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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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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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의 [leejeano] 쪽지 캡슐

2005-01-07 ㅣ No.8963

2005년1월7일 주님 공현 후 금요일페냐포르트의 성 라이문도 사제 기념 ㅡ요한1서5,5-13;루가5,12-18ㅡ

 

                  그래.

                              이순의

 

 

예년 같으면 공현주간 내내 각 성당에 구유경배를 다니느라고 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올해는 처음부터 각 성당의 구유경배를 취소했다. 성당마다 제 각각의 정성으로 구유를 모셔둔 모습은 경이로운 감동을 준다. 아마 예술인들이 찬미를 드려 각자의 솜씨로 봉헌하는 모든 정성의 근원은 마굿간의 아기예수가 근원이지 않았을까 하는 신비를 찾게 한다.

 

어쨌든지 올해는 모든 성탄의 행사를 접어버렸다. 본당에서는 이제야 중고등부 성탄잔치가 끝났다. 그래도 우리 가족은 그곳이 아무런 해당사항이 없었다. 아들이 그곳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에 책임을 맡아서 치르는 중고등부 축제의 외인이 되리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 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중고등부 축제의 외인보다도 더 멀리 떨어져 먼지처럼 털어냈다.

 

참! 돌아보면 별거 아닌데.....

 

내아들이 성탄의 축제에 적극적으로 주인이 된 것은 성당이 아니었다. 집 가까이에 개신교회 유치원이 있었으므로 그 유치원을 다닌 덕을 톡톡히 보았다. 가톨릭의 장엄한 전례와는 전혀 다르게 변형된! 행사에 가까운 대규모의 성탄잔치는 그 장대함과 신바람이 개신교 나름의 큰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그 축제에 유치부로 참여한 것이 내아들의 공식적인 첫 기록이다. 그 후로 유난히도 장애가 많았던 어린시절을 보냈다.

 

공소에서는 내 아들이라서 제외되는 것이 많았다. 섬마을이라서 참여할 것이 별로 없는 시골아이들에게 "주일학교 선생 아들이 판친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엄마의 심부름꾼 이상의 역활을 주지 못 했다. 어린마음에 울고불고 투정을 부렸지만 나는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다음해에는 자모들께 공식적으로 알려서 초등부 저학년 연극에 배역 하나를 끼워줌으로 그 어린 상처를 꿰매 주었다.

 

서울에 와서 당장에 시급한 것이 첫영성체 였다. 그런데 동급생들의 첫영성체가 끝났으므로 한 해가 미루어졌다. 그래도 열심한 아이였고, 열심한 엄마였다. 문제는 복사를 하고싶다는 것인데! 나는 아들에게 "네가 열심히 하면 하느님께서 시켜주실거야."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리고 초등부 담당 수녀님을 개인적으로 만났다. 동급생들과 차이가 생겼는데 복사를 할 수 있느냐고 여쭈었다.

 

섬에서 이사온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수녀님 보시기에도 열심한 모습이 보이셨는지 "매일미사 나오고 열심히만 하면 당연히 기회는 주어집니다." 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대로 아들에게 전달했다. 무려 9개월 반동안 내 어린 아들은 매일미사를 다녔다. 해 보신분들은 알겠지만 두 달 주어진 매일미사도 못 다녀서 복사를 못 하는 아이들이 수두룩하다. 엄마의 강요만으로 9개월 반을 어린 아이가 매일미사를 다닐 수는 없다.

 

지금 생각하면 모두가 이 어미의 고지식하고 부덕한 소치라서 누구의 탓도 아닌 내 탓이다. 내 어린 아들이 학교는 결석하고 몸져 누워도 새벽미사에는 갔다. 그놈의 하지도 못할 복사 때문에 위 내시경을 하고도 그날 저녁 미사에는 갔다. 바보같은 이 어미 생각에는 당연히 눈들이 있으시니까 알아보실거라고 믿었다. 초등부 담당 수녀님은 그런 내 어린 아들에게 신뢰심을 확인해 주었고......

