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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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6주간 토요일] 가라지 비유 (마태13,2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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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21-07-24 ㅣ No.148524

2021년 7월 24일 토요일

[연중 제16주간 토요일] 가라지 비유 (마태13,24-30)

 

제1독서<이는 주님께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탈출24,3-8)

3 모세가 백성에게 와서 주님의 모든 말씀과 모든 법규를 일러 주었다. 그러자 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주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을 실행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4 모세는 주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였다. 그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산기슭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에 따라 기념 기둥 열둘을 세웠다.

5 그는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 몇몇 젊은이들을 그리로 보내어, 번제물을 올리고 소를 잡아 주님께 친교 제물을 바치게 하였다.

6 모세는 그 피의 절반을 가져다 여러 대접에 담아 놓고, 나머지 절반은 제단에 뿌렸다.

7 그러고 나서 계약의 책을 들고 그것을 읽어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실행하고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화답송 시편 50(49),1-2.5-6.14-15(◎ 14ㄱ)

◎ 하느님께 찬양 제물을 바쳐라.

○ 하느님, 주 하느님이 말씀하시네. 해 뜨는 데서 해 지는 데까지, 온 땅을 부르시네. 더없이 아름다운 시온에서, 하느님은 찬란히 빛나시네. ◎

○ “내 앞에 모여라, 나에게 충실한 자들아, 제사로 나와 계약을 맺은 자들아!” 하늘이 그분의 의로움을 알리네. 하느님, 그분이 심판자이시네. ◎

○ 하느님에게 찬양 제물을 바치고, 지극히 높은 분에게 너의 서원을 채워라. 불행한 날에 나를 불러라. 나는 너를 구해 주고 너는 나를 공경하리라. ◎

 

복음<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마태13,24-30)

24 예수님께서 비유를 들어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25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26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27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28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29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30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제1독서(탈출24,3~8)

 

모세는 피를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고 말하였다.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8)

 

모세는 탈출기 24장 6절에서 희생의 제물에서 받아 낸 '그 피'의 절반은 대접에 받아 놓고, 절반은 제단에 뿌린다.

 

성경에서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으로서(창세9,4.5), 각종 제사와 계약 체결에 필수적인 요소였다(히브9,22).

그런 맥락에서  모세가 하느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계약을 체결하기에 앞서 희생의 피를 취한 것은 생명을 담보하고 그 계약을 기필코 준수하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반영하는 행동이라 할 수 있다.

 

모세가 새로 세운 제단 위에 피의 절반을 뿌린 행동은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결속 의식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 피를 통해서 계약의 백성들이 거룩하여지며,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계약 체결에 있어서 피를 뿌리는 것은 계약을 지키지 않을 때는 죽음으로써 책임을 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것은 반드시 계약을 지키겠다는 굳은 약속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렇게 희생의 피 절반을 거룩한 제단에 뿌렸던(6절) 모세는 이제 여러 대접에 담아 두었던 그 나머지 절반을 다시 가져다 백성에게 뿌리게 된다.

 

이같은 행위는 하느님과 계약을 체결하게 되는 이스라엘로 하여금 대속의 의미를 갖는 피와 접촉하게 함으로써 거룩하고 정결하게 하기 위함이요, 또한 백성 개개인이 하느님과 계약 당사자가 된다는 자의식을 가지게 하기 위함이며,

그리고 계약을 위반할 경우, 피 곧 생명으로써 그 값을 치르게 된다는 심판의 사실을 깨우치기 위함이었다.

 

한편 생명과 거룩을 상징하는 피는 자기 죄로 죽었던 죄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 성혈을 예표하기도 한다(1요한1,7).

 

진실로 이러한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만이 모든 영혼들이 죄에서 벗어나 거룩하게 되고, 죽음 가운데서 벗어나 살아나며 구속의 은혜를 얻어 입게 된다(히브10,3~14).

 

'이는 주님께서 이 모든 말씀대로 너희와 맺으신 계약의 피다.'

 

'이는'으로 번역된 '힌네'(hineh)는 원어상으로는 '보라'(behold)의 의미가 있는 불변사로서, 아래에서 언급되는 말들이 매우 중요하므로 관심을 집중시켜야 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이 모든 말씀대로' 특별히 '이것들'(these)이라는 의미의 지시 형용사 '엘레'(elle)란 표현까지 사용하여 이번 계약의 기초와  내용이 되는 것이, 곧 하느님께서 지금까지 모세에게 명하셨던 바로 그 계약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탈출20,22~23,33).

 

이어서 '임마켐'(immakem; 너희와)은 '~와 함께'(with)란 뜻이 있는 전치사  '임'(im)과 2인칭 남성 복수 어미인 '켐'(kem)이 결합한 형태로서 '너희와 함께' 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계약이 일방적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상호간에 '쌍방적인 계약'임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는 말이다. 

