 것이

 이 시대 순교입니다.

 수도자로서 이 시대 순교는

또 무엇인가 고민해봅니다.

또 다시 맞이한

인사이동 철입니다.

장상이 요청할 때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길 떠나는 것이

 이 시대 순교입니다.

 ‘날 가급적이면

저 자리로 보내주십시오.

저 자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가겠습니다!’가 아니라

‘저는 언제나 준비되어 있습니다.

저를 제일 힘든 곳으로,

아무도 안 가려고 하는 곳으로

저를 보내주십시오!’라고 당당하게

외치는 것이 이 시대 순교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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