 

그러나 내 아들은 복사를 하지 못 했다. 복사도 하지 않는 내 아들이 복사라고 생각하는 신자들이 많았을 만큼 열심이었는데도 복사를 하지 못 했다. 이유는 동급생들과 첫영성체를 하지 않아서 기회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희망을 주지 말았어야 하지 않는가? 나는 초등부 담당 수녀님을 만나서 사정을 해 보았다. 복사를 시켜주지 않아도 좋으니 뽑았다가 산만해서 안되겠다고 탈락을 시켜주시라고 어미로서 간곡한 부탁을 드렸다.

 

그렇게 여러 달 동안 어린 것이 동급생하고 첫영성체를 하지 못 했다는 이유 하나로 매일미사에 다닌 그 어려움을 세상천지에 어미보다 누가 더 잘 알겠는가? 초등부 담당 수녀님이야 당신이 한 약속이 있었으니 해 보려고 노력은 하신 걸로 안다. 그러나 원장 수녀님은 내 아들에게 빌미도 마련하지 않고 무 토막처럼 잘랐다. 원장수녀라는 자리도 권력이었던가 보다. 나는 그때 알은 것이 많다.

 

초등부 담당 수녀님이라도 초등부에 아무런 권한이 없다는 것! 초등부 담당 신부님이라도 고령의 원장수녀님이 거절한 내용에 대해 초등학생 아동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원장수녀님의 권력을 존중해야 된다는 사실! 그리고 주임신부님 조차도 원장 수녀님께 누가 되는 그 진위를 살펴주지 않는다는 것! 결론은 하나였다. 나는 지금까지도 나의 결론에 대하여 의심하지 않는다.

 

신앙은 신앙으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나의 결심을 접고, 스타킹 두 켤레만 사서 들고 원장 수녀님 앞에 가서 두 번만 고개를 숙였으면, 내 아들의 상처가 없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내가 고개를 숙이지 않고 아들의 열심이 인정되기를 기대한 결과였다. 나는 이 생각을 죽을 때 까지 확신 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슈퍼에 진열된 스타킹만 보아도 그 원장 수녀님을 떠 올린다. 그 해에는 내가 참았다. 그리고 내 아들의 고생스런 매일미사를 그만 두게 했다.

 

이유는 그 소문으로 인하여 현역 복사하는 아이들이 내 아들에게 가하는 린치가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성당에서 서로 아는 자매님들끼리 머리채 잡고 싸울수도 없는 일이고, 집에서 아들을 다독여 줄뿐 성당에서 까지 내 아들을 지켜 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 아들이 당하는 아픔이 고통스러워 나는 침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일렀다. "세상은 어차피 네가 이기고 가야해." 참으로 냉혹한 어미임에는 분명하다.

 

그리고 다음 해에 복사문제가 다른 엄마로 인해 붉어졌다. 나는 내 아들과 상관 없는 일에 참지 못 했다. 그 원장 수녀님께 정면으로 도전을 했고, 교우들은 나에게 정신병자라고 했으며, 심지어 길을 가는 내 얼굴에 침을 뱉었다. 그러니 어린 내 자식이 엄마로 인해 당한 수모는 어느 신부님도 어느 수녀님도 만회해 줄 수도 없다. 그래도 열심히 열심히 성당에 다녔다.

 

그 원장 수녀님께서는 떠나시기 전 날에 나를 복사방으로 부르셨다. 그리고 내 아들의 성인 메달을 건네 주셨다. 별 말씀은 없으셨다. 그 메달을 받아서 그분의 얼굴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당신이 어린 아이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 어린 것이 복사하는 형들에게 끌려 다니며 복부를 구타당하고, 밟히고, 맞고, 채이며 당한 수모를 당신이 그대로 한 번 당해 보겠느냐?"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마음 속에 다른 언어가 스쳐 갔다. "수도복은 당신이 입었으나 신앙은 내가 더 깊습니다." 라고! 나도 별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성인 메달을 손에 쥐고 와서 방바닥에 패데기 쳤다. 그리고 화를 삭히려고 잠을 잤다. 깨어보니 아들녀석이 학교에서 올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에게 그 성인 메달을 주었다. 어린 동심은 수녀님의 잘못은 기억에 없고 자기의 성인 메달이 있어서 마냥 좋았다.