 

따라서 이 계약 체결식에 참여하는 이스라엘 백성 모두는 각자 자신이 지금 하느님과 계약을 맺고 있다는 분명한 자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그리고 '맺으신'이라고 번역된 '카라트'(karath)는 '자르다', '베어 버리다'(탈출4,25)는 일차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이 '계약'(언약)을 뜻하는 '베리트'(berit)와 함께 사용될 때에는 '계약을 맺다' 의미를 지니게 된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계약을 체결할 때에는 통상적으로 희생 제물을 죽이고 그 제물을 둘로 잘라 그 제물 사이로 함께 지나갈 뿐만 아니라 그 제물을 서로 나누어 먹었던 풍습을 반영하는 표현이라 하겠다(예레 34,18참조).

 

이어서 '계약의 피다'라고 번역된 '담 합베리트'(dam habberit) '계약한 내용을 공식적으로 인준하고 그 효력을 발생시키는 피'라는 의미이다.

 

고대 근동 지방에서 계약을 체결할 경우에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피를 먹는 것이 엄격히 금지되었지만, 희생 제물이 된 짐승의 피(심지어 계약 당사자 양측 사람의 피를 나누어 마시기도 함)를 서로 마시거나 뿌림으로써 계약의 체결을 확고히 했다.

 

즉 이러한 의식을 통해서 계약 당사자는 피로써 맺어진 관계임을 공식화했고, 만일 계약 당사자 가운데 어느 한쪽이 계약을 깨뜨렸을 경우, 계약 파기자의 운명이 피흘리고 죽은 그 짐승의 운명처럼 될 것이라는 다짐을 하였다.

 

그런데, 당시 모세가 뿌린 희생의 피는 훗날 십자가상에서 인류의 죄악을 속량하시고, 인류에게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시기 위해 흘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의 구속 성혈을 예표한다(히브10,12~14).

 

인류는 바로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성혈로 인해 모든 죄와 허물을 말끔히 해결할 수 있고, 또 거룩하신 하느님 대전에 담대히 나아가 그분과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마태26,28; 루카22,20; 히브10,1) 


인류 구원 사업이라는 아버지의 뜻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시기 전날 밤에 십자가상에서 바쳐지는 당신의 살과 피를 우리 영혼의 생명의 양식으로 주시기 위해 최후의 만찬 때에 성체 성사를 제정하시면서 예수님께서 탈출기 24장 8절의 말씀을 당신께 적용하신다.

 

 

"모두이 잔을 마셔라. 이는 죄를 용서해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 (마태26,28)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22,20)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새 계약이다.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1코린11,25)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계약의 피를 의지하며 성체를 영하는 그리스도인은 이 지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일치하는 것이며, 구원과 은혜를 입어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는 것이다.





연중 제16주간 금요일 복음 (마태13,24-30)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에 비길 수 있다.  사람들이 자는 동안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밀 가운데에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다.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  그래서 종들이 집주인에게 가서, '주인님, 밭에 좋은 씨를 뿌리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하고 묻자,  '원수가 그렇게 하였구나.' 하고 집주인이 말하였다.  종들이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일렀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때까지 둘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  (24-30)

 

하늘나라(천국; 하느님의 다스림) '~하는 사람과 같다'는 의미를 가지고 하나의 진리를 이야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방식으로 하느님의 나라를 해설하는 데 있어서 'A는 B와 같은 경우와 유사하다'는 아람어의 관용적 형식을 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씨'로 번역된 '스페르마'(sperma; seed)는 '어떤 사물을 발생시키는 것' 의미하는 히브리어 '제라'(zera)의 희랍어 역어로서 식물의 씨앗(창세1,11.12) 뿐만 아니라 후손을 번성케 하는 동물의 정액(레위15,16; 18,21) 이라는 뜻도 있다.

 

신약성경에서 '스페르마'(sperma)는 43회 쓰였는데, 많은 경우에 하느님의 영적 기업을 상속으로 받게 되는 '계약(언약)의 후손'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마태22,24; 루카1,55; 사도3,25; 로마9,8; 갈라3,16; 히브2,16등등).

 

이 비유에서도 '스페르마'(sperma)는 '좋은'('칼로스'; kalos)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아 영적으로는 하느님의 기업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될 '하늘나라(천국)의 자녀들'이라는 의미를 갖는다(마태13,38).

 

'좋은 씨' 즉 '하늘 나(천국)의 자녀들'은 하느님으로부터 위임받은 이 세상에서 왕성한 생명력으로 번창해 나갈 것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밭'에 해당하는 '토 아그로 아우투'(to agro autou; his field)라는 표현이 사용된 것은 이 세상 혹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소유임을 보여준다.

 

하느님께서 친히 창조하신 이 세상과 더불어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한 인간은 원천적으로도 현상적으로도 하느님의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이 세상을 돌보시고 가꾸시며 인간을 당신의 섭리 안에 두고 계신다.

 

한편, 본문의 '그의 원수'에 해당하는 '아우투 호 에크트로스'(autou ho echthros; his enemy)는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인 '사람의 아들'(인자; 人子; 마태13,37)인 예수님의 원수인 '악마'(마귀; 마태13,39)를 가리킨다.

 

그리고 '가라지'로 번역된 '지자니아'(zizania; tares; weeds)의 원형 '지자니온'(zizanion)은 성장 기간에는 밀과 닮아 보이지만, 그 낟알에는 독소를 품고 있는 독보리를 가리키는 명사이다.

