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일 (화)
(녹) 연중 제13주간 화요일 예수님께서 일어나셔서 바람과 호수를 꾸짖으셨다. 그러자 아주 고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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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총의 꼭지점, 인생의 가장 밑바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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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국 [ystefano] 쪽지 캡슐

2005-05-13 ㅣ No.10855

5월 13일 부활 제7주간 금요일-요한 21장 15-19절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정말 사랑하느냐?”



<은총의 꼭지점, 인생의 가장 밑바닥>


예수님과 함께 오늘 복음의 주연으로 등장하는 베드로의 인생여정은 마치 우리의 것처럼 굴곡 많고 사연 많은 여정이었습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산뜻하게 시작했던 새로운 인생은 꿈결처럼 감미롭기만 했습니다. 피곤했던 전도 여행과 애매모호한 스승의 가르침, 끊임없이 몰려드는 군중들로 인해 힘겨운 제자로서의 삶이었지만 진정 신명나는 생활이었고 흥미진진한 나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잘 나가던 어느 순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을 것이다.”


베드로는 머리가 천장에 닿은 정도로 펄쩍 뛰며 “절대로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된다”며 완강하게 십자가를 거부합니다.


무력해진 예수님, 더 이상 기적을 행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아버지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 묵묵히 골고타 언덕을 오르시는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있어 더 이상 따라야할 스승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에게 있어 이제 예수님은 일생에 도움이 안 되는 장해물이 된 것입니다.


“어째서 갑자기 일이 이렇게 꼬이는가? 나는 오직 저분만을 바라보며 생업은 물론이고 가족마저 버렸는데, 그리고 저분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바쳤는데, 그리고 저 분도 나에게 약속하시길 나 베드로(반석) 위에 당신의 교회를 세우겠다고 약속했었는데... 이제 와서 이게 무슨 꼴인가? 하늘처럼 믿었던 저분이 이제 곧 사람들로부터 배척당하고, 버림받고, 즉음을 당하게 된다니...”


수제자 베드로는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물론 마음으로는 십자가의 신비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지만, 또한 예수님께서 새롭게 제안한 계획들을 수용하려고 노력했지만 몸은 점점 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가장 절박한 위기 상황에 놓여있을 때, 세 번이나 결정적으로 배반하는 과오를 범합니다. 한번 두 번도 아니고 세 번 배반합니다. 세 번 배반했다는 것은 배반해도 보통 배반이 아니라 완전한 배반, 확실한 배반을 했다는 의미입니다.


당신도 저 자와 한 패가 아니냐는 지적에 “거짓말이라면 천벌이라도 받겠다”며 딱 잡아떼는 베드로였습니다.


잠시 정신이 나갔었던 베드로였습니다. 겨우 정신을 차려보니 자신은 이미 순식간에 심연의 나락으로 떨어져있었습니다. 늦게야 비참한 자신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한 배신자 베드로는 처절한 죄책감이 온몸을 떨어야만 했습니다. 통곡 속에 쓰러집니다.


깊은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던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다시 한 번 다가가십니다. 예수님의 관심은 완벽하게 ‘배신 때린’ 베드로를 재교육시키는데 있지 않습니다. 질책하는데 있지도 않습니다. 시말서를 쓰게 하는데도 있지 않습니다. 오로지 무너졌던 스승과 제자 관계를 어떻게 하면 완벽하게, 또 부드럽게 회복시킬 수 있는가가 주된 관심사였습니다.


스승 입장에서 보았을 때, 베드로는 수제자 배반사건과 그 이후에 있었던 일련의 체험들을 통해 이미 충분히 받을 벌을 받았습니다. 거쳐야만 했던 시련을 통과했었습니다. 뜨거운 불로 단련되었습니다.


이제 베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잔뜩 의기소침해있는 베드로에게 다시 한 번 용기를 주고, 다시 한 번 일으켜 세우는 일입니다.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베드로와 재회한 예수님께서는 분노에 가득한 어조로 “수제자 좋아하네! 내 그럴 줄 알았어. 자네 같은 사람을 뽑은 내가 잘못이지!”라고 몰아붙이지 않습니다.


“지난 일들 없었던 것으로 할 테니, 앞으로는 잘 해보자”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베드로 내면에 깊이 잠재되어 있는 당신을 향한 강한 사랑을 일깨우십니다. 한때 즉석에서 목숨까지도 바칠 정도로 열렬히 따랐던 베드로의 그 열정을 되살리십니다. 예수님 당신과 베드로 사이에 존재했던 그 견고했던 유대감와 일체감, 신뢰심을 다시 한 번 구축하기 위해 이렇게 말을 건네십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완전히 붕괴된 한 인격을 사랑으로 다시 일으켜 세우십니다. 평생 따라다니게 될 죄책감과 좌절감으로부터 한 인간을 사랑으로 다시 건져내십니다. 무너질 데로 무너진 폐허, 완전히 맛이 간 반석 베드로 위에 다시금 새로운 교회를 건설하십니다.


때로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심연의 바닥으로 떨어트리십니다. 바닥에서 겪게 될 고통이 만만치 않겠지만, 그 바닥에서 우리는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정화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 과정에서 사랑이신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헤매고 있는 그 바닥까지 내려오십니다. 우리에게 손을 내미십니다. 우리를 건져내십니다. 재창조하십니다.


그래서 때로 인생의 가장 밑바닥이야말로 하느님 자비를 확실히 인식하게 되는 은총의 꼭지점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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