 

그걸보며 나는 마음을 고쳐 먹었다. 아들에 관하여 써 놓은 글들을 문방구에 가서 복사를 했다. 제법 많은 양이었다. 그리고 사무실에 전해주시라고 부탁을 하고 돌아왔다. 내 자식이 그 메달을 좋아한 답례 이상의 어떤 의미도 내게는 없었다. 다만 사람이 사는 이야기이니 읽어두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영적 독서보다 형편없는 이야기들이지만 어미가 자식을 기르는 것 보다 더 성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는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견하리 만큼 잘 견디며 다니던 성당에서 2년 전에는 더 큰 사건이 발생을 했다. 이번에는 성직자였다. 순전히 나로인해 발생하는 사고다. 내 체질은 약육강식이 아니다. 강육약식이다. 그래서 나 보다 못 한 분에게는 한 없이 너그럽다. 그러나 나 보다 강한자에게는 절대로 굽히지 못 하는 결점이 있다. 뭐 신부님의 바람대로 고분고분 했으면 아무 탈이 없었을 것이다. 그렇지 못 했으니 터진 사고다.

 

그리고 내 아들은 그 소용돌이의 일선에서 그 회오리 바람의 피해자가 되었다. 가해자는 엄마였다. 참으로 어린 나이에 별걸 다 경험하는 은총(?)을 받았다. 그리고 엄마는 피를 토하고 성당을 쉬게되고, 아빠랑 아들은 그럭저럭 주일이나 지키고 심드렁한 혼란을 격었다. 2년이 지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았을 때는 아들은 이렇게 말 했다.

"엄마, 이제는 제가 커서 괜찮아요.

걱정 안하셔도 되요.

엄마가 옳았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해서 안되는 일을 엄마가 굽혀서 되었다면 오히려 지금 더 신앙에 회의를 느꼈을거예요.

잘 하셨어요. 엄마!"

 

그런데 고 3이 되는 아들을 앉혀 놓고 진지하게 진로를 들어보기로 했다. 아직도 신학교에 마음이 있다면 예신도 가야하고, 엄마로서 마음에서 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또 가을이 되어서 마음이 바뀔지도 모르므로, 신학교에 마음이 있든지 없든지 예신을 다녀 보는게 어떻겠느냐고 권해 볼 참이었다. 그래서 새해가 열리기가 바쁘게 얼굴을 마주했다. 그런데 아들의 마음은 확고해져 버렸다.

 

"엄마!

하느님 뜻 대로예요.

복사도 그렇게 하고 싶었어도 못하고 오히려 악몽만 남았잖아요.

우리 엄마가 신부님들로 인해 피 토하게 될지는 나도 몰랐어요.

내가 고2가 되면 중고등부 활동을 열심히 할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앞으로의 성당활동도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도 없어요.

엄마!

저는 일반 대학에 갈거예요.

그러니까 엄마도 마음에 두지 말으세요.

예신은 아예 안 갈거예요.

혹시라도

엄마 마음에 작은 불씨를 남겼다가 복사 꼴 나면 이번에는 우리 엄마 죽을지도 모르잖아요?

그러니까 마음을 비우세요.

저는 일반 대학에 갈 것이구요.

대학을 못 가고, 가난 해도 엄마처럼 아빠처럼 살고 싶어요.

그것이 어느 수도자나 어느 성직자 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요.

열심히 공부 할게요."

 

"그래!

네 인생이니까 네가 선택하는 길이 가장 좋은 길이야."

그리고 돌아서서 쏟아지는 눈물을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아들은 보이지도 않는 그 눈물을 알고서 벌써 한마디 했다.

 

"그거봐요. 우리엄마 눈에 눈물 나잖아요?!"

벌써 자식이 자라서 어미가 넘볼 수 없는 자기의 길을 생각하고 있다.

각 성당의 구유들이 어떤 정성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ㅡ모든 것이 하느님 뜻대로 이루어 지리이다. 아멘!ㅡ

 

ㅡ"주님, 주님께서는 하시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이 고쳐 주실 수 있으십니다."루가5,12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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