 

흔히 밀밭에는 낟알이 약간 거무스름할 뿐, 쉽게 분별하기 힘든 독보리들이 성장하게 되는데, 밀 사이에 자라고 있는 독보리들은 그 뿌리가 밀의 뿌리에 엉켜있다.

 

그래서 독보리의 낟알이 검은 것을 보고 농부가 그 줄기를 잡아 뽑게 되면, 옆에 있는 밀 줄기까지 따라 뽑히게 된다(마태13,29).

따라서 경험이 많은 농부들은 추수 때까지 그 독보리를 그냥 놓아둔다(마태13,30).

 

본문에서 '지자니온'(zizanion)은 복수로 되어 있어서 마귀가 독보리를  수없이 많이 뿌렸다는 것을 암시하는데, 비유에서 이 수많은 독보리들은 '악마'(악한 자)의 자녀들을 상징하고 있다(마태13,38).

 

그런데 마태오 복음 13장 26절에 '줄기가 나서 열매를 맺을 때에 가라지들도 드러났다'고 한다.

 

'열매를 맺을'에 해당하는 '카르폰 에포이에센'(karpon epoiesen) 직역하면 '그것이 이삭 혹은 열매를 만들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그것이 만들다' 즉 '에포이에센'(epoiesen)의 주체 마태오 복음 13장 24절의 '좋은 씨'이다.

 

좋은 씨가 그 속에 배태하고 있던 생명으로 말미암아 좋은 이삭을 막 맺기 시작할 때, 가라지는 그 좋은 씨가 맺은 이삭과는 다른 이삭을 맺게 된다.

따라서 농부들은 줄기 끝에 맺혀 있는 이삭을 보고 가라지를 쉽게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열매를 보고, 그 나무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마태7,16)과 일맥상통한다고 하겠다.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어디서'로 번역된 '포텐'(pothen; from where)은 기원이나 근원을 캐는 부사로서 '어떤 장소로부터'라는 의미와 더불어 '어떤 존재(사람)로 부터?'라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다(마태13,54.56절).

여기서는 곡식 밭에 가라지를 덧뿌린 원수를 가리키므로, 장소보다도  사람의 의미로 쓰였다.

 

'생기다'는 의미로 번역된 '에케이'(echei)는 '가지다','소유하다'는 의미를 지닌 동사 '에코'(echo)의 현재 능동형 3인칭 단수로서 '그것이 현재 ~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좋은 씨가 뿌려진 주인의 밭에서 가라지가 스스로 생겨나고 성장한 것이 아니라 외적 요인에 의해서 그 씨가 뿌려지고 자라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이것은 선(善)하신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 어떻게 악(惡)이 존재하며, 그 악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신정론(神正論; Theodicy)의 문제를 드러낸다.

 

'원수가 그렇게 하였다'

 

마태오 복음 13장 25절에서 '원수'가 '호 에크트로스'(ho echtros)였는데, 여기 28절에서는 '에크트로스 안트로포스'(echtros anthropos)가 되었는데, 같은 실체인데 의미가 더 강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에크트로스'(echtros)는 '증오받는', '가증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이란 의미의 형용사이며, '안트로포스'(anthropos)는 보편적인 '사람'을 의미하는 명사이므로 '에프트로스 안트로포스'는 '가증한 사람', '집주인에게 적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로 '악마'(마귀)를 뜻하는데, 하느님 나라를 확장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심한 적대 감정을 가지고서, 그리스도의 선교와 구원 사업을 방해하고 분쇄하려고 자신에게 속한 자들을 심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

 

'저희가 ~거두다'(뽑다)는 의미로 번역된 '쉴렉소멘'(sylleksomen)의 원형 '쉴레고'(syllego)는 '긁어 모으다'는 의미인데, '그릇에 담다', '열매를 따다'는 뜻으로도 사용된다.

여기서는 가라지의 윗부분을 잡고 '긁어 모어듯이 훑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아니다. 너희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종들은 영적 통찰력이 부족해 당장이라도 가라지를 훑어버리고 싶어하지만, 신적 통찰력을 가지신 하느님을 상징하는 집주인은 전후 모든 사정을 잘 알고서 그것을 원치 않는다고 '아니다'('ou'; '우'; no)라고 말한다.

 

마태오 복음 13장 29절의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쉴레곤테스'(syllegontes)의 원형 '쉴레고'(syllego) 28절에도 쓰인 단어로서 '긁어 모으다', '모으듯이 훑어버리다'는 의미이다.

 

반면에 밀까지 함께 '뽑다'는 의미로 사용된 '에크리조세테'(ekrizosete)의 원형  '에크리조오'(ekrizoo)는 '뿌리째 뽑아버리다'는 뜻이다.

 

가라지의 뿌리는 주변에 있는 밀의 뿌리와 너무나 얼키설키 엉켜 있어서 가라지의 목을 잡고 그것만 훑는다 해도 밀의 뿌리가 뽑혀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함부로 가라지를 훑으려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